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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입장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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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라 Mar 27. 2021

못된 시어머니가 될 거야

입장 정리 #2 시어머니

"내 인생에 화촉점화는 없다."


아들 둔 엄마가 하는 말이다. 내 아들이 장가를? 아니, 그전에 연애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다. 엄마랑 평생 행복하게 살아야지! 영원히 껴안고 살 거야!


그런데. 아들이 서른이 넘어가면 꼭 엄마들은 노심초사더라. 어떻게든 장가를 보내려고. 심하게는 이런 말까지 한다. "애 먼저 생겨도 돼." 딸 가진 엄마들이 들으면 환장할 소리다.


아니 그렇게 아들이 소중하고 좋으면서 왜 그렇게 장가를 보내고 싶어 하시는지 늘 궁금하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아들의 원만한 결혼생활을 응원하기 위해 시작된 고민이다.






아들이 너무 예뻐 보여서 '연애조차도 안돼!' 싶은 생각이 들면 스스로 화들짝 놀라 친구들에게 또 한 번 같은 말을 반복한다. "얘들아, 제발 내가 나중에 며느리 밉다고 시집살이시키거든 꼭 나한테 정신 차리라고 냉수를 그냥 얼굴에 갖다 부어줘." 딸을 둔 엄마들이 걱정 말라고, 꼭 그럴 거라고 다짐해줬다.


고부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 글 하나론 택도 없겠지. 아예 시작하기조차 엄두가 안 난다. 주변에는 시댁과 갈등이 있을 때면 일부러 네이트 판에 들어가서 극단적인 사건들을 읽어보곤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아,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며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고.


그러니 막장드라마에 버금가는 시월드 이야기는 접어두고, 먼 훗날 나에게도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고부관계를 어떻게 잘 유지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것은 내가 못된 시어머니가 될 것만 같아서 아들의 원만한 결혼생활을 응원하기 위해 시작된 고민이다. 누구에게 훈계도 잔소리고 아닌 먼 훗날 나에 대한 다짐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글로 쓰는 것은 조금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 고심을 많이 했다. 워낙 사례도 다양하고 별의별 관계가 다 있어서 하나의 글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육아 동지들과의 대화를 통해 기본적인 범위 내에서 나름대로 생각해본 것이니 넓은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친구들과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어머니들이 이 세 가지만 지켜주면 며느리랑 사이 나빠질 일이 없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1. 며느리한테 먼저 연락하지 않기
2. 며느리 육아방식에 터치하지 않기
3. 며느리의 부모님 존중하기






1. 며느리한테 먼저 연락하지 않기

제일 인기 많은 시어머니는 '먼저 연락하지 않는 시어머니'. 우리 시어머니의 경우 나한테 먼저 연락하신 적이 만 4년 결혼생활 동안 딱 두 번 있었다. 두 번 다 내 건강에 적신호가 떴을 때 안부차 연락하신 거였고, 그때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남편한테만 연락을 하신다. 먼저 보자고 하신 적도 단 한 번도 없으셔서 가끔 내가 뵙자고 하면 '혹시 어머님께 내가 부담스러우신가? 별로 안 좋으신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연락이 없으시니 내가 먼저 하게 되고, 보자고 하지 않으시니 내가 먼저 보자고 하고, 집에 찾아오시질 않으니 제가 가겠다고 하게 되더라. 내가 시어머니와 잘 지내는 것을 보고 친구들은 나한테 '일등 며느리'라고 하지만, 사실 시어머니가 '일등 시어머니'다.

아들과도 매일 연락하지 않으면서 며느리한테는 매일같이 연락하시는 분들이 있다. 아들도 며느리도 다 같이 바빠요. 숨 쉴 구멍을 좀 주세요.


2. 며느리 육아방식에 터치하지 않기

주변 고부갈등을 보면 모두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신혼생활 동안에는 정말 사이가 좋았다. 며느리도 시어머니께 잘하려고 노력했고 시어머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제의 발단은 2세가 태어나면서부터다. 시어머니도 손주사랑이 크시다 보니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간섭이 많아지시고, 육아에 허덕이는 데다 산후 호르몬까지 폭발한 며느리는 그 말이 다 아니꼽게 들릴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방대한 육아 정보를 폰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옛 분들의 육아방식이 우리 세대와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자식 사랑이 손주 사랑보다 더 크면 컸지 작을 수는 없지 않을까. 며느리를 좀 믿어 주세요.


3. 며느리의 부모님 존중하기

"이 직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민원 창구 앞에 적혀 있는 말이다. 며느리도 사돈의 소중한 딸입니다. 아직까지 그런 집이 있을까 싶은데, 명절 때 시댁에 오래 있으라고 하는 분들, 아기와의 행사들이 시댁 위주로 돌아가야 하는 분들 등 여전히 많으시다. 까암짝 놀랄 정도.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더더욱이 사돈 얼굴을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지만, 며느리에게도 '부모'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자식 귀하듯 사돈의 자식도 귀하다는 걸 꼭 아셔야 한다.





사실 주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세 가지 중 단 하나도 지키지 않는 시어머니들이 은근히 많다. 아니 고부갈등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다. 만약 셋 중 하나 이상 해주시고 계시다면 정말 좋은 어머님이다. 그분도 노력해주고 계시다는 것.










그렇다면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것은 현재의 나를 위한 고민.


1. 한 템포 먼저 연락드리기
2. 그래도 내 남편을 잘 키워주신 분이니 어머님의 육아방식도 어느 정도 존중하기
(전제조건: 내 남편이 잘 컸어야 함)
3. 내 남편의 엄마라는 것 잊지 않기






1. 한 템포 먼저 연락드리기

쉽지 않다. 한 친구를 보니 매주 화요일마다 점심시간에 알람을 걸어뒀더라. 시어머니한테 연락드리는 날이라고. 그러다 보니 화요병이 생겼단다.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누구를 위한 연락인가. 바쁘게 살다 보면 친정엄마한테도 자주 연락드리기 어려운데 시어머니한테 자주 드리려니 숙제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먼저 연락 오는 것이 싫다면 그전에 내가 먼저 연락드려보는 것은 어떨지 조심스럽게 제안을 해본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주기적으로 연락드리려고 노력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조금 뜸해도 '아 며느리가 바쁘구나. 여유 있을 때 연락 오겠지' 하실 것이다. 물론 완급조절이 아주 중요하며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수반될 수 있다.


2. 그래도 내 남편을 잘 키워주신 분이니 어머님의 육아방식도 어느 정도 존중하기

(전제조건 아주 중요. 내 남편이 잘 컸어야 함)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나의 경우 아기가 백일이 되기 전 수유 텀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너무 잘 먹는 아기라 하루 총 수유량이 1,000ml가 넘어갈까 노심초사였기 때문에 수유 텀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 영역이라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집에 오시면 아기가 우는 모습을 오래 보여드리기가 좀 그래서 아기가 보채면 말씀하시기 전에 분유를 먹였다. 물론 아기 엄마도 마음 아프지만 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지켜내는 것이긴 한데, 어쨌든 할머니들은 울리면서 육아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듯하다. 뭐, 매일 보는 사이도 아니고 가끔 오시니 이 정도는 한두 번씩 며느리가 양보해도 괜찮지 않을까.

내 남편을 훌륭하게 잘 키워주신 분이니 시어머니의 육아방식을 두고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육아방식을 너무 내 스타일대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친정엄마한테든 시어머니한테든 이에 대해 조금 유연하게 대처하는 태도를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어디까지나 신생아였을 때 이야기고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아기가 좀 크면 시댁에서든 집에서든 친정에서든 일관성 있게 양육해야 한다고 들었다.)

(전제조건이 틀렸다면 내 방식을 꼭 고집하시길 바랍니다.)


3. 시어머니도 내 남편의 엄마라는 것 잊지 않기

아무리 시어머니가 미워도 남편에게는 '엄마'다. 아기를 낳아서 키우다 보면 엄마와 자식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지 머리로만 알던 것들이 가슴으로 이해된다. (엄마, 진작 알지 못해서 미안.)

내가 내 자식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떠올려보면 시어머니한테도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또 내 엄마가 나에게 너무 소중하듯 남편의 입장에서도 시어머니는 마찬가지다. 누가 엄마를 흉보거나 나쁜 이야기를 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아내가 그런다면 너무 고통스러울 것이다. 만약 남편이 우리 엄마 흉을 본다면? 용서할 수 없겠지. 회사도 내가 욕하면 욕했지 남이 욕하면 싫듯, 와이프로부터 엄마 욕을 듣고 있어야 하는 남편들의 입장도 조금은 배려해주자.

결론은 이거다. 입장 바꿔서 한 번만 생각해보면 관계가 아주 나쁘게 치달을 일은 없을 것이다.






아, 그나저나 며느리랑 시어머니랑 잘 지내보자고 써본 글인데. 역효과 나는 거 아닌지.


못된 시어머니   겁니다. 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는 있지만... 절대   겁니다. 나중에 아들 여자 친구가   보고 무서워서 결혼  한다는  아냐? 그전에  지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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