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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맨손으로 일본 최대 가구업체 일군 남자

-학업도 직장생활도 사실상 포기했던 낙오자, 니토리 아키오

by 물처럼

*니토리 아키오(1944~ )= 일본의 니토리 홀딩스 창업자이자 회장. 니토리는 국내외에 약 1000개의 매장을 보유한 일본 1위 가구업체.



일본 대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 하는 기업은 소프트뱅크도, 유니클로도 아니다. ‘일본의 이케아’라 불리는 가구업체 니토리다. 일본경제신문과 일본 최대 채용 사이트 마이나비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취업 선호도 조사에서 거의 매년 1위를 차지한다. 높은 연봉과 인간존중 기업문화 덕분이라고 한다.


1967년 홋카이도 삿포로의 허름한 가구점에서 출발한 니토리는 현재 국내외에 약 1000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2032년까지 3000개로 늘린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목표를 달성하면 매출이 3조 엔(약 27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이 기업을 창업해 키운 사람은 니토리 아키오다. 청년 시절 자타가 인정하는 인생 낙오자였지만 자신감 하나로 희망의 성공 스토리를 쓴 기업인이다. 그는 일본 청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인생 멘토다.


니토리 아키오는 학창 시절 공부를 지지리도 못해 부모 속을 많이 썩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대부분의 과목은 최하등급이었으며, 아이들에게 늘 놀림을 당했다. 고등학교진학을 위해 여러 학교에 응시했으나 다 떨어지자 암거래 쌀장사를 하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응시한 학교 교장에게 쌀 한 가마니를 뇌물로 주고 간신히 합격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긴 했지만 성적은 여전히 최하위권이었다. 커닝을 해가며 겨우 진급해 졸업을 했으나 대학 진학이 순조로울 리 없었다. 4년제 대학에 다 떨어지는 바람에 단기대학(한국의 전문대학)에, 그것도 추가 합격으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가 경영하던 조그마한 하청 토목회사에 들어갔으나 중노동에 지쳐 그만두었다. 광고회사에 영업직 사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6개월 동안 계약을 한 건도 따내지 못해 해고되었다.


다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열 군데 이상 문을 두드렸으나 받아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만둔 광고회사를 찾아가 잡일이라도 하겠다며 억지를 부려 재취업에 성공했으나 6개월 만에 또 잘리고 말았다. 하는 수없이 아버지 회사에 다시 몸을 실었지만 갑작스러운 화재로 공사 현장이 불타는 바람에 그곳마저 떠나야 했다. 이런 청년에게 무슨 미래가 있었을까?


인생 낙오자가 되다시피 한 23세 청년 니토리 아키오는 어쨌거나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장사를 시작했다. 돈을 빌려 삿포로에 30평(약 99제곱미터) 규모의 가구점을 차려 ‘니토리가구도매센터 북(北) 지점’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이 간판에는 세 가지 뻥이 들어있었다. 도매점이 아님에도 물건값이 싸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도매’, 매장이 크고 종류가 많다는 이미지를 갖도록 하기 위해 ‘센터’, 다른 곳에 더 큰 본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기 위해 ‘북지점’이란 표현을 썼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대인공포증이 있어 손님에게 눈 맞춰 물건 설명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개업 이듬해 결혼한 아내가 사교성이 좋아 장사에 도움이 되었지만 근처에 대형 가구매장이 생기는 바람에 폭삭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여러 차례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그를 곤경에서 구하고 성공의 물꼬를 트게 한 것은 가구사업 컨설팅 기업의 주선으로 떠난 미국 가구업계 견학 여행이었다.


그는 LA와 샌프란시스코의 선진 가구 매장을 견학하며 발상의 전환을 꾀하게 된다. 저렴한 가격, 고객맞춤형 기능, 토털 코디네이션이 시대적 흐름임을 간파하고 이를 위해서는 가구 회사의 체인화가 불가피함을 파악한다. 당시 일본의 가구 소매업계에서는 ‘매장은 최대 5개까지’가 철칙처럼 돼있었지만 그것이 잘못임을 확신하게 된다.


미국 여행은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기회였다. 꿈과 희망, 자신감을 갖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니토리 아키오는 자서전 ‘거북이’(이수형 옮김, 지식공간, 2017)에 이렇게 썼다.


“미국에 가기 전 나는 스스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며 내 인생을 지레 포기했다. ‘열심히 해 봤자 사람은 결국 팔자대로 될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숙명주의자였다. 그런데 여행을 마친 뒤로 ‘미국과 같은 풍요로움을 일본에도 확산시키고 싶다’라는 꿈, 즉 큰 뜻이 내 안에서 싹텄다.”


이후 그의 사업은 술술 풀려나갔다. 귀국 직후 체인스토어 사업 기법을 배워 매장 수를 늘리는데 착수했다. 그리고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30년 계획을 수립해 1972년 두 곳에 불과했던 매장을 2002년까지 100개로 확장하고, 같은 시기 매출을 1000억 엔으로 늘리기로 했다. 목표는 불과 1년 늦은 2003년에 달성할 수 있었다.


니토리 아키오는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항로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조언한다.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다음은 자서전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단언컨대 ‘공부를 못하니 성공할 수 없다’라는 생각은 틀렸다. 중요한 건 ‘사안을 보는 시각’, 그리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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