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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May 24. 2024

<10> 부모의 권력욕이 자녀를
망친다

<자율>

-사랑에 소유욕이 침범하면 활력을 잃는다

-공포나 금지 대신 용기와 자유를 줘라



“새로 태어난 생명은 무력하다. 그러므로 부모 마음속에선 새 생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이 충동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만족시켜 주는 동시에 부모의 권력욕까지 만족시켜 준다. 갓난아기를 무력한 존재로 여기면서 기울이는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다.”
 
 

부모의 자녀 사랑은 고결하고도 위대하다. 남녀 간의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어야 행복하지만,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어떠한 조건도 시한도 없다.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가진 것 모두를 내어줄 수도 있다. 그것이 자기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그렇다. 


하지만 세상의 부모 중에는 자녀 교육에 서투른 사람이 많다. 자녀를 성공과 행복으로 이끌면서 자신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본다. 왜 그럴까? 아일랜드 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답을 주는 듯하다. “부모는 하나의 중요한 직업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자녀를 위해 이 직업의 적성검사가 행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 교육과 관련해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고 아기를 낳는다. 의학 발전 덕분에 건강 측면에서는 별 걱정할 것이 없지만 교육적으로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러셀은 이런 점을 중시해 교육철학과 관련해 탁월한 글을 다수 남겼다. 그는 존 로크나 장 자크 루소 못지않게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러셀은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행복의 정복’에서 바람직한 부모자녀 관계와 관련해 전향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자녀에게 자율과 자유, 독립성을 부여해야만 성공할 수 있고 부모자녀가 함께 행복할 수도 있다는 주장으로, 그의 교육철학을 관통하는 내용이다. 첫머리에 소개한 글이 바로 그것이며, 아무리 어린 자녀라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부모가 함부로 권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게 핵심이다.


러셀의 이런 주장은 부모의 권력 행사와 자녀의 순종이 일부 미덕으로 남아있던 100년 전 시대상을 감안하면 상당히 획기적이다. 그는 이런 예를 들었다. 혼자 힘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아이에게 수고를 덜어준다는 이유로 대신 밥을 먹여준다고 치자. 이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권력욕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부모, 조부모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겠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어른 입장에선 사랑을 듬뿍 담은 행동이라 생각하겠지만 혼자 힘으로 먹을 수 있는 아기의 벅찬 성취나 기쁨을 빼앗는 것이 될 수 있겠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 힘든 철학자의 예리한 통찰이 스며든 분석이다.

 

러셀은 부모가 아이에게 각종 위험성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갖도록 하는 것은 아이가 자신에게 계속 의지하며 살게 하려는 욕심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또한 보통의 부모들이 간파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부분이다. 그는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식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애써 권력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자녀가 반발할 일도, 부모가 실망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부모자녀 관계가 원만할 것이란 생각이다. 이런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애초에 부모가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는 소유욕이나 억압이 뿌리내리지 못할 정도로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돼야 한다고 러셀은 강조한다.


부모의 자녀 사랑이 아무리 고결하다 해도 소유욕이 침범할 경우 그 사랑은 활력을 잃게 된다. 부모의 소유욕은 어느 정도까지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그 바탕에 이기적인 마음을 깔고 있기 때문에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 철학자의 판단이다. 만약 자녀를 소유물처럼 여겨 폭군 행세를 하다 반발을 사게 되고, 그것에 억울함을 느끼게 되면 행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러셀은 부모자녀 관계에서 양쪽 모두 만족감을 느끼려면 상대방의 인격에 흠이 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부모는 자녀가 가급적 빨리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부모와 자녀는 언젠가 별개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지금도 이런 조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부모자녀가 갈등을 겪는 모습을 자주 본다. 따지고 보면 십중팔구 부모 책임이라고 해야겠다. 사랑과 소유를 구별하지 못해 자녀를 독립적 인격체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자녀 진로 문제에서 가장 많이 부딪힌다. 학원에 갈 것인가 축구를 할 것인가, 예술을 할 것인가 문학을 할 것인가, 경영대를 갈 것인가 전자공학과를 갈 것인가, 취업을 할 것인가 대학원에 진학 것인가. 부딪힐 수 있는 지점은 부지기수로 많다. 부모가 권력욕을 거둬들이지 않는 한 서른, 마흔이 되어서도 충돌할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자녀는 방황하게 되고, 부모자녀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불화를 겪게 된다.


노무현 정부 때 교육혁신위원장을 지낸 전성은의 진단은 오랜 교단 경험(거창고 교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설득력 있게 들린다. 


‘왜 부모는 자녀를 불행하게 만드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에서 그는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원인 제공자가 부모가 아닌 경우를 본 적이 없다”라고 썼다. 그는 적어도 학교에는 문제아가 없고 ‘문제 부모’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갈등의 책임이 전적으로 부모에게 있음을 말해준다. 책에서 전성은은 ‘자녀의 인생을 설계하지 말라’를 부모의 제1 계명으로 삼으라고 했다. 다소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고, 부모 입장에선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모의 애정 담긴 관심조차 불필요한 간섭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조언이다. 


‘중동의 성자’ 칼릴 지브란도 이 지점을 중요하게 보았다. 그는 저서 ‘예언자’에서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님을 특별히 강조했다. 부모는 자녀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규정했다. 


“여러분(부모들)은 그들(자녀들)의 육체를 위해 집을 줄 수는 있지만 그들의 영혼을 위해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들의 영혼은 여러분이 꿈길에서도 가볼 수 없는 내일의 집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녀에 대한 부모의 모든 관심과 간여, 간섭은 대부분 일방적인 것이다. 자녀가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서 행동에 옮긴다. 부모자녀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아니라 독립된 존재라면 조심스럽게 상대방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게 맞지 않은가? 관심이든 간섭이든 자녀가 필요 없다고 하면 지체 없이 물러서는 게 옳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자녀의 독립적인 행보가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른다. 부모가 자녀에게 오랜 기간 종속적인 존재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아이가 서둘러 독립심을 기르지 못할 경우 성장기 또래 집단에서 소외될 수 있다. 사이비 종교와 같은 반사회적 집단의 희생물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러셀은 자녀가 독립심을 갖고 조기에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용기를 심어주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평소 공포심을 심어준다든가 금지를 남용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했다. 이는 결국 소유욕을 앞세운 권력 행사를 단념하라는 뜻 아니겠는가.


러셀의 이런 교육론이 자칫 루소 스타일의 자유방임주의를 연상케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당시 영국 학교의 규율 중시 교육에도 반대했지만 방임 교육의 위험성을 자주 지적했다. 부모나 교사가 권위를 내세워 아이를 억누를 경우 노예근성을 갖거나 반항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동시에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놔둘 경우 불량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러셀은 결국 사랑이 좋은 교육을 위한 최고 해법이라고 보았다. 부모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소유욕이 배제된, 진정한 사랑을 베풀면 성격교육과 지식교육을 동시에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랑을 실천하려면 부모자녀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 먼저 부모가 모범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실된 대화, 속 깊은 이해, 솔직한 사과, 언행의 일관성으로 자녀를 따뜻하게 품어 안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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