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내가 어른임을 새삼스럽게 실감하는 순간이 있다. 인터넷으로 구슬 아이스크림 30개를 한 번에 주문했을 때..도 그랬지만 대게는 학교가 아닌 사회의 셈법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사람 사이에 일과 돈이 끼어들면 어떤 복잡미묘한 순간들이 생기는지 깨달아 갔고, ‘잘 살겠습니다’ 속 빛나 언니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눈치껏 배워갔다.
이런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면 ‘진짜 어른’이 되고 마주할 세상은 마냥 차갑기만 한 곳일 것만 같았다.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이 좋았던 이유는, 그럼에도 세상엔 슬픔뿐 아니라 기쁨이 함께한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나와 거북이알, 케빈이 나눴던 유대감, 빛나 언니가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연대의 마음, ‘탐페레 공항’의 ‘나’와 노인이 나눴던 대가 없는 따뜻함처럼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했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간관계가 가장 힘들다고 하지만 결국 우리가 웃게 되는 이유도 사람 때문인 것 같다.
출근길 지하철을 타면 종종 ‘이 많은 사람은 다 어디로 무얼 하러 가는 걸까’ 궁금해진다. 게임 캐릭터를 선택하듯 한 명 한 명의 하루를 펼쳐보고 싶기도 하다. 이 책의 단편들은 그런 느낌이었다.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옆자리 사람을 툭 건들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이야기.
오늘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이어갈 우리가 슬픔보다는 기쁨을 더 많이 느꼈으면 한다. 가끔은 의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육교에 올라가 보고, 바쁜 일상에 쫓겨 잊고 있던 얼굴을 꺼내 보기도 하면서.
책 |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2023.01.12 트레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