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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홀어머니의 믿음
“넌 뭐든지 해낼 수 있어”

-초등 5학년 때 왕바보라 놀림받던 꼴찌 , 벤 카슨

by 물처럼

*벤 카슨(1951~ )= 미국의 신경외과 의사. 세계 최초로 샴쌍둥이 분리수술 성공. 트럼프 1기 때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역임.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뛰어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스핀간 상’을 수여한다. 이 협회는 2006년 존스홉킨스 대학교 신경외과 과장으로 성공한 벤 카슨에게 상을 주면서 수상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꼴찌였지만 미국에서 가장 젊은 소아신경외과 과장이 되기까지 보여준 성장 과정의 삶과 뛰어난 업적에 경의를 표합니다.”


부유하고 안정된 가정에서 손쉽게 성공한 사람이 이런 상을 받는다면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슨의 경우 ‘성장 과정의 삶’이 무척 고단했기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파출부였던 홀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남다른 지혜가 쌓아 올린 금자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극심한 가난과 흑인차별 환경에서도 독서를 통해 난관을 헤쳐나가는데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카슨은 부모의 이혼으로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매일 남의 집에서 일하느라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귀가했기 매문에 형과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해외 선교를 위해 의사가 되려는 꿈을 가졌지만 공부는 뒷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그는 반에서 꼴찌였다. 아이들은 그를 ‘왕바보’라고 놀렸다. 교사가 뭘 물을 때마다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으니 당연했다. 수학시험은 아예 빵점을 맞기도 했다. 중간고사 결과 모든 과목이 낙제점인 F였다. 성적표를 받아 든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벤은 공부를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화를 참지 못하고 사고를 치는 바람에 종종 어머니 속을 썩였다. 비교적 온순한 편이지만 화가 나면 주체할 수 없는 성격이었다. 학교에서 자주 다른 아이를 때리거나 돌을 던져 다치게 하곤 했다. 한 번은 친구 집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채널 변경 문제로 다투게 되었다. 화가 치민 벤은 주머니에 있던 캠핑용 칼을 꺼내 친구의 배를 향해 찔렀다. 칼이 허리띠 버클을 찌르고 부러졌는데, 하마터면 대형사고가 날 뻔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학업 부진과 잘못된 행동에 대해 엄하게 꾸짖으면서도 기대를 접지 않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격려했다. 그의 평전에 속하는 ‘꼴찌, 세계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가 되다’(그레그 루이스와 데보라 루이스, 이주미와 이주영 옮김, 영림카디널, 2020)에 보면 어머니의 이런 격려가 자주 나온다.


“그 사람들(잘살고 성공한 사람들)이나 우리나 그렇게 다르지 않아. 그 사람들이 성공했다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어. 그 믿음을 마음에 품고 열심히 공부하면 너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


어머니가 가장 강조하고 의욕적으로 지도한 것은 독서였다. 배운 것 없는 입양아 출신 어머니지만 가난한 집 아이라도 독서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전 과목 F학점의 중간고사 성적표를 확인한 날,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런 지침을 내렸다.


“이제 텔레비전은 일주일에 세 가지 프로만 보도록 해. 그리고 매주 책을 두 권씩 읽고 독후감을 쓰도록 해. 그것을 엄마한테 소리 내어 읽도록 해.”


신의 한 수였다. 다행히 카슨은 독서를 재미있어했고, 좋아하는 책을 스스로 찾아 읽었다. 도서관에서 동식물과 돌에 관한 책을 죄다 읽을 정도로 독서에 흥미가 생겼다. 카슨은 과학 시간에 어떤 돌의 이름을 묻는 교사의 질문에 자기 혼자 ‘흑요석’이라고 맞히면서 독서의 힘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이를 계기로 ‘왕바보’란 아이들의 놀림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학교에서 교사나 백인 학생들에게 인종 차별을 당할 경우에도 독서의 힘을 믿었다. 독서를 통해 아는 것이 많아지고, 성적이 좋으면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더 열심히 책을 읽었다. 학교 가기 전과 다녀온 뒤, 버스를 기다릴 때도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잠시 방황하기도 했지만 다시 정신을 차렸고, 폭넓은 독서 이력 덕분에 고등학교 때부터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다. 졸업할 때 전교 3등의 성적을 기록했으며, SAT 점수도 꽤 좋았다. 예일대학교 심리학과를 거쳐 미시간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신경외과 의사가 되었다. 카슨은 대학에서 공부나 시험에서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어머니의 응원을 떠올렸다. “카슨, 넌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어.” 어머니의 믿음은 그에게 자신감과 용기의 원천이었다.


카슨은 33세에 존스홉킨스 병원 최초의 흑인 소아신경외과 과장이 되었다. 그리고는 세계 최초로 샴쌍둥이를 분리 수술하는 데 성공했다. 1987의 이 수술을 계기로 카슨은 졸지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의사로 자리매김했다. 학교에서 꼴찌, 왕바보라고 놀림받던 아이가 놀라운 도전 정신으로 세계 최고의 뇌수술 전문의로 성공한 사실은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의 인생 스토리는 연극, 영화, TV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인기가 치솟자 급기야 2016년 대통령 선거 때 공화당 경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한때 트럼프와 1위를 다툴 정도로 선전했으나 결국 중도 사퇴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4년 간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을 지냈다. 지금은 보수성향의 싱크탱크를 만들어 신앙, 자유, 공동체, 생명의 가치를 확산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을 때 어머니는 나를 믿었다.”


유명세를 얻은 카슨이 큰 상을 받거나 각종 강연을 할 때 꼭 이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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