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 11월 18일) 카투만두-포카라-울레리
둘째 날 ( 11월 18일)
카트만두-포카라-울레리 거리 150km 비행시간 20분, 걸음수 18,676보
걷기 2.4km 2시간 30분
포카라 트레킹의 시작! 비스따리 비스따리
오전 9시 붓다항공 국내선 비행편으로 포카라로 향한다. 아침 먼지와 함께 날고 있다.
작은 40인승 비행기인데 타고 보니 이 비행기가 국내선에서 가장 큰 비행기란다.
터보프롭엔진에 프로펠러가 힘차게 돈다. 이륙 잠시 후 오른쪽 창가에 사람들의 작은 탄성이 떠오른다.
작은 창문 너머 저 멀리 파란 하늘 아래로 흰 띠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히말라야산맥이다.
그리고 난 제일 앞 여승무원 옆 빈자리에 옮겨 앉았다. 창문 넘어 하얀 히말라야를 보며 난 한참 미소 지었다.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스튜어디스가 사탕과 물을 한 잔씩 준다. 네팔 맛 사탕이다. 오묘하고 뭐라 표현하기 힘든 향과 맛을 지녔다.
탑승객 대부분은 외국인이며 스튜어디스는 두 명인데 키가 크고 눈이 예쁜 아리안계의 전형적인 미인들이다. 제복과 잘 어울린다. 20여 분 정도 짧은 비행 끝에 포카라 공항에 착륙한다.
비행기에서 내려 활주로를 걸어가는데 작은 시골 면사무소 같은 공항건물 뒤에 히말라야의 연봉을 보니 탄성이 나온다. 특히 삼각형으로 뾰족한 봉우리 마차푸차레가 영화의 시작의 첫 장면처럼 우뚝 서 있다.
첫 느낌이 와! 여기구나! 이곳이 히말라야다!
하지만 이 감동은 짐을 찾으며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수화물표를 잃어버려 짐을 찾을 수가 없다.
자동화가 이뤄지지 않아 사람이 짐 하나하나 수화물과 표를 정확히 대조하고 확인되면 내어주는데 수화물표를 잃어버린 것이다.
함께 탔던 승객들이 모두 나가고 내짐만 덩그러니 남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짐을 부리던 사람이 손짓한다.
갑자기 알지 못하는 네팔 말이 들리는 듯하다. “이제 아무도 없으니 너에 짐 가지고 가라”고 그랬다.
난 짐과 나만 있는 곳에 단순한 계획만 세워 그저 가고 싶다고 온 것이다.
짐을 찾아 나오니 네팔 사람 넷이 반겨준다.
서울의 포카라 에이전시에서 연결해 준 현지 코디와 가이드와 포터 그리고 짚 운전기사였다.
코디와 가이드는 우리말이 유창하다. 왜? 이리 늦었냐고 물어서 그냥 웃었다.
표를 잃어버렸다고 할 순 없었다.
차로 포카라 시내 현지 코디 집에 들러 가져온 짐을 풀어 두 개의 배낭으로 나눈다.
내가 지고 갈 것과 가이드 겸 포터에 맡길 것으로, 서울 에이전시 사장은 누차 이야기했다. “될 수 있으면 짐을 줄이세요.” 하지만 내 누추한 삶에 왜 이리도 필요한 게 많은지 배낭 무게는 15kg 이상이었다.
가이드 겸 포터에 적절하게 나누고 내 배낭에는 물병·카메라·여권·경비 등을 담아서 4kg 이내로 맸다. 부탁한 네팔돈 루피도 준비되어 있어 여행경비 전부를 환전하고 가이드 겸 포터 비용과 팀스, 퍼밋 등 소소한 것들을 모두 한꺼번에 결제한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트래킹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코디 오토바이 뒤에 타고 레이크사이드의 작은 등산용품점에 들른다.
가스와 반바지용 허리벨트, 챙이 넓은 모자를 사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
짚을 함께 쉐어 할 동행을 만나러 게스트하우스 해리네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30분이다.
그런데 동행할 사람의 팀스와 퍼밋이 완료되지 않아서 오후 1시쯤에 나온단다. 그러자 코디와 가이드가 출발해야 한다며 재촉한다.
아쉽지만 우리 일행 먼저 출발한다.
짚이 상당히 크다. 의자는 3열로 7인승 정도인데 지붕에는 캐리어가 달려있어 트래커들의 배낭을 모두 실을 수 있다. 뒷자리에 앉아 창문을 열고 잠깐 페와호수의 공기를 느껴본다.
포카라 시내로 접어들자 이내 차들이 많아지고 더불어 매연과 먼지도 짙어진다. 조금 달리다 주유하기 위해 차가 멈추어 선다.
주유소가 그냥 길거리에 주유기만 놓여있고 옆에는 상점과 노점들이 즐비하다.
눈에 띄는 과일 노점이 있어 오렌지와 석류를 산다. 네팔은 과일을 정확히 무게로 달아 판다.
귤처럼 작은 푸른 오렌지를 나누어 먹는데 달고 물이 많아 맛있다. 껍질은 귤처럼 깔 수 있고 맛은 오렌지다. 석류는 달고 과즙이 많다.
짚차는 다시 길을 달린다. 비포장 같은 포장도로 오르막을 한참 오르는데 오토바이가 많다. 대부분 둘씩 탔다. 주요 개인 교통수단인 것 같다. 앞서가는 버스와 트럭은 엄청난 매연을 뿜으며 달린다. 그 차들을 추월하기는 만만치 않다.
차장 넘어 보이는 추수가 끝난 들판, 길갓집, 사람들 옷차림이 낯설다. 특히 여자들 이마에 찍힌 붉은 점 “빈디”가 이채롭다. 빈디는 힌두교 지역의 여성들의 눈썹과 눈썹 사이 이마에 찍는 붉은 점을 말하는데 결혼 여부를 알 수 있다. 기혼 여성은 붉은색으로 과부는 검은색이나 찍지 않는 것으로 남편의 유무를 나타내기도 했다고 한다. 또 그곳이 숨겨진 지혜의 제3의 눈이라고도 불린단다.
올라온 만큼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갈림길에서 급선회하니 완전한 비포장도로이다. 이곳 나야폴부터는 택시는 다닐 수 없고 차고가 높은 짚만 다닐 수 있다고 가이드가 알려준다. 이내 그 말을 이해했다. 여긴 짚도 다니기 힘든 도로이다.
앞서 도착한 트래커들이 택시에서 내려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짚 안에서 미안해진다. 저 트래커들은 이곳 나야폴부터 걷는단다. 이 찻길이 나기 전에는 여행객 모두 이곳에서 트래킹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힐레까지 찻길이 생겨 많은 트래커들이 짚을 이용하지만 지금도 이렇게 나야폴부터 걷는 사람도 많다. 난 저 먼지 속을 걷고 싶지 않다.
비포장 도로를 한참 달리다 보니 허리와 어깨가 아파온다. 흔들림을 견디기 위해 너무 힘을 준 것이다. 한참을 산길을 오르다 차가 갑자기 멈춘다.
남자아이 하나와 한 여자가 운전석으로 다가와 말을 건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무엇을 건네준다. 검고 뭉툭한 것이 고구마 같기도 하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여자는 운전사 누나이고 아이는 조카란다 여기가 운전사의 고향이란다. 창문을 열고 지폐 한 장을 아이에게 건넸다. 어린아이에게 외삼촌 손님으로써 히말라야에 온 작은 기쁨을 나누기 위함이다.
차는 다시 오르막을 천천히 오른다. 운전사가 누나에게 받은 것을 선물이라며 줘 받고 보니 바나나다. 길이가 짧고 뭉툭하고 통통하며 갈색이어서 고구마처럼 보이는데 맛은 달콤하고 부드러워서 일품이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 오르니 저 멀리 차 몇 대가 보인다.
여기가 도로의 끝인 힐레로 트래킹의 시작점이다. 시간은 벌써 1시가 넘었다. 정류소에 하나밖에 없는 식당 마당에 앉아 오므라이스를 시켜 밥을 먹는데 오므라이스가 달걀부침이다. 밥은 따로 시켜야 한다. 어제보다 먹을 만하다.
ABC를 향한 첫걸음….
힐레! 이곳부터 푼 힐 ABC 트래킹이 시작된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식당 몇 개의 있는 거리가 있다. 먼저 밥 먹은 식당보다 여기가 좋아 보인다. 여기서 먹었으면 좋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미 먹었으니 지나친다.
작은 길로 이어진 논과 밭 사이 오르막을 오른다. 가이드가 말한다. “사장님 비스따리 비스따리 걸으세요. 앞으로 3시간 정도만 걸으면 울레리에 도착해요.” 비스따리가 무슨 말이냐 물으니 천천히란다. 그렇다 여기는 한발 한발을 무심히 천천히 그리 걷는 것이다.
저 건너편 산을 보니 찻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힐레 정류소 위쪽으로 길이 있었는데 아마도 새로 길을 내고 있는 듯하다. 조만간 울레리까지 차가 올라갈 것 같다.
난 그저 돌이 나를 넘어뜨리지 않도록 중심 잡기를 반복하며 걷는다. 익숙하지 않은 돌계단 길에 머리와 등이 땀에 흠뻑 젖어 김이 난다. 칠부 반바지와 얇은 긴팔 셔츠를 입었고 오늘 산 챙 넓은 모자를 썼지만 덥다. 늦여름 산행 같다. 자주 물을 마시며 쉬는데 숨을 찬다.
먼 곳을 올려다본다. 히말라야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산속에 들어오면 산은 보이지 않고 나무와 숲만 보인다.
출발한 지 2시간 30분 정도 비스따리 비스따리 오르니 울레리에 도착한다.
지도와 구글어스에서 화면을 통해 평면적으로 보았던 거리를 아주 입체적으로 두발과 두 손을 써서 올랐다.
울레리는 학교가 있는 큰 마을이다. 크다고 해봐야 학교와 몇십 채의 집이 전부지만 이곳에 와보니 크다고 느껴진다. 게스트하우스 “롯지 미라” 1층 마당 앞방을 선택하고 핫 샤워도 부탁했다. 마당에서 계곡 사이를 바라보니 히말라야가 보인다.
조금 지나니 해가 저문다. 석양의 빛에 따라 흰 산이 황금빛으로 이내 붉은색으로 다시 흰 본모습을 보이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난 다시 미소짓는다 여기는 히말라야다!
저녁 시간이 되어 그저 생각나지 않는 메뉴로 저녁을 먹고 핫 샤워를 한다. 가격 200루피 물 온도는 34도다 가스온수기 디지털 창에 정확하게 숫자로 표시된다, 나를 감싸는 공기보다는 핫하다.
해가 지니 초가을 날씨 같던 기온이 갑자기 초겨울로 변한다.
털모자와 패딩을 꺼내 입고 식당 난롯가에 앉아 양말과 수건을 말린다.
드럼통으로 만든 나무난로는 수도관이 설치되어 있어 주방에서 사용하는 뜨거운 물도 공급하고 난방도 하는 일거양득의 물건이다.
하지만 주방 일 끝나면 난로도 꺼진다. 난롯불이 사글어 들자 여행객과 가이드들도 하나둘 방으로 향한다. 돌아온 방안에는 희미한 백열등 빛이 어둡다.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너무 오래전에 잊었었다.
이 어둠을...
저 작은 빛에도 보일 건 모두 보인다.
이곳 히말라야의 낯설음까지도…
마당에서 잠깐 올려다봤던 밤하늘 별이 생각났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은 더욱 빛이 난다.
헤드 랜턴을 챙겨 방을 나서며 하늘을 본다.
별빛이 쏟아진다.
어둠의 저편에서 작고 밝은 빛이 내게로 오고 있다.
알 수 없는 별들이 서로를 뽐내고 그 사이로 별똥별이 떨어진다.
재빨리 소원을 빌어본다.
한참 흔적을 남기며 떨어지는 별똥별의 시간보다
내 욕심의 시간이 더 길다.
언덕을 오르니 모든 게 사라지고
어둠과 별 그리고 나 셋만 남는다.
저 높은 하늘에 알알이 스스로 빛을 내던 별은
몇십 광년 시간을 지나 내 가슴에 스민다.
별빛을 보듬고 눈을 감으니
온통 별빛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