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4월호 <university, agora>
대학 내 아고라는 형성되었는가?
그것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가?
우리는 흩어지는 수많은 목소리를 듣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도 수많은 대학교의 건물 곳곳에는 대자보가 휘날린다. 테이프로 아무렇게나 붙여진 커다란 대자보에는 총학생회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모 학과 단톡 방의 성희롱성 발언들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그마저도 담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 써 내려가지 못해 글씨가 빽빽하게 가득 찬 대자보를, 많은 대학생들은 그저 지나친다. 마치 그런 긴 글들은 쳐다도 보기 싫다는 듯,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렇게 하루에도 수십 개의 목소리들을 그저 지나간다.
대자보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주, 또 많이 오가는 곳에 붙여지기 마련이다. 중앙도서관 앞, 학생회관의 기둥부터 내려가는 계단에까지, 모두가 각기 다른 내용들로 부정한 것들을 고발하고자 소리를 내고 있다.
대자보는 중국 인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대형 게시문에서 시작되었다. 요즈음은 대학가에서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거나, 알려지지 않은 비리를 폭로할 때 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대학생들의 아고라는 주로 이 대자보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아고라는 대체적으로 어떠한 목표의식도 갖고 있지 않다. 허상에 가까운 아고라일 뿐, 무엇인가 핵심적인 것들이 형성되기 이전에 이 아고라는 사라진다. 그저 새로운 가십에 목마른 이들이 첨예해진 갈등에 불씨를 키우기만 할 뿐, 정작 본질적인 내용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 대자보는 하루 정도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 타임’에 장식되곤 하지만, 그다음 날이 되면 또 다른 이슈가 그 대자보를 덮는다.
도서관 앞 대자보가 바닥에 뒹군다. 어느 부분은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찢어 내용을 훼손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 대자보의 담긴 내용과 누군가의 견해, 더 나아가 그 누군가의 의식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대자보가 바닥에 뒹굴고 찢기면서, 글쓴이의 의견에 덧붙여 발생할 수 있었던 치열한 논쟁마저, 발화되기도 전에 휘발된다.
매일같이 새로운 대자보는 붙여지고, 그 전의 대자보는 자연스럽게 찢기고 버려진다. 쓰레기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자보는 결국 의미 없는, 낡아버린, 혹은 짓밟혀버린 누군가의 목소리다. 대자보는 어떠한 토론의 장을 형성하지 못한 채, 잠시 누군가가 부정함에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끝내 해결되지 못한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다. 궁극적으로, 대자보를 쓰고 붙이는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대자보는 아고라 형성의 가장 유리한 출발 지점 같은 것이다. 점점 더 파편화되어 가는 개인화 사회에서 아고라는 점차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워졌다. 모두들 자신들의 의견을 내뱉지 않으며, 다른 이들의 의견 또한 들어주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자보는 아고라를 보다 쉽게 형성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그저 글을 읽고, 내용에 대해 공감하고, 혹은 반기를 들기 시작하면, 새로운 토론의 장은 이미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마저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유고라의 주체인 대학생들은 점차 짧고 자극적인 화제들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금방 휘발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그런 화제들. 그러면서, 글씨가 가득한 대자보는 그저 지나쳐도 무방한 글, 나와는 상관없는 일, 똑같은 주제로 지겹게 되풀이되는 내용들만이 가득한 글이 되었다.
결국, 누군가가 반강제적으로 아고라를 형성하지 않는 이상, 대학생들의 아고라는 형성되지 않게 되었다. 자발적인 의견 교류와 토론의 장은 점차 온라인으로 옮겨 가기 시작했고, 그 마저도 온라인의 빠른 흐름에 따라, 하루면 새로운 화제가 등장하고, 이전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잊혔다.
한편으로는, 대학생들이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사회 변화에 편승하고, 받아들이는 집단임을 감안하면, 온라인 내의 아고라 또한 긍정적으로 용인되어야 한다. 하지만, 온라인의 아고라는 본질에 좀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자극적인 정보와 단어들의 나열이 아니라, 보다 깊이 있는 의견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올바른 정보를 적절하게 분리하여야 한다. 특히나 요즘 같이 진실과 거짓이 혼재되어 있는 온라인 소사이어티에서는 더욱 이러한 정보들의 흡수와 표현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적절하게 보이는 방법은 온ㆍ오프라인이 결합된 의견 교류다. 이전의 지식인들이 카페에서 자신들의 철학적 견해와 의견을 적극적으로 공유했던 것처럼, 대학생들은 더 광범위해진 의견 교류의 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오프라인의 주제를 온라인으로 옮겨온다거나, 온라인의 가십을 오프라인에서 치열하게 토론하는 것으로 아고라는 광대하게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대자보와 같은 목소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자보를 통해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점의 이야기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대자보에 담긴 이야기는 결국 같은 학교 학생, 자신의 선후배, 동기, 더 나아가 내 옆 친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회 및 학생 자치 단체의 차원에서도 대자보에 더욱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학생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대자보, 혹은 수많은 대자보를 읽는 학생 개인은 결국 개인일 뿐이다. 한 개인의 이야기가 실제적으로 어떠한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눈과 목소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학생 집단은 이러한 대자보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결국 대자보는 누군가의 용기로 시작된 것이다. 분명 아직도 내뱉어져야 할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다만, 용기가 없어서, 곧바로 묻힐까 봐, 이러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속내에만 감추어져 있다. 따라서 학생 단체는 이러한 학생들의 자유 발언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하며, 계속해서 다양한 의견 교류가 지속되어, 대학교의 시스템 및 소사이어티가 올바르게 정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견이 교류되지 않고 각 개인에게 고이기만 한다면, 결국 언젠가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터지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적절한 때에 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목소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내주어야 한다.
대학생들의 아고라는 가장 광범위하고 다양한, 20대들의 의견을 접할 수 있는 적절한 플랫폼이다. 따라서 대자보를 비롯한 적극적인 의견 교류가 끊이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에 따른 올바른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대학 내의 소사이어티뿐만 아니라, 대학 바깥의 사회에서도 이를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학 내부에서 공유된 의견들이 사회 전반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정체되고 만다. 대학 내부의 아고라에 참여하고 있는 각 개인 및 단체들은 사회 전반과의 소통 또한 끊이지 않도록 하여, 대학 내부의 이야기가 내부에서만 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는 또한 이들이 대학을 벗어나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데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또한, 대학 외부에서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야 한다. 대학 내부의 사회는 ‘특수한’ 사회가 아니다. 이 또한 하나의 일반적인 소사이어티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 전반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위해서는 거대한 사회 구조 안에 존재하는 각 미시 사회가 적극적으로 소통하여야 한다. 결국 각 미시 사회는 상호 연결되어 있고,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대자보는 붙여진다. 누군가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공중에 흩어지고, 대자보는 또다시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여전히 아고라는 텅 비어있다. 따라서 아무리 소리쳐도 들어주는 이가 없다. 그러면, 이 아고라를 비롯한 사회는 운영될 수 없다. 사회는 각 개인들의 이해와 소통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보다 더 나은 삶을, 올바른 삶을 꿈꾼다면, 오늘 무심코 지나친 대자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