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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책 한 권이 위대한 우주인을
만들다

-학교 공부에 흥미도 재능도 없었던 소년, 스콧 켈리

by 물처럼

*스콧 켈리(1964~ )= 미국의 해군 전투기 조종사, 우주비행사.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1년간 장기 체류하는 임무 수행.



소년에게 학교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매일 등교는 했지만 교실에 갇혀 지루해서 안달하며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줄곧 교사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몽상만 하고 지냈다. 역사 문법 대수 등 모든 교과목은 자신과 무관한 것이었고, 도무지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일곱 살 때 또래들보다 읽기 실력이 한참 뒤떨어지자 부모가 특수교사 출신인 외할머니에게 평가와 도움을 청했다. 외할머니는 손주를 데리고 며칠 상대해 보고는 가망이 없다고 두 손 들고 말았다. 미국의 자랑스러운 우주비행사 스콧 켈리가 자서전 ‘인듀어런스’(홍한결 옮김, 출판사 클, 2018)에서 밝힌 자기 어릴 적 모습이다.


그렇다. 켈리는 각고의 노력으로 미국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 부끄럽고 참담한 마음을 지을 수 없다. 대학에 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하위권으로 졸업한 뒤 볼티모어 카운티의 메릴랜드 대학에 겨우 들어갔지만 공부에는 여전히 관심도 자신도 없었다. 그럼에도 어른들이 물으면 의사가 되겠다고 대답했다. 고등학교 시절 응급구조사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 때문이다. 의예과 수업을 신청했지만 첫 학기부터 낙제였다. 스스로 인생에 별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8세 대학생 앞에 미래를 환히 비춰주는 책 한 권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는 ‘인듀어런스’에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놓았다.


“어느 날 교내 서점에 군것질거리를 사러 들어갔다가 진열된 책 한 권에 시선이 끌렸다. 표지에는 마치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듯한 글씨체로 ‘영웅의 자질(The Right Stuff)’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독서에 취미가 없었다. 학교에서 읽으라는 책은 영 따분해서 마지못해 책장만 휙휙 넘겼다. 읽은 책을 시험 볼 때는 판매하는 요점정리 노트를 외워서 겨우 패스하기도 하고 못 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살면서 내 손으로 골라 읽은 책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왠지 끌렸다.”


책은 톰 울프라는 작가의 소설로, 해군 전투기 조종사들의 목숨 건 도전을 다룬 내용이었다. 청년은 책을 사 오자마자 기숙사 골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읽었다. 조종사들의 긴장감, 불확실성, 위험성이 찐하게 느껴졌다. 가슴이 쿵쾅거렸고, 숨 막히게 전개하는 작가의 문장들이 머리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청년은 그만 소설에 넋을 잃고 말았다. 켈리는 이렇게 회고한다.


“책 한 권에서 나는 내가 영원히 찾지 못할 것 같던 뭔가를 찾았다. 그것은 야망이었다. 그날 밤늦게 책을 덮은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실제로 캘리에게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삶의 목표가 생겼고, 그것을 이뤄내려는 야심이 불뚝 솟아올랐다. 책에 나오는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 어쩌면 우주비행사까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지금까지 이수한 교과목 대부분의 성적은 바닥이고, 비행기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지만 어딘가 자신감이 생겼다.


당시 해군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코스는 경쟁이 무척 치열했다. 만년 열등생에게는 정말 힘든 도전이었다. 해군사관학교 진학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차선으로 상선사관학교에 도전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성적이 바닥인 데다 SAT 점수도 시원찮았기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면접 때 경찰관 부모 밑에서 자란 이야기, 가족과 망가진 보트를 탔던 이야기, 응급구조사 경험 등을 내세웠지만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켈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 익히지 못한 내용을 기초부터 다시 공부했다. 전투기 조종사가 되겠다는 목표가 워낙 강렬했기에 태어나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어졌고, 성적이 쑥쑥 올랐다. 노력 끝에 선박 사관을 양성하는 뉴욕주립해양대학에 간신히 편입할 수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거침이 없었다. 미적분, 물리학, 전기공학, 천문항해술, 선박운항술 등 어려운 과목들도 거뜬히 이수해 냈다. 불과 2~3년 전 학습 지진아였던 청년이 어느새 성적 우수생으로 변신했다. 학점이 좋아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ROTC에 입단할 수 있었다. 그의 꿈은 바다가 아니라 하늘이었다. 해양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비행학교에 들어갔고, 우여곡절 끝에 전투기 조종사의 꿈을 이루게 된다. 25세 되던 해였다.


켈리는 F-14, F-18 등을 주로 조종했으며, 48세 때인 2012년 대령으로 전역한 뒤 민간인 신분의 우주비행사가 된다. 그는 2015년 3월 러시아 우주비행사와 함께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에 도착했고, 1년 동안 그곳에서 체류했다. 그의 우주생활 경험은 화성유인탐사에 활용된다. 이후 그는 강연을 다니며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을 어린이와 청년들에게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영웅의 자질’이란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런 성공적인 인생을 펼칠 수 있었을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켈리는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 때 그 책이 자기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주 생각했다고 한다. ‘인듀어런스’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만약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톰 울프가 만약 그 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금까지 해낸 일들은 다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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