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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어당 Feb 21. 2021

네팔 히말라야 ABC 여행기 #5

오 일째   츄일레-촘롱-시누와-어퍼 시누와

오 일째

츄일레-촘롱-시누와-어퍼 시누와 거리 10km 6시간 25,815걸음


신비한 경험!

  새벽 잠들었다 깨기를 여러 번 갑작스레 방 벽이 사라지고 앞의 산이 훤히 보이며 앞산 중턱쯤에 커다란 오색 깃발들이 펄럭이고 네 분의 사천왕이 각 방위에 서 계신다.


각자의 무기를 앞세워 들고 나를 바라보고 보신다. 맨 앞에 계신 천왕은 긴 창을 들고 계시며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며 걱정하지 말란 듯 섰다.


네 분 사천왕을 번갈아 바라보며 참 이상한 꿈이구나 하지만 워낙 실제 같아서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를 구분키 어려워 당혹스럽다. 한참을 바라보며 있는데 큰 깃발들이 바람이 펄럭이며 긴 여운을 남기고 사라졌다.


놀라움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해가 뜨고 있다, 사천왕이 계시던 쪽을 보니 높은 산으로 내 침상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다. 참 기이한 경험이다.


  아침 식사로 토스트 2개와 삶은 달걀 2개를 주문하고 짐을 다시 정리하며 가져온 책 중 한 권을 표지를 본다. 초발심자경문이다. 트래킹을 준비하며 서점에 갔을 때 먼저 눈에 들어왔던 책이다. 새벽의 일을 떠올린다. 어떤 메시지가 있는 것일까? 그 경험 이후 참 편안해지고 정신이 맑아진 느낌이다.



다시 시작된 걷기!

  8시에 출발하기 위해 7시부터 아침을 먹고 분주하게 준비했지만 출발하니 8시 20분이나 지났다. 오늘은 츄일레를 출발! 촘롱을 지나! 시누와를 거쳐 어퍼 시누와 까지! 여정이다. 많은 트래킹 후기에서 오늘부터 점점 힘들어진다니 등산화 끈을 좀 더 신경 써서 매어 본다.


출발 준비를 마치고 롯지 마당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오늘도 좋은 날씨이다. 스톱워치를 시작하고 츄일레 논 사이를 지나 계곡으로 내려간다. 계단을 한참 내려가니 다리가 나온다. 네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줄로 만들어진 현수교이다. 계곡이 깊으니 다리도 50M 정도로 상당히 길다. 먼저 출발한 트래커들이 하나 둘 건너고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서 사람들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갑자기 위쪽 언덕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리고 이내 흰 말 한 마리가 뛰어와 다리를 빠르게 건너간다. 순식간에 일어나 일이라 사람들이 조금은 놀랐다. 잠시 후 키가 아주 작고 까까머리인 소년이 소리 지르며 나타나 말을 뒤쫓는다. 건너편에서 있던 가이드가 말을 막아선다.


그 사이 이 소년은 다리 난간을 넘어서 말 앞으로 가 소리를 지르며 말을 이쪽으로 보내려 한다. 두 사람이 소리 지르고 위협을 해도 말은 막무가내로 건너편 언덕 위로만 가려고 한다. 그때 소년이 다리 쪽 벼랑에 내려가 나뭇가지 하날 꺾어 말을 때린다.


그제야 말이 돌아섰고 그 틈에 가이드와 소년은 말을 더 거세게 몰아붙여 다리를 건너게 한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기세가 만만치 않아 모두 비켜서며 피한다. 말이 언덕으로 올라간 후 소년이 뒤를 쫓아 올라간다.


  이 소동은 정말 짧은 시간 지나갔다. 사진을 찍고 다리를 건너 가이드를 만나 이야기하는데 그 소년과 또 다른 아이가 나타났다. 작은 소년이 가이드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가이드가 본인 가방을 배낭에서 풀어 건네준다. 그걸 받은 소년은 익숙한 듯 가방끈을 이마에 걸고 여느 네팔 사람들처럼 언덕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른다.


네팔에 와서 생경한 모습 중 하나는 이마에 등짐을 진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 행동을 이 어린 소년에게서 보며 오래된 관습임을 느낀다. 언덕을 올라 쉬며 소년들에게 몇 살이냐니 일곱 살 아홉 살이란다. 말 소동의 아이는 우리 나이로 8살 초등학교 1학년이며 학교에 가는 길이란다.


기특해서 초코바 두 개와 건포도를 한 줌씩 나누어 먹고 다시 걷는다. 논을 따라 평지를 한참 걸어가니 학교가 나오고 학생들과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그 소년이 학교를 지나 계속 걷는다. 왜 학교에 가지 않느냐 물으니 집이 저 아래인데 교복을 갈아입고 학교에 가야 해서 지나친 거란다.


잠시 한눈을 팔다 보니 소년이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먼저 갔단다. 아쉬움에 용돈이라도 몇 루피 줄 걸 그랬다며 가이드에게 말하자 그 소년이 라면 먹고 싶다고 해서 자기가 50루피를 주었단다. 가이드도 참 정이 많은 사람이다. 걸어오면서 가이드하고 이야기 나누는데 그 소년의 꿈이 가이드가 되는 거란다. 네팔에서는 가이드가 소득이 많은 직업이라 사람이 선망한단다.


  잠깐 가이드 이야기를 하자면 나이는 42살로 포카라 출신 브라만으로 대대로 마을의 종교 지도자 집안이란다. 가족은 부인과 딸 둘과 아들 하나이고 두바이에서 소방관 5년, 한국에서 노동자로 11년을 일해 돈 벌어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이다.


모습은 적당한 키에 강건한 몸매를 지니고 눈이 크고 잘생긴 얼굴이다. 당뇨병을 앓고 있어 초콜릿 등 단것을 잘 먹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 소주와 삼겹살을 너무 많이 먹어 당뇨병에 걸렸다며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한국에서 일할 때 종교적 이유로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니 몸이 쇠약 해가 질 수밖에 없었고 이를 보던 친구들이 돈 많이 벌어 네팔 고향에 가고 싶으면 고기를 먹으라고 해서 먹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가족들은 모른단다. 그렇게 습관이 된 소주와 삼겹살 맛있단다.


그리고 스트레스에는 술 한잔이 최고란다. 한국이나 네팔이나 우리 남자들의 핑계는 한결같다. 스트레스가 심하니 한잔했다는 술 핑계!      



스스로의 길을 걷는다!

  추수가 끝난 들길을 훠이훠이 걸어 마을 지나 저 안나푸르나로 나는 걷는다.

넘실거리는 구름 뒤편 안나푸르나로! 이리 별생각 없이 자연을 즐기며 느끼며 걷다 보니 상점이 나타난다. 단체 관광객들이 보인다.


다가가니 지난 17일 한국에서 같은 비행기로 네팔에 온 고등학생들이다. 남녀 학생 50여 명과 선생님과 가이드로 구성된 그들은 나와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이들은 오늘 타다파니에 오를 것이다. 한 학생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 저 높은 타다파니 언덕을 가리키며 올라갔다. 내려갔다. 다시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하니 오늘 단단히 마음먹으라 일러줬다.


  다시 걷는다. 어제까지는 산마루 능선과 계곡을 따라 걸으며 히말라야 산들을 보았지만, 오늘은 걷는 길은 산 6부 능선쯤이다. 경사진 산을 개간한 다랑논들이 들을 이루고 그사이에 마을 있다. 좁은 논두렁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사람들이 걷는다.


다양한 보폭과 편안한 옷을 입고 자기가 감당할 만큼의 무게를 지고 걷는다. 누구와 함께 걷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혼자의 길을 걷는다. 걷다 관심사가 생기면 멈추고 다른 이는 지나가고 어떤 이는 함께 걷는다. 오늘 길은 흙길 많아 걷기도 편하다. 그리 무심히 걸어 엄청난 수의 계단을 올라 촘롱에 도착했다.


  가이드가 맨 위에 있는 롯지에서 점심을 먹자고 해서 또다시 돌계단을 열심히 오른다. 오르다 보니 왼쪽 롯지에 많은 네팔 사람들이 익숙한 향의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어 물었더니 한국 단체관광객을 위한 한국식 점심이란다.


갑자기 먹고 싶어 졌다. 촘롱 롯지들 앞 광고판을 보니 백숙! 김치찌개! 신라면! 등 한글로 써진 메뉴가 보인다. 여기가 지리산 백무동쯤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웃으며 허벅지에 힘을 더 줘 계단을 오른다.


  맨 위 롯지에 올라서니 촘롱 아래와 위쪽을 모두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위로는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가 보이고 아래로는 마을들이 보인다. 점심을 삶은 달걀 두 개와 토스트를 주문하니 한국인 트래커들이 또 같은 걸 먹냐며 묻는다. 대답한다! 저는 한 놈만 팹니다. 그렇다 먹기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지! 하지만 입맛이 없어 요기로 먹는 것이기에 먹는 즐거움이 없어 너무 아쉽다.


점심을 먹고 양치를 하고 싶어 칫솔을 찾고 컵을 꺼냈다. 가이드가 말한다. 자기 컵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은 한국인들뿐이라고, 왜 한국 사람만 유달리 자기 컵을 가지고 다닐까? 히말라야까지 컵을 가지고 온 나도 갑자기 궁금해진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컵을 가지고 산행을 하는 이유는 술잔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산행을 하다 보면 물건들을 여럿이 공유도 하지만 술잔만은 아니다. 반드시 자기 잔이 필요하다. 그 습관이 이 먼 네팔의 히말라야까지 컵을 가지고 온 것이리라.


  오후 일정을 위해 수도에서 시원한 물로 병을 가득 채우고 짐을 정리한다. 여행기에 보면 물을 반드시 사 먹으라 했는데 난 여느 네팔 사람들처럼 계곡에 흐르는 물도 받아 마시고 식당에서도 그냥 마신다. 물이 참으로 시원하고 맑은 느낌이어서 좋다.


시누와를 향해 내려가며 보니 촘롱 마을이 정말 크다. 지금까지 지나온 마을 몇을 합한 것만큼이나 많은 집들과 상점이 있다. 빵집도 있고 커피숍도 여러 개다. 단 것이 당겨 한 상점에서 석류주스와 파인애플 주스 한 캔씩을 사서 배낭에 넣었다. 위쪽에 가면 물건도 귀하고 비싸다는 말을 들어서다.


돌계단을 한참을 내려가니 저 멀리 시누와가 보인다. 그리고 ABC 이정표가 있다. 노란색 바탕에 파란색 글씨다. 이제 ABC가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저 멀리 계단 옆에 흰 양들이 몇십 마리가 보인다. 목동들이 담배를 피우며 양들이 풀을 뜯기를 기다린다.

어퍼시누와 입구

인사를 건넨다. 나마스테! 그들도 인사한다. 나마스테! 그렇다. 네팔에 와서 처음 배운 말이 나마스테이다.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같은 인사말인데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존중하고 사랑합니다.”라는 뜻이란다. 길을 걸으며 누구를 만나든 나마스테하며 인사를 한다. 숨을 헐떡이다가도 누군가 나마스테 하면 나도 숨을 몰아쉬며 나마스테를 외친다.


양들을 지나 한참이나 가니 시누와이다. 오늘 함께 걸은 대부분의 트래커들은 시누와에 묵는다며 손을 흔든다. 몇몇 사람들과 어퍼시누와로 향한다. 어퍼시누와 언덕은 정말 높다. 한참을 올라도 제자리였고 되돌아보면 시누와가 더 가까웠다.


많은 여행기에서 촘롱과 어퍼시누와 사잇길을 ABC 최고 난이도라고 하는지 알 수 있겠다. 트래킹 중 가장 긴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올라서 어렵게 어퍼시누와 언덕 꼭대기에 올라서자 바로 롯지가 있다. 잠시 앉아서 쉬며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오늘 올라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내일 아침 이 길을 올라온다면 정말 너무나 힘들 거 같다. 언제나 어려운 일은 먼저 하는 게 나은 것 같다.


이제는 숙소를 정해야 한다. 올라와 바로 보이는 롯지가 두 개 있는데 둘 다 방이 2층에 있고 난간들이 삐꺽거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이드에게 다른 곳을 부탁하자. 표정이 좋지 않다. 나중에 이유를 들었지만 보통 가이드들이 선호하는 롯지가 있고 그들과 암묵적 거래가 있는데 이를 트래커가 거부한 것이기 때문이란다.


위쪽으로 좀 더 올라가니 1층으로 된 롯지가 있다. 방을 보여 달라니 여주인이 조금 퉁명스럽다. 가이드가 먼저가 그들과 한참을 이야기한 후이기에 뭔가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냥 묵기로 한다. 길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는 숙소이고 오른쪽은 식당이다. 씻고 식당에 가니 몇 사람이 있다. 대부분 가이드와 포터들로 ABC로 오르는 사람보다 내려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지만, 입맛이 없다. 가져간 안성탕면을 끓여 먹기로 식당 여주인과 이야기하고 저녁 주문이 많지 않은 5시 30분쯤 주방에 가서 직접 라면을 끓인다. 주방은 온통 검은 그을음으로 가득 뒤덮여 있고 그릇들과 주방 안 사람들의 눈빛만 반짝거린다.


지금은 가스를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나무를 때서 음식을 조리해 생긴 그을음인 것 같다. 어릴 적 시골집 부엌이 떠올랐다. 항아리 같은 알루미늄 냄비를 빌려 물을 넣고 라면을 끓이는데 생긴 것에 비해 그릇이 작고 물이 잘 넘친다. 식당으로 가져와 라면을 먹으려니 한국인 여자 두 명이 인사를 한다.


자기들은 짜파게티를 가져왔다며 같이 먹자고 한다. 그녀들은 가이드에게 짜파게티 두 개를 건네주었고 라면을 먹는 사이에 나왔는데 양이 하나를 끓인 것처럼 작다. 여러 번 권해서 한입 얻어먹었는데 정말 별미였다. 최고의 맛이다. 다음에 온다면 반드시 짜파게티도 챙겨야겠다.


  저녁을 먹고 양치하려니 칫솔이 없다. 한참을 찾아도 컵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차 싶다. 촘롱에 두고 온 거 같다. 가이드를 찾아서 여기 칫솔 파냐고 물으니 이 롯지에는 없단다. 낭패다. 가이드에게 점심 먹은 롯지에 전화를 걸어 컵과 칫솔이 있으면 보관을 부탁한다. 한 참 후 가이드가 그쪽 사장과 통화했는데 컵은 있지만, 칫솔은 없다며 내려가는 길에 찾아가기로 약속했단다. 고마운 일이다. 히말라야에서는 저녁을 먹고 나면 할 일이 없다.


짜파게티! 그녀들에게 번화가 구경 가자고 해서 50미터쯤 떨어진 아래쪽 두 개의 롯지로 향했다. 그곳은 이쪽보다 훨씬 밝았기에 꼭 번화가 같다. 첫 번째 식당을 지나는데 익숙한 뒷모습의 남자 두 명이 보인다. 일정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트래킹 하는 기경과 상원이다. 반가워 부르니 밥 먹다 달려 나온다. 누가 보며 정말 오래된 인연인 줄 알겠다.


둘은 짐이 무거워서 아침 일찍 출발하지만 도착은 언제나 남들보다 늦어서 걱정이었는데 오늘도 만나 다행이다. 방금 만난 두 여인을 소개하고 더 아래 있는 롯지 난간에서 초승달을 바라본다. 정말 막 생긴 듯 가느다란 빛으로 별들 사이에 떠 있었다.


그 사이 그녀들의 가이드가 칫솔을 구했다며 내민다. 200루피란다. 반가움에 돈을 건네고 우린 함께 웃는다. 역시 번화가는 없는 게 없다며,


히말라야 어둠은 짙다. 해가 지면 바로 어둠이 찾아오고 그 어둠은 무겁고 짙게 우리를 가둔다. 어둠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는 이내 주눅이 들고 불나방처럼 작은 불빛에라도 의지하기 위해 서로에게 모인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오랜 인연처럼 서로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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