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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Mar 06. 2024

<3>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 결혼만이 행복할 수 있다

                                 

-환상을 갖지 말라

-배우자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말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부부가 완전한 평등감을 느껴야 하고, 서로의 자유를 간섭해서는 안 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한 화합이 있어야 하고, 가치의 기준도 어느 정도 유사해야 한다.”

 

영국 철학자 러셀은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철학자다. 그 자신 결혼을 네 번이나 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칸트, 니체 등 근현대 철학자 상당수가 독신으로 살다 간 것과 대비된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연애의 무덤이라고 말하지만 러셀은 연애의 완결판이자 새로운 사랑의 시작으로 여긴 듯하다. 


그의 결혼 이력은 대략 이렇다. 첫 결혼은 22세 때의 일로, 상대는 그를 첫눈에 반하게 만든 다섯 살 연상의 미국인 여성 앨리스 스미스. 학문적 대화가 가능한 지적인 여성이지만 금욕주의자였으며 아이를 낳지 않았다. 39세 무렵 결혼 생활을 청산한 데 이어 49세 때 정식으로 이혼하면서 제자 친구인 도라 블랙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도라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 남매를 두었다. 러셀은 64세 때 도라와 이혼하고 피터 스펜스와 세 번째로 결혼해 아들 하나를 더 낳았다. 80세 때는 피터와 이혼하고 대학 교수인 이디스 핀치와 또 결혼했다. 


그의 결혼 생활은 여러 차례 상처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행복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이혼과 결혼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심적 고통과 주변의 눈총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사랑에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스스로도 그렇게 평가한다.


그렇다. 사랑과 결혼은 별개로 움직이곤 한다. 결혼은 사랑의 두 물줄기가 합해져 가정이라는 하나의 물줄기를 이루는 행위이다. 두 사람이 사회로부터 배타적 사랑을 보장받는 대신 그 사랑을 지속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하지만 사랑은 원천적으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감정이기 때문에 의무로 지켜내는데 한계가 있다. 그나마 의무를 소홀히 해 사랑이 메말라 버리면 필연적으로 결혼 생활에 빨간 불이 켜진다. 


결혼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데 사랑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결혼은 사랑의 결합인 동시에 가문의 결합, 경제의 결합이다. 결혼하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두 집안의 낯선 사람들이 끼어든다. 동시에 색다른 풍속과 전통이 개입된다.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결혼은 두 사람의 경제 통합이다. 경제활동이 원만하지 않을 경우 역시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주변을 둘러보라.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사랑이 식어버린 탓에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이 숨죽여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결혼하면 3개월 사랑하고, 3년 싸우며, 30년 참고 산다는 말을 실감하는 사람 적지 않다. 결혼이 마치 새장과 같다는 프랑스 지성 미셜 드 몽테뉴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밖에 있는 새는 들어가려고 안달이며, 안에 있는 새는 나가려고 발버둥 친다.”


몽테뉴 말고도 저명한 작가들은 경쟁적으로 결혼을 조롱했다. “죽음으로 모든 비극은 끝나고, 결혼으로 모든 희극은 끝난다.”(조지 고든 바이런) “기혼자들은 결혼했다는 그 멍청함에 대한 형벌로 영원히 배우자와 함께 살아야 한다.”(귀스타브 플로베르) “부유한 독신주의자에게는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만 행복하다는 것은 불공평하기 때문이다.”(오스카 와일드) “만약 고독을 두려워한다면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안톤 체호프)


러셀은 이런 사람들과 전혀 관점이 달랐다. 그는 결혼이 두 인간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좋고도 중요한 관계라고 규정했다. 부부 모두 큰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결혼은 그런대로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결혼을 기나긴 축복의 꿈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 결혼만이 행복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결국 환상을 버리라는 이야기다. “결혼은 환상이 전혀 포함되지 않는, 애정 넘치는 친밀감을 요구한다.”


러셀은 행복한 결혼 생활의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서두에 소개한 문장으로, 저서 ‘결혼과 도덕’에 나오는 대목이다. 결혼을 하려는 사람, 결혼 생활 중인 사람 모두 새겨들을 만하다.


첫째, 러셀은 부부 쌍방이 완전한 평등감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 러셀 시대엔 영국이나 미국에도 부부 불평등이 심했다. 이를 해소하지 않고는 건강한 가정을 꾸리기 어렵다는 게 철학자의 생각이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불평등 요소는 곳곳에 남아있다. 유교 문화권인 한국에는 특히 남녀차별 흔적이 많다.


부부가 결혼식에서 평등한 혼인생활을 서약했으면 언제 어디서든 동등한 인격체임을 깨닫고 상대방의 존재와 능력을 같은 수준으로 인정해야 한다. 맞벌이를 하고 가사를 분담한다고 평등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상호 이해와 존중이 필수다. 


한국 가정에 여태 남아있는 남성의 권위의식, 여성의 열등의식은 반드시 해소돼야 한다. 부부는 지배와 순종이 아니라 존경과 사랑으로 맺어져야 한다. 부부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공생관계이다. 가족 부양자로서의 남편, 자녀 양육자로서의 아내로 이분화된 성 역할도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년 이후 부부에게 특히 필요한 부분이다.


둘째, 부부는 상대방의 자유를 간섭해선 안 된다고 했다.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임을 깨닫고 둘 사이에 이해의 공간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랜 기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부부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서로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생각이 같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배우자의 생각이 나와 같지 않아도 틀린 게 아닐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이런 마음을 가지려면 매사에 서로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특히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 배우자의 개인사엔 관심을 갖되 간섭은 피해야 한다. 독립된 공간, 독자적인 영역을 인정해 주라는 말이다. 중동의 성자 칼릴 지브란은 부부는 서로 사랑하되 속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되 각각 혼자이게 놔두라고 했다. 그는 저서 ‘에언자’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함께 서십시오. 하지만 너무 가까이 서지는 마십시오. 성전의 기둥들은 서로 떨어져 서 있습니다. 참나무,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잘 자랄 수 없습니다.”


셋째, 러셀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한 화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부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면서 사랑으로 결혼에 골인한 사이다. 사랑이 무너지면 미련 없이 돌아설 가능성이 있음은 당연하다. 러셀이 이혼을 세 번이나 하고. 결혼을 네 번이나 한 것은 결혼 생활에서 사랑을 남달리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이 식으면 애걸복걸 매달리기보다 다른 사랑을 찾았다. 냉담 기간을 거쳐 이혼 절차를 밟은 뒤 새로운 사랑과 부부 인연을 맺었다.


러셀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한 화합을 이루는 것이 부부 사랑이라고 했다. 그 자신 빈틈없는 사랑을 추구했다. 정신적 화합에서 그는 철학자로서 지적 대화에 큰 비중을 둔 듯하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부부 대화는 결혼 생활에서 매우 중요하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말을 남겼다.

  

“결혼을 하고 싶다면 이렇게 자문해 보라. 나는 이 사람과 늙어서도 대화를 계속할 수 있겠는가?” 참고로 니체는 사랑에 실패했으며, 결혼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러셀은 부부 사랑에서 육체적 합일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결혼과 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서 그렇다. 부부 성관계는 부부 사랑뿐만 아니라 우주의 바람인 자녀 출산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넷째, 인생의 가치 기준이 어느 정도 유사해야 한다고 했다. 러셀은 그 예로 한쪽은 금전에 가치를 두고, 다른 한쪽은 일에만 가치를 둘 경우 결혼 생활이 치명적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다. 결혼은 평생 한 울타리에서 같이 살 것을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다. 부부 쌍방의 가치관이 너무 다를 경우 결혼이 성사되기도 어렵지만 설령 결혼을 하더라도 긴 여정을 함께 하기가 쉽지 않다. 사사건건 충돌하거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무관심 속에 살아야 하는 불행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현실에서 러셀이 제시한 위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기란 쉽지 않다. 네 가지 모두 충족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다. 두 가지 정도만 충족해도 성공적인 결혼이 될 수도 있다. 결혼 생활은 다분히 부부간 개별적인 문제이며, 실제에선 디테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공적 결혼 생활을 위한 공식이나 정답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말이 그것이다. “결혼은 어떤 나침반도 일찍이 항로를 발견한 적이 없는 거친 바다이다.”


하지만 행복한, 성공적인 결혼의 제1조건이 사랑이라는 러셀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좋은 결혼의 본질은 역시 남녀 간의 엄숙한 사랑이다.” ‘결혼과 도덕’ 말미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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