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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어당 Feb 24. 2021

네팔 히말라야 ABC 여행기#8

팔 일째 MBC-촘롱

팔 일째

MBC-촘롱 18km 8시간24분 36,639걸음


 언제나 만남은 헤어짐의 약속한다!

  해발 3700M의 아침이다. 오늘은 마차푸차레를 마주하고 내려가야 한다.

산행하며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오르는 느낌과 내려가는 감정은 다르다. 오를 때는 대상을 향한 발걸음으로 고단하지만 가볍고 내려갈 때는 작은 아쉬움과 산 아래 편안한 휴식에 대한 약간의 기대가 있다.


고소증상으로 어제 오후부터 고생했기에 휴식에 대한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스틱의 길이를 늘이고 발끝에 힘을 준다. 산행의 어려움은 내려오는 길에 더 있다. 내려간다는 생각에 긴장의 끈을 늦추면 작은 사고들이 일어날 수 있기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데우랄리, 히말라야호텔 지나 도반에서 점심을 먹고 뱀부를 지나 어퍼시누와까지 거의 단숨에 도착한다. 어퍼시누와 롯지에 도착해 막내를 부르니 이내 나타나 반가워한다. 내려올 때 다시 묵기로 했는데 시간이 너무 일러 내려간다고 인사했더니 다음에 다시 오라며 웃는다. 서로 아쉬운 손을 흔들고 다시 걷는다. 다시 시누와까지 내리막이다.


한참을 내려가 다리를 건너 촘롱까지 이번 트래킹 코스 중 가장 힘들다고 트래커와 가이드들 사이에 소문난 오르막이 나타난다. 한발 한발 천천히 언덕을 올라 마을 길로 접어드니 해가 뉘엿뉘엿 지려한다. 여행자 안내소와 병원이 함께 있는 곳을 지나자니 한 남자가 나와 뭐라고 묻는다. 태도가 상당히 불량하다.


저 뒤에 오는 가이드를 기다려 이유를 물으니 팀스와 퍼밋을 보여 달래서 보여주니 또 다른 말을 하는 것 같다. 가이드가 며칠 전 컵을 두고 온 롯지로 먼저 가란다. 가이드가 걱정됐지만 네팔사람이니 해결하리라 생각하고 올라간다. 카페와 빵집을 지나 한참을 오르다 뒤를 보니 가이드가 웃으며 오고 있다. 오늘은 네팔에서 가장 불친절한 사람을 만난 날이다.      

촘롱에서 바라 본 안나푸르나


치킨은 언제나 진리!

촘롱! 피쉬테일롯지에 도착해 배낭을 내려놓고 주방에 가 컵 이야기하니 롯지 사장이 웃으며 컵을 들고나온다. 정말 내 컵이 맞다. 그리고 칫솔도 담겨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읽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은 즐거움도 크지만 처음 이 티타늄 컵을 살 때 설레임과 십 년쯤 사용하며 유용하고 즐거웠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며칠 전 가이드가 한 말이 떠올랐다. “유달리 한국인만 자기 컵을 가지고 다닌다.”는 말, 문득 의문이 든다. ‘나는 왜 이 컵을 히말라야까지 가지고 왔을까?’ 풀지 못할 안나푸르나의 숙제이다.


  컵을 찾아준 고마움에 오늘은 이 롯지에서 묵기로 한다. 갑자기 목이 말라서 고르카 한 병 시켰다. 다시 찾은 컵에 맥주를 가득 부어 보드랍고 풍성한 거품을 윗입술에 묻혀가며 시원하게 한잔 들이킨다. 히말라야 최고의 맥주 맛이다!


저 높은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를 마주 보며 목젖을 적시는 황금빛 청량함이 정말 고맙다. 다시 한 병을 부탁하는데 기경과 상원이 도착한다. 그들에게 저녁 식사로 닭백숙을 먹자고 제안을 한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한잔하려니 옆자리 트래커들이 고맙게도 안주하라며 김을 준다. 한국인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다. 이 사람들도 트래킹 후 내려온 것 같다.


기경과 상원이 합류하여 남은 육포로 맥주 파티를 벌인다. 고르카는 일반 맥주보다 알콜도수가 조금 더 높다. 한국의 소주 폭탄주와 비슷해서 입맛에 잘 맞는데 공정이 일정치 않아서 병마다 양과 맛이 다르다는 말도 있지만, 정말 시원하고 상쾌하다.


아침에 MBC에서 함께 출발한 사람들을 기다리는데 어두워져도 마호와 찌라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중간쯤인 시누와 정도에서 멈췄나 보다. 특히 찌라는 내려오는 길에 무릎에 통증이 있어 잘 걷지 못하고 고생 중이라 걱정을 하며 이들과의 이별에 모두 아쉬워한다.


촘롱에 함께 모여 백숙 파티를 했으면 했는데 아쉽다. 한참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데 주전자 같은 생긴 냄비에 백숙이 나왔다. 맛이 가히 일품이다 그저 닭 한 마리 삶았을 뿐인데 축제다. 웃고 떠들며 닭을 뜯고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자축한다.


옆자리 한국인 여자 트래커가 갑자기 바늘을 찾는다. 일행 중 한 명이 체했단다. 미안하게도 우리도 바늘이 없어 어찌해줄 방법이 없다. 고산에서는 컨디션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네팔에서는 물갈이로 배탈이 나거나 음식이 맞지 않아 위장장애를 일으키는 사례들이 많은 것 같다.


에이전시 사장은 반드시 끓인 물을 마시고 포카리스웨트 분말을 상비하여 하루에 1ℓ 정도 마셔주라고 충고를 했었다. 특히 배탈이나 위장장애를 겪게 되면 몸이 전체적으로 안 좋아져서 며칠을 고생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기경과 상원의 가이드를 몇 번 불러 심부름을 시켰다. 내 가이드가 아니지만 기경과 상원이 고생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치기 어린 보복 같은 거였다. 처음 ABC 트레킹 계획을 세울 때 네이버 카페 히말라야트래킹에서 누군가의 추천 글을 읽고 카톡으로 직접 섭외하던 중 중단한 사람이다. 누군가를 평가할 처지는 아니지만 자기의 역할을 하지 않아서 트래커 두 명이 정말로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 약간의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히말라야를 오르며 만난 가이드나 포터들 대부분은 본인들 역할에 충실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친절했다. 물론 그도 친절은 했지만, 본인 체격에 비해 체력이 약하다는 핑계로 트래커의 짐을 나누어지지 않는 것은 가이드포터로써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물론 우리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가이드포터란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계획을 세우다 보니 트래커를 도와주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고 있다. 하나는 가이드로 트래킹의 전반적 안내와 안전을 책임지고 또 하나는 포터로 전적으로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체력적으로 도와준다. 이를 혼용하여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제도가 가이트포터 내지는 견인포터이다.


물론 네팔에선 적법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인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대부분의 한국인 트래커가 이용한다. 나도 서울의 에이전시 도움으로 견인포터를 고용하여 함께 여행을 한다. 비용은 포터보다 비싸고 가이드보단 저렴하다.


  내 가이드는 유창한 한국어와 특유의 친절함으로 여행 내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언제나 웃으며 대화한다. 미안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그 덕분에 편히 걸으며 산과 별을 보며 많은 생각과 감동을 얻는다. 이 사람과 어떤 인연이기에 하루에 20불로 9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걸까 한다. 우리가 서로의 편의에 의해 계약된 돈으로 만났지만 그 이상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트래커와 가이드 서로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기 위해서는 신뢰 있는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서울의 에이전시를 통하여 일을 진행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 사람이 내 가이드가 되어 서로가 힘들었을 거란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신다.


이 또한 즐겁다. 한참을 마시다 취기에 방에 들어오니 지금까지 잔 방중 최악이다. 곰팡이가 온통 방을 뒤덮었다. 하얀 벽이 군데군데 보인다. 곰팡냄새에 숨쉬기조차 힘들다. 다행히 히말라야와 고르카에 취해 금방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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