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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대자동차 Jul 01. 2024

[전문가 칼럼] 캐스퍼 일렉트릭의 노림수

Writer 김형준(자동차 저널리스트)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BBC 톱기어> 한국판을 거쳐 <GQ> 피처 에디터, <모터트렌드> 한국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캐스퍼 일렉트릭이 2024 부산모빌리티쇼의 현대자동차 전시관에서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캐스퍼의 형제 모델답게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다. 전기차 대중화 문턱에 서 있는 한국 자동차시장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입문용 전기차’인 까닭이다. 하지만 내 호기심을 자극한 건 경차 규격을 포기하고 차체 크기를 키운 이례적인 배경이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동차에 있어 사이즈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러니까 캐스퍼 일렉트릭의 ‘사이즈’에는 분명한 노림수가 있다는 얘기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기존 캐스퍼보다 차체 길이(3825mm, +250mm), 폭(1610mm, +15mm), 휠베이스(2580mm, +180mm)가 더 크다. 휠베이스만 놓고 보면 소형차 시장에서 가장 작은 모델인 현대 베뉴(2520mm)보다 오히려 60mm 여유롭다. 경차이기를 거부하고 체급을 높여 소형차 세그먼트에 출사표를 던진 선택으로 손해볼 일은 없을까? 현재로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차에 주어지는 다양한 지원 혜택은 순수전기차도 대부분 누릴 수 있어서다. 



오히려 캐스퍼 일렉트릭이 경차 규격을 포기하면서 얻은 이익이 많다. 경차는 자동차관리법에서 지정한 규격(차체 길이 3.6m, 폭 1.6m, 높이 2.0m)을 초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매된 경형 EV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 차는 지난해 3,727대 팔렸고, 경차 시장 내 비중은 3.1%였다. 올해는 5월까지 4,936대 팔렸고, 경차 시장 안에서 비중은 12.4%였다. 국내 승용차 시장(수입차 제외, 이하 동일 조건) 안에서 순수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과 엇비슷하다. 이상적이지만 점유율 한계에 근접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2010년대 중반 한때 17만대에 다다랐던 경차의 연간 판매량은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소형차 시장은 얘기가 다르다. 최근 5년새 국내 승용차 시장은 큰 변화를 겪었다. 2019년 710,012대(54.9%)였던 중형 및 중대형차 시장 판매량은 지난해 358,196대(29.3%, -351, 816대)로 감소했다. 반대급부를 누린 건 소형차 시장이다. 2019년 341,541대(26.4%)에서 지난해 554,813대(45.4%, +213,272대)로 판매량이 대폭 늘었다. 소형차가 중형 및 중대형차 시장 규모를 뛰어넘은 건 KAMA 집계 자료로 확인 가능한 2000년 이래 처음이다. 중대형차마저 떼어놓고 보면, 소형차는 2020년에 이미 중형차 판매량을 넘어섰다(소형432,844대, 중형236,212대). 


단순히 경기가 좋지 않다는 말로 소형차 인기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첫째 이유는 좋은 제품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제조사들이 경쟁적으로 출시한 다채로운 크로스오버 CUV들은 판매량을 견인했다. 현대차 베뉴 등 B 세그먼트 SUV부터 투싼, 기아 스포티지, 현대 아반떼 등 준중형 모델까지 제품군도 폭넓다. 이는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한국 사회의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정년퇴임하고 자녀까지 출가한 세대에 큰 차는 거추장스럽다. 소형 SUV는 운전하기 편하고 유지비용도 적다. ‘갓생’ 사는 20대 MZ세대에게도 소형 SUV는 비교적 다가가기 쉽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소형차 시장에 휑한 빈 자리가 있으니, 순수전기차다. 이 시장의 순수전기차는 가짓수가 적고(현대 코나 일렉트릭, 기아 니로 EV, 쉐보레 볼트 EV) 판매량이나 비중도 낮다(2023년 기준 세그먼트 내 1.3%). 구매보조금 확정이 늦어진 데 따른 시차를 감안해도 올해 5월까지 소형 세그먼트 내 전기차 비중(0.7%)은 국내 승용차 시장 내에서 전기차 비중(약 6.3%)에 한참 못 미친다. 소형 세그먼트 내에서 하이브리드카의 비중이 지난해 20.2%, 올해의 경우 5월 기준으로 29.7%까지 오른 것과 비교하면 온도 차가 확연하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카가 기존 내연기관 차량을 대체할 거라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형 세그먼트는 대중화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순수전기차에게 기회의 땅 엘도라도다. 





소형 세그먼트에 뛰어든 캐스퍼 일렉트릭은 순수전기차가 대중화의 문턱을 넘게 해줄 열쇠다. 경차 판을 박차고 나온 캐스퍼 일렉트릭은 성능, 가격, 생소함 등 다양한 이유로 구매를 망설이는 전기차 입문자들에게 보다 낮은 문턱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강점은 도심형 전기차로 손색 없는 상품성이다. 





자동차 실내공간에서 1cm는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온다. 경차는 티코, 아토스, 마티즈 시절에서 모닝, 스파크, 레이 세대로 넘어오면서 숨막히는 공간에서 숨통 트이는 공간으로 변모한 기억이 있다. 기존 캐스퍼와 비교하면 캐스퍼 일렉트릭의 뒷자리 레그룸은 1.7cm 늘었고 트렁크 길이도 10cm 더 길어졌다. 리어 슬라이딩 시트 덕분에 실내공간 뒷부분은 한층 활용도가 높다. 등받이와 시트를 뒤로 눕히고(최대 14°) 밀어(최대 80mm) 뒷자리 승객의 편의를 더하거나, 반대로 세우고 당겨 트렁크 적재용량(기본 280리터)을 최대 351리터까지 확보할 수 있다.





정숙성과 주행품질 향상에도 한껏 공들였다. 기존 캐스퍼보다 두꺼워진 도어 글라스와 이중 실링, 파워트레인 룸 하부의 풀 언더커버 등 외부소음 차단에 힘쓰고, 모터 및 감속기 주변에도 흡차음재를 적용해 내부소음까지 꼼꼼히 단속했다. 크기 증대와 배터리 탑재로 무거워진 차체는 보디 핫스탬핑 포인트를 대폭 늘려 강성을 확보하고 스티어링부터 서스펜션, 브레이크에 이르는 주요 섀시도 강화했다. 주행품질의 전반적인 업그레이드를 예상해도 좋은 이유다. 


배터리는 LFP 대비 에너지 밀도와 성능에서 앞서는 삼원계 리튬이온 방식을 적용했다. 49kWh 모델의 경우 출력 84.5kW와 주행거리 315km의 성능을 보인다. 국내 유일한 경형 전기차(64.3kW, 205km)보다 뛰어나고, 가족 단위 소비자를 위한 소형 전기차(배터리 용량 58.3kWh, 주행거리 350km) 수준을 넘보지 않는다. 급속충전(10%->80%) 30분 등 충전에 걸리는 시간도 딱히 부족함이 없다. 어느 모로나 도심형 전기차로서 모자라지 않는 적정선을 지킨 셈이다.






전기 파워트레인은 중도를 지켰지만 전기차 주행경험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히트펌프를 적용해 겨울철 주행거리 감소를 최소화했고, 앞선 차량과 거리 및 내리막길 속도 유지 기능에 정차 제어 기능까지 더한 스마트 회생제동 시스템이 한층 매끄럽고 효율적인 전기 주행을 지원한다. 전기차 운전 경험이 적은 이들을 고려한 안전대책도 착실히 챙겼다. 페달 오조작 안전보조 장치가 대표적이다. 차량에 탑재된 센서 및 카메라로 장애물을 인지한 뒤 가속페달을 잘못 조작할 경우 모터 출력을 제한하고 브레이크를 걸어 예기치 않은 사고를 방지한다. 

최대 7대의 스마트기기와 공유 가능한 디지털 스마트키 2.0, 2대까지 동시 연결하는 블루투스 멀티 커넥션, 차량 간편 결제 기능인 카 페이(Car Pay), 최대 250V로 실내외 장치에 전력을 공급하는 V2L 기능, 고속도로운전보조(HDA)를 비롯한 ADAS 등 편의 및 안전사양 또한 화려하고 알차다. 





‘꽉 채운 입문용 전기차’가 뛰어놀 무대는 비좁을수록 효용이 떨어진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더 큰 무대, 그러니까 해외 소형차 시장까지 담아야 할 그릇이란 얘기다. 이제는 낡은 한국의 경차 규격은 국산 도심형 소형차의 해외 경쟁력을 제한해왔다. 유럽에선 크기가 애매해 전용 소형차 개발을 부추겼고, 일본에선 경차 무리에 들지 못했다. 경차라는 굴레를 벗은 캐스퍼 일렉트릭은 내수용과 수출용을 구별해 개발하는 비효용을 제거할 수 있게 됐다.  


경차라는 봉인을 해제했더니 캐스퍼 일렉트릭의 잠재력도 드러났다. 유럽의 도심형 전기차와 비교하면 실내거주성과 적재공간, 주행성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발군이다. 피아트 500e, 폭스바겐 e-UP! 등에 비해 휠베이스가 16~26cm 가량 여유롭고 기본 280L의 트렁크 용량도 동급 최대다. 유럽 기준, 305~355km에 달하는 주행거리도 넉넉하다. 피아트 500e는 42kWh 배터리로 최대 320km를 달린다. ‘케이-카(輕-Car, 경차)’ 강국 일본은 도심형 전기차 시장이 이제 막 형성되어가는 중이다. 이 블루오션은 농익은 소형 전기차 캐스퍼 일렉트릭에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남은 건 시장을 매혹할 수 있는 ‘가격’이다. ‘쌀수록 좋다’지만 제조 여건이 수용할 수 없는 수준까지 낮아지길 기대하는 건 요원한 일이다. 참고로 LFP 배터리(35.2kWh)를 탑재하고 205km를 달리는 경형 EV의 가격은 2775만원부터 시작한다(구매보조금을 반영한 실구매가는 2000만원 초반이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가격은 보조금 없이 2000만원 후반대가 될 전망이다. 현대차는 다음달부터 49kWh 모델의 사전계약을 시작하고 추후 기본형과 크로스 모델을 순차적으로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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