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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정 Sep 25. 2021

나의 우울증 치료기 08

여름에서 여름까지


  병원에 처음   작년 여름이었다. 이제  9월도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년을  채워 다닌 셈이다. 여전히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고, 가족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괜찮은 척을 하고 있었다. 길고 귀찮은 검사들을 끝내고  진료를 보는 , 무심한 표정의 의사는 나를 보고 엄마에게 말을 많이 들었다며 반말로 나를 대했다.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엄마와 알고 지낸 분이라는  애써 떠올렸다. 인턴 때부터 알았다니까 어쩔  없지. 입원을 생각하고 갔는데, 내게 처방이 나온  저녁에 먹을 알약  정이 전부였다.  약을 먹고 사흘 밤을 꼬박 새웠다. 잠이  와서. 평소 약기운에 취해 잠들  내게는 약이 적긴 적었던 듯하다. 급하게 재진을 받고 증상에 대해   많은 말을 하고 아침  3, 저녁  6정을 받아왔다. 그렇다고 갑자기 너무 늘린  아닌가요 싶었지만.


 게다가 직전까지 다니던 병원과 달리 진료 텀도 길었다. 그 전 병원은 진료 한 번 상담 한 번 해서 일주일에 두 번씩은 갔어야 했었는데, 여기는 격주로 진료를 봤다. 진료 중에도 전보다 많은 말을 하진 않았다. 격주로 가서 약을 받아먹었고, 두 달이 지나자 진료 간격은 3주가 됐고, 또 두 달이 지나 한 달이 됐다. 나는 그동안 뭘 했을까? 일단 학교에 등록은 했다. 그리고 가지 않았다. 엄마 직장에서 나오는 8학기치 학자금의 마지막을 그렇게 날렸다. 대신 나는 정말 많이 놀았다. 언니의 평생 염원이었던 반려동물을 들이면서, 유일하게 출근을 하지 않는 나는 하루 종일 강아지와 누워있었다. 가끔은 뛰었고 주말마다 강아지가 놀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정말 잘 놀았다.


 봄까지도 계속 놀았다. 학교에는 드디어 휴학계를 냈고, 거리두기 강화 전이라 이리저리 술을 마시러 다니기도 했다. 강아지와도 많이 놀았고, 가족들 손에 이끌려 당일치기 여행도 많이 갔다. 봄에 접어들면서는 밥을 하기 시작했다. 밥. 말 그대로 밥을 했다. 가족들은 6시 반부터 7시 사이에 퇴근하니까, 그동안 집에 있는 내가 밥을 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건 아니어도 뭔가를 해낸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서 기쁘게 했다. 각종 국 찌개 탕 찜 구이 볶음 별 걸 다 해봤다. 50대 부부를 주로 먹여야 하니 한식 위주로 거의 웬만한 건 다 시도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루틴이 생겼다. 5시 반이 되면 설거지와 부엌 청소를 하고, 6시가 되면 메인 반찬을 만든다. 메뉴에 따라 미리 만들어두거나 일찍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들이 오면 다 같이 밥을 먹고 강아지를 산책시킨다. 그리고는 또 혼자 논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것보다는 좋았다. 모든 게 평화로웠다. 그냥 이대로 평생 지내고 싶을 정도로.


 5월, 병원에서 이제 고지가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6월 말, 문진검사를 했다. 병원 안 다니는 사람보다 상태가 좋은데?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8월 중순. 마지막 진료를 잡았다. 상태 호전으로 인한 치료 종결. 10월 중순 목표로 약 끊자. 그때는 이제 치료 끝나는 거야. 너무 반가운 말이어서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자랑을 했다.


 나는 지금도 약을 먹는다. 가끔 부정적 감정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치료 종결을 하기로 했다. 그만큼, 나는 건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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