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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 Nov 26. 2021

기타와의 첫 만남

기타 독학 일주일 차. 응애.

맨 처음 악기를 배운건 일곱 살 때입니다.


또래 애들이 하는 건 다 시키고 싶었던 엄마 덕에 태권도, 미술, 피아노 학원에 다녔더랬죠.

태권도랑 미술학원은 그럭저럭 재미있게 다녔는데, 피아노 학원은 울고불고 난리 끝에 때려치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엄마한테 먼지 나게 맞았던 기억이 나네요.

일단 선생님이 무서웠고요, (애기가 잘 못 칠 수도 있지 회초리로 고사리 같은 손을 사정없이 때렸다니까요?!) 바이엘 2부터 두 손을 따로 연주해야 하는데 지독한 양손 동기화 때문에 진도를 못 나갔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체르니 40까지 배웠다면 악보도 볼 줄 알고, 이번 프로젝트도 바로 시작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악보 까막눈에 멀티가 1도 안 되는 저주받은 양손을 가졌습니다. 아무렴 어떻든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하니 근 20년 만에 새로운 악기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피아노가 제일 만만하지만 이미 포기한 친구이니 미뤄두고요, 그다음으로 만만한 기타를 골랐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아이유 언니가 기타를 주로 사용하기도 하고요.

사실 다음 달부터 학원에 등록해서 체계적으로 배우려고 했는데요, 제 성격이 좀 급해야 말이죠. 배우기로 마음먹으니 기타를 당장 만져보고 싶은 거예요. 그럼 뭐 어떡해요 사야지. 다음날 새벽에 바로 받을 수 있는 입문용 통기타를 주문했습니다. 20만 원이 채 안 되는 고퍼우드 기타인데요, 가성비도 좋고 사이즈도 여자들한테 적당하다고 해서 고민 없이 바로 질렀습니다. 일단 이번 달은 손가락이나 적응시켜보자고 기타와 함께 산 책은 무려 여덟 권. 유튜브에 널리고 깔린 게 기타 레슨 영상이고, 나도 나름 Z세대이지만 할머니라는 별명에 걸맞게 활자는 못 참지.

아이유 언니 노래로 입문하고 싶어서 아이유 악보집까지 구매했지만 저는 천재가 아니어서요, 떴다 떴다 비행기가 제 첫곡이 되었습니다. 손끝도 무지 아프고 역시나 양손 동기화 때문에 두 손을 따로 움직이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연습을 더 하고 싶어도 아픈 손때문에 처음 3-4일 동안은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며칠 지나니 금방 굳은살이 박이고 처음보다는 어찌저찌 줄 잡는 게 쉬워지더군요. 코드표나 타브 악보도 쫌쫌따리 읽을 줄 알게 되었고요. 몇 가지 쉬운 코드(A, G, D, E, Am, Dm, D7, Em, Fm7 정도)도 금방 외웠습니다. 아는 코드가 생기니 칠 수 있는 노래도 늘어났지요.


그중에 제일 마음에 들었던 노래는 코드 6개만 알면 칠 수 있는 김광석 선생님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였어요. 불나게 연습했습니다. 누구와 함께 살았다면 소음공해로 쫓겨났을지도 모릅니다.

연습하다 보니 드디어 코드를 빠르게 바꿀 수 있었고. 어느 순간 노래까지 흥얼거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안 남길 수 없죠! 바로 카메라를 켜고 녹화를 시작했습니다.

한 오십 번째 롤이었을 겁니다. 정말 기적적으로 한 번의 실수 없이 완창 할 수 있었어요! 안타깝게도 가사는 끝까지 다 못 외웠습니다ㅎ (가사를) 잊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나 봐요. 아무쪼록 아래는 그 기적의 순간입니다.


기타를 만난 지 딱 일주일 만에 얻은 성과 치고는 대단하지 않나요?! 아직 갈 길이 험난한 응애이지만 그래도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다음 달부터 선생님과 함께 더 체계적으로 배우려고 해요. 포부 있게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사실 참 막막했는데, 빛이 보입니다. 서른 전에 앨범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타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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