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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May 21. 2024

<9> 사실과 감정의 정곡을 찔러라

<글쓰기>

-글쓰기는 자기발견, 자기발전의 지름길이다

-광범위한 독서로 지적 근육을 키워라



“나는 근엄하게 굴어야만 진지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러셀은 시인도 소설가도 아니면서 195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3년 뒤 정치인이면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윈스턴 처칠과 유사한 케이스다. 다양하고도 중요한 저술을 통해 인도주의적 이상과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공로였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러셀은 40대 초반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실천적 지식인으로 변신했다. 세계 평화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철학과 수학 이외의 사회 전반에 대한 글쓰기를 본격화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정치, 교육, 예술, 과학, 여성, 도덕 등을 주제로 신문과 잡지에 끊임없이 글을 썼으며 죽는 날까지 무려 7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글쓰기는 그에게 존재 이유였다. 학술연구 성과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뭐든지 곧바로 발표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다. ‘나는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일부 글이 특정 이해 집단과 마찰을 빚고, 크고 작은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소신에 찬 그의 문필 활동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러셀은 하루 평균 3000 단어 이상의 글을 썼다. 만약 그가 대학 교수로서 통상적인 연구논문 작성에 주력하고, 글쓰기에 소극적이었다면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이 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방면에 걸쳐 글쓰기를 계속했기에 사상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해야겠다. 위대한 사상가 러셀을 만든 것은 글쓰기라고 해서 틀리지 않는다. 


글쓰기는 러셀 같은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한테나 필요하다. 우선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성찰, 자기치유의 지름길이다.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본능을 살려 글로써 자기 내면을 표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다운 나’ 혹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일기를 써보면 알 수 있다. 일기가 방황하는 자신을 바로잡고 정신건강에 이로운 이유다.


글쓰기는 또 자기발견에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이 현재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능력이 있으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정확히 파악하려면 무엇보다 글을 써볼 필요가 있다. 대학 입시나 취업을 준비할 때 자기소개서를 써본 사람은 쉽게 동의할 것이다. 대입 수험생의 경우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면 고교 3년간 무슨 공부를 얼마나 했고,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취업 준비생의 경우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어느 수준으로 했으며, 사회에 나가 진정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자기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대학이나 기업에 명문(名文)을 제출하겠다는 욕심으로 자기소개서 작성을 남에게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생의 중요한 지점에서 자기 발견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문장력에 자신이 없더라도 본인이 직접 써봐야 자기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다.


“글쓰기를 잘 못하는 사람들은 생각도 잘 못한다. 생각을 잘 못하면 남들이 대신 생각해줘야 한다.” 소설가 조지 오웰이 한 말이다.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글을 못 쓰면 생각을 못한다니…. 또 생각을 못해 남의 생각을 가져와야 한다니…. 애써 글쓰기 훈련을 하지 않으면 이런 사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능력과 상관없이 귀찮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하지 않는 사람도 별반 차이가 없다. 오웰의 말을 이렇게 바꿀 수 있겠다. “글쓰기를 잘하지 않는 사람들은 생각도 잘하지 않는다. 생각을 잘하지 않으면 남들이 대신 생각해줘야 한다.”  


글쓰기는 자기발전, 자기성장에 더없이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자기발전을 위해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문학적 글쓰기는 시인이나 소설가의 영역이라 치자. 그러나 논리적 글쓰기는 남녀노소, 직업과 상관없이 누구나 해야 한다. 


초등학생이 쓰는 독후감, 중고교생의 수행평가, 대입 논술시험과 대학생 리포트, 자기소개서, 석박사 논문, 상품 사용설명서, 업무 기획서, 조사 보고서, 회의록, 보도자료, 판결문…. 세상이 온통 글쓰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해야겠다. 


과학기술 발전과 정보혁명이 가속화하면 글쓰기가 필요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정보기술 혁명으로 글의 유통을 방해하는 장벽이 완전히 사라질 경우를 상상해 보라.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사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이해와 공감을 얻는 글을 쓸 수 사람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다양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가 부와 권력의 원천이 되는 세상이 곧 도래할지도 모른다.

 

글을 잘 쓰는 사람 중엔 타고난 사람이 간혹 있긴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글쓰기 능력은 노력의 산물이다. 설령 글재주를 타고난 사람이라도 갈고닦지 않으면 성장에 한계가 있다. 글에 관심을 갖고 무엇인가 많이 읽고, 어떤 글이든 많이 써본 사람이 잘 쓰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 글쓰기의 최고 비결은 누가 뭐래도 독서다. 글 쓰는 기술만 익혀서는 잘 쓰기 어렵다. 누구나 훌륭한 글을 쓰려면 일단 콘텐츠가 풍부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 자료 독해 능력, 논리적 문장 구성 능력, 멋진 어휘나 아름다운 문장은 남에게서 얻어와야 하는데 가장 효과적으로 얻을 수 경로는 바로 책이다.

 

때문에 글쓰기를 잘하려면 독서광이 되어야 한다. 독서광이라고 모두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독서광이 아니면서 글 잘 쓰기는 사람은 드물다. 독서와 글쓰기가 한 몸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러셀도 독서광이었다. 그는 유년기에 부모를 잃는 바람에 조부모 집에서 성장했는데, 그곳에는 좋은 책이 넘쳐났다. 할아버지는 러셀이 6세 때 사망했지만 일찍이 수상을 지냈다. 덕분에 셰익스피어, 밀턴, 드라이든,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손쉽게 만날 수 있었고 할머니를 찾아오는 당대 저명한 문필가들과 대화할 수도 있었다. 곁에 좋은 책이 많아도 읽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하지만 러셀은 무슨 책이든 가까이했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의 건강을 염려해 자주 독서를 말려야 했다.


청소년 시절에는 문학 서적과 함께 수학, 철학, 종교, 사회학, 정치학, 과학 분야의 책을 두루 섭렵했으며 결국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대학을 갓 졸업한 24세 어린 나이에 ‘독일 사회민주주의’라는 책을 처음 출간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폭넓은 독서 덕분이라고 해야겠다. 과학과 정치, 경제 지식이 한데 어우러진 걸작이란 평가를 받았다.


러셀의 글은 읽기가 쉽다. 수학이나 논리학 저술을 제외하면 누구나 가까이할만하다. 읽기 쉽다고 해서 수준이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내용이라도 간결체로 사실과 감정의 정곡을 찌른다. 수학 공식처럼 논리가 명쾌하고 문체가 깔끔해서 이해하기 쉽다. 대표작에 속하는 ‘행복의 정복’ ‘결혼과 도덕’ ‘서양 철학사’ 같은 책을 읽어보면 이를 금방 느낄 수 있다. 그가 철학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그의 글은 또 진솔하고 위트가 넘친다. 특히 신문이나 잡지에 쓴 짧은 에세이를 보면 동네 아저씨가 편안하게 들려주는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 같다. 첫머리에 소개한 짧은 문장은 러셀이 저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의 서문에 쓴 말이다. 말이든 글이든 폼 잡고 근엄하게 굴지 않겠다는 철학자의 다짐이다. 재미있고 감칠맛 나는 그의 글은 이런 삶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러셀의 책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영어 원서를 구해 읽어보라고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러셀이 글을 잘 쓴 것이 특별히 훈련을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다. 어린 시절  훈련받은 기록이나 흔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가정교사한테 문법이나 철자법 정도는 배웠을 가능성은 있다. 역시 폭넓은 독서의 힘이라 생각된다.


책은 글쓰기에 필요한 영감과 재료가 함께 담긴 깊은 샘물이다. 누구나 글을 잘 쓰려면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지적 근육을 키워야 한다. 책을 많이 읽지 않고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 비법은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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