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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불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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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May 04. 2023

내가 정상이라는 사람

어쩌면 나의 불안장애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먼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는 대전광역시라는 큰 도시에서 전 과목 올백을 맞지 않으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똑똑한 친구들 사이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욕한 마디 하지 않는 착하디 착한 아이들이었다. 주변은 연구소단지로 부모님들의 지적, 경제적 수준이 높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친구들과 뛰어놀며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러다 아빠의 회사 발령으로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당시 용인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고, 학교에는 전국 곳곳에서 새로 이사와 처음 만나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허허벌판에 덜렁 지어진 아파트 단지 뒤로는 논밭이었고 올챙이를 잡으로 뛰어놀곤 했다.


그런데, 어쩐지 친구들이 전에 살던 곳의 친구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욕도 시원시원하게 하고 집에는 맞벌이부모님이라 할머니가 계시거나 혼자 지내는 아이들이 많았다. 부모님 사이가 안 좋다며 우는 친구들도 있었다. 우리 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점점 가까워진 아이들은 누군가 한 명을 정해 괴롭히기 시작하더니 화장실에 가두기도 했던 것 같다. 대상이 내가 아니어서 그저 모른 척, 다른 친구들과 놀았을 뿐이었다. 학교폭력의 방관자가 된듯했다. 


"넌 내 친구잖아. 나랑 친했잖아!"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화장실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에게 말했다. 우리 친구지 않았냐고. 친구가 맞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뿐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나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괴롭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렇게 등 돌려 나는 다시 아빠의 발령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만 3번째였다. 마지막 학교도 좀 이상했다. 친하게 지낸다고 생각했던 친구들끼리 수근수근거리고, 나만 쏙 빼고 놀이동산에 놀러 가기도 했다. 전학생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교통사고 등으로 조금 아팠던 친구는 나를 때리기까지 했다. 그 친구는 장난이라며 계속 때리고 나를 따돌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어린 마음에 손절하기로 마음먹고 조용히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 때가 내 인생의 바닥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의사라는 이유로 똑똑하고 예뻤지만, 그만큼 남을 하대하며 놀리고 괴롭히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던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엔 결국 나에게 화살이 돌아왔고 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상처를 안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 그렇게 웃지 말라고 이상하다고 한 그녀의 얼굴이 아직도 뚜렷하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관계에서 회의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단둘이 식사를 해야 하는 자리가 너무 불편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곤 했다. 내가 본인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이 너무 불편해 몸이 뻣뻣하게 굳고 머리가 하얘지는 것뿐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냥 쳐다보는 걸 수도 있을 텐데 내가 뭘 잘못해서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갑자기 그 상황이 너무 불편해져 뇌가 고장 난 것 같은 행동을 했다. 말을 더듬거나 갑자기 문맥에 맞지 않는 말을 했다. 회사에서 유선으로 일할 때가 가장 심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업무를 요청해야 하는데 그냥 거절할 것 같은 부정적인 생각부터 들었다. 그래서인지 말을 심하게 더듬었고,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보이스피싱인지 알고 전화를 끊기도 했다. 병원에 가야 했다.


근무시간 중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울면서 정신건강의학과로 향했다. 처음에 살던 그 동네에서 쭉 살았다면 지금의 내가 아닐거라 생각했다. 내가 당한 상황이 싫었고, 그 애들때문에 아직까지도 위축되는 내가 싫었다. 처음 보는 의사 앞에서 펑펑 울었다. 힘들다고 했다. 회사도 힘들고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힘들다고 했다. 


"본인이 예민한 성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럴 수 있어요.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꽤나 긴 회색 앞머리를 가진 50대 정도의 아저씨가 한 손으로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뇌의 호르몬 분비가 조금 안 돼서 그런 거지만, 본인이 조금만 노력해도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상대방이 표정이 안 좋은 건 그 사람이 원래 그렇게 생긴 걸수도, 아니면 다른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본인한테 이유를 찾지 말고 바깥에서 이유를 찾아보자고 했다. 내가 겪었던 안 좋은 기억이 나 스스로에게 칼을 휘두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약을 먹어서인지 의사의 말이 위안이 되어선지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 말을 어디 가서 한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말했고 처음으로 위로를 받았다. 내가 그런 상황에 있었던 거지,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던 거다. 그 이후에도 1년 정도 병원을 꾸준히 다녔고, 약으로도 할 수 없는 나의 마음,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 계속해서 용기를 주고 위로를 해주었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치료과정이었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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