입장정리 #8 엄마의 우선순위
임신의 기쁨
생명의 탄생에 대한 경이로움
밤잠을 쪼개어 자지만 아기의 웃는 얼굴을 보면 마음이 다 풀리는 매직
터미 타임, 뒤집기, 되집기, 배밀이, 걸음마 하나하나의 감동
시간을 쪼개어 정성스럽게 만드는 이유식
촉감놀이, 미술놀이, 물놀이, 부지런한 엄마표 교육
오랜만에 연락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어쩜 그렇게 아이를 잘 키우냐고, 정말 부지런하고 아이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것 같다고 한다. 우리 아들이 알아들을 수 있다면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한두 명이 하는 말이 아니어서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으레 하는 소리인가 싶었다가 그들과 나의 유일한 연결고리라고 판단된 나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한 번 쭉 훑어보게 되었다. 남들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완벽한 엄마'였다.
아이를 낳아도
나의 우선순위는 요지부동
'그래, 처음부터 모성애가 있을 순 없어. 다 과정이 있는 거야.' 처음엔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직 너무 이른 것뿐이라고. 임신 중에도 뱃속 아이에 대해 크게 예민하지 않았던 나는 얼굴을 마주하면 모성애가 느껴지겠지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웬걸, 더 모르겠더라. 오죽했으면 오히려 뱃속에 있을 때가 모성에 최고치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던 신생아 육아 시절에 이어 잠도 충분히 못 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보니 아이가 두 돌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정말 진심으로 하나도 모르겠다. 모성애, 그거 공부하면 알 수 있는 건가요?
당연히 내가 품고 내가 낳은 내 자식 사랑한다. 하지만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어야 모성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 아기가 울거나 떼쓰기 시작할 때 얼마나 버틸 수 있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까지만 타일러야 하는지, 내가 낼 수 있는 목소리 크기는 몇 데시벨 정도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고 아이에게 천사 같은 말과 고운 소리만 내야 한다면 난 이미 틀렸다.
몇 날 며칠 하루 종일 24시간 아이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아이와 둘이 집에 있을 때면 가끔 적막이 감도는데, 그럴 때면 뭔가는 해줘야 할 것 같다. 음악이라도 틀어줘야겠다 생각은 들지만 오디오까지 닿기 위해 떼어내야만 하는 내 엉덩이가 너무 무겁기만 할 때가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 보면 과연 엄마가 아이를 쭈욱 보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당한 거리두기가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정말로 둘째를 계획하신다고요?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할 만하다고,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엄마들을 보면 또 혼자 숙연해진다. 특히, 우리 아이와 또래인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둘째'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렇다.
당연한 건지 의아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이가 하나 있는 주변 가정들을 보면 한두 명 빼고는 모두 둘째를 계획한다는 놀라운 사실. 정말이지 그들은 둘째 계획에 대해 한치의 망설임과 고민도 없다. '육아가 힘들지 않냐, 지금 아이가 말을 참 잘 듣고 순한가 보다'라고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본인들도 다 힘들고 막막하지만 정작 둘째 생각을 하면 그것도 다 잊어버린다고. 정말요?
나한테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난 한 명으로 충분하다 못해 이마저도 벅찰 때가 있어 둘째는 고민을 해보다가도 금세 고개를 도리도리 젓게 되는데. 문제는 이렇다 보니 우리 아이에게 더 미안한 마음만 커진다는 것이다. 육아가 최우선이고 모성애 가득한 엄마를 만났더라면, 우리 아이도 더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
Flexible No.1
얼마 전, 친구의 블로그 글을 읽다가 한 가지 위안을 얻었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가 BTS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혼자 미국에 갔다는 놀라운 뉴스. 가족 모두 한국에 남겨두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러 훌쩍 떠난 엄마. 그런 아내를 지지하는 남편. 엄마는 하고 싶은 거 하러 갔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이.
그래! 이거지! 비하인드 스토리는 모르지만, 보나 마나 이 엄마는 방탄소년단 공연을 보고 돌아온 후 그 힘으로 가족에게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남편이 친구들 만나느라 늦게 들어와도 하나도 불만이 없었을 것이고, 만물에 마음이 너그러워졌을 것이다. 미국으로 떠나는 순간 엄마의 우선순위는 방탄소년단이었을지언정, 다녀온 후 최우선 순위는 나를 미국으로 보내준 가족이 되었을 것이다. 미국행 비행기 편과 콘서트 티켓을 예매한 후에도 또 얼마나 행복했을까. 밥 안 먹어도 배부르고 그 어떤 매운맛 육아에도 관대하고 만사 오케이였을 것이다.
내 남은 삶 전체의 1순위가 항상 내 아이일 필요가 있을까. 아니, 가능하기는 할까. 아이에게 집중할 때는 집중하고, 내 삶을 즐기고 싶을 때는 즐기면 된다. 과정과 결과 모두 결국 내가 책임질 거니까. 그 자신감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아이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너도 자라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게 된다면, 꼭 그것에 묶여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괴로워하며 고민하지 말길. 너도 너의 삶을 끝까지 즐길 줄 아는 즐거운 인생을 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