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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커피를 하루 50잔이나 마신
소설가

-시도 때도 없이 매질당했던 학업 열등생, 오노레 드 발자크

by 물처럼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 프랑스의 소설가.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 91편의 작품을 한데 묶은 ‘인간희극’이 대표작.



소설 ‘고리오 영감’으로 유명한 오노레 드 발자크는 커피를 하루 30잔에서 50잔이나 마셨다. 커피를 ‘내 삶의 위대한 원동력’이라고 찬미한 사람답다. 잠들지 않고 쉼 없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 평균 15시간씩 글을 썼다. 독한 터키쉬 커피를 유달리 즐긴 이유다. 51세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은 과로와 카페인 중독 때문 아닐까 싶다. 커피 의존의 예에서 보듯 그는 목숨 걸다시피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대표작 ‘인간희극’을 보면 그의 창작 활동이 얼마나 왕성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는 42세 때인 1841년, 그동안 발표한 각종 작품과 앞으로 쓰게 될 작품의 목록을 정리해 144편으로 된 ‘인간희극’을 발간하기로 기획한다. 일찍 죽는 바람에 완성하지는 못하고 50여 편을 미완의 상태로 남겼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 직후부터 2월 혁명(1848년) 때까지 복잡다단한 사회상과 인간상을 그린 이 작품집에는 소설, 콩트, 에세이가 무려 91편이나 실려 있다. 작품의 장르는 정치, 종교, 역사, 범죄, 미스터리, 판타지, 로맨스, 비평, 풍자 등 실로 광범위하며 등장인물이 2000명이 넘는다.


야망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부터 삶에 지친 노인들까지 주인공들의 사랑과 배신, 욕망과 좌절을 그렸다.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 정치학,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 건축학의 상상력을 동원한 대하드라마다. 인생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지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행하기 힘든 기획이다.


발자크가 어린 시절 게으른 학업 열등생이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어디서 이런 열정과 능력이 생겨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군수품 공급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불행한 소년기를 보냈다. 부유했지만 부모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정한 어머니는 아들을 낳자마자 멀리 어느 유모한테 맡겨버렸으며, 4세 이후에는 또 다른 가정에 보내버렸다. 아이는 매주 한 번 정도 친척 집 방문하듯 집에 올 수 있었다.


7세가 되자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이 학교는 체벌이 만연해 어린아이에게 교도소처럼 느껴졌다. “루아르 강변에 위치한 이 기숙학교는 어두침침한 탑들과 강력한 성벽을 가지고 있어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감옥 같다는 인상을 일깨운다. 2, 3백 명의 학생들은 첫날부터 수도원처럼 엄격한 교육을 받게 된다. 방학도 없고, 부모들이 방문하는 것도 거의 예외적인 경우로만 한정되었다. 발자크는 한 번도 집에 간 적이 없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발자크 평전’(안인희 옮김, 푸른숲, 2014)에 나오는 내용이다.


발자크는 학업 성적이 저조한 데다 반항하는 아이여서 사제인 교사들에게 자주 매를 맞았다. 교사들은 그를 게으른 데다 라틴어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몽상가로 취급했다. 라틴어뿐만 아니라 수학도 못하는 편이었다. 그는 학교 성적이 계속 떨어지고, 교사 체벌이 심해지던 14세 때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져 집으로 돌아왔다.


휴양도 잠시, 발자크는 다른 기숙학교에 들어갔으며, 그곳에서도 잘 지내지 못했다. 기숙학교를 또 옮겼지만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교사와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는 외톨이였으며, 성적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라틴어 과목에서 35명 가운데 33등을 해 부모를 실망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그럼에도 발자크는 와신상담, 열심히 공부한 덕에 졸업시험을 통과했으며, 내친김에 소르본 대학 법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17세 때였다. 아버지는 변호사가 되길 바랐지만 발자크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법학 공부는 제쳐둔 채 글쓰기에 몰두한 이유다. 사실 작가가 되려는 욕망은 무척 힘들었던 기숙학교 시절부터 키워왔다.


그는 성적 부진과 체벌에 따른 고통스러운 순간을 잊어버리기 위해 틈만 나면 학교 도서관을 찾아 독서에 재미를 심취했다. 역사, 종교, 철학, 과학 등 분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온 힘을 다해 독서에 빠질 때 나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듯했다. 마치 공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학업 성적은 내세울 게 없었지만 지식은 점점 쌓여 훗날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독서 이력은 아마 소르본 대학 진학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20세가 된 발자크가 ‘크롬웰’이란 제목의 희곡 한 편을 완성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성공 가능성을 체크해 보기 위해 콜레주 드 프랑스의 어느 교수에게 원고를 보냈다. 하지만 답변은 절망적이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절대로 작가가 될 자격이 없으니 말리세요.”


발자크는 하는 수없이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했지만 작가가 되려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생활비 돈줄을 쥐고 있던 아버지를 만나 담판을 지었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공증인도 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소설가, 극작가가 될 것입니다.”


이후 앞뒤 가리지 않고 많은 글을 썼다. 20대 내내 가명으로 상업소설과 통속소설을 열심히 썼다. 31세 때 드디어 ‘마법의 가죽’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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