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하고 싶은 건 자꾸만 생기는데 잠깐 푹 빠진 후엔 마음이 팍 식어버린다고. 장롱 한편을 차지한 홈레코딩 기계와 우쿨렐레, 베이킹 도구, 그리고 아직 석 달 정도 남은 영어 스피킹 어플 1년권과 언제부턴가 멈춰있는 그림 계정까지. 이것들은 뭐 하나 진득하게 파고들지 못하는 나를 설명하는 증거물들이었다. 이런 내 고백에 친구는 ‘추진력이 좋다’며 칭찬을 해주었는데 예상치 못한 말에 조금은 놀라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쌓인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리고 만나게 된 운명 같은 책. ‘관심사가 자꾸 바뀌어 이룬 게 없는 것 같다고?’라는 뒷면의 문구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막상 읽다 보니 ‘다능인’이라는 수식어가 약간은 쑥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여러 부분에서 공감이 되고 위로받았다. 어떤 것에 흥미를 잃었다면 원하던 것을 얻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 몰입했던 것을 중단하더라도 그동안의 경험이 한순간에 쓸모없는 것이 되는 건 아니라 말해주는 부분에서 특히 그랬다. 책을 읽은 후 앞선 실패의 증거물들은 용감히 도전했고 온 힘을 다해 즐겼었던 소중한 기억으로 전환되었다.
‘진정한 천직이라는 신화’라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생활기록부 속 작은 칸 안에 들어갈 희망 진로를 적어 내고, 수많은 과 중 하나를 골라 원서를 쓰고, 한 가지의 직무를 선택해야 했던 순간들을 거치며 어쩌면 나는 현재를 위한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나요?’ 하고 물었을 때 그 사람을 단번에 납득시킬 수 있는 스토리.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탐험할 수 있고, 직업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섣불리 닫을 필요가 없다는걸. ‘너가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어!’ 식의 막연하고 이상적인 내용이 아닌, 다능인 기질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이 가득해 유익한 책이었다.
책 | 에밀리 와프닉, 『모든 것이 되는 법』2022.11.09 트레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