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내 마음대로 끊은 지 벌써 반년 정도 되었나 보다. 여느 환자가 그렇듯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고, 그러면 또 병원을 안 가게 된다. 그 순간은 다 나은 듯 증상이 없으니 그만 가도 될 것 같고, 또 병원에 가면 바글바글한 그 기다림이 싫어서랄까. 어쩌면 증상이 경미한데도 왜 병원에 오냐는 의사 선생님의 의문 섞인 표정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병원을 나 스스로, 의사 선생님의 허락 없이 3번이나 끊었다. 그러면 잠들어있던 나의 불안이라는 조각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시간은 아마 6개월 정도 걸리지 싶다. 불안하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 같다. 별것도 아닌 거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남편도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발끈하는 빈도수가 늘었단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잘못된 것 같다. 잠이 많아졌다.
어쩌면 결혼을 하고 20대를 바친 나의 직장과 전공을 바꾼, 그런 인생의 회오리 속에 갇혀 그런 걸까. 쉬는 날, 아침에 눈을 뜨고 여유롭게 커피를 음미하면서 책을 읽고 싶었는데, 할 일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올랐다. 메일함을 열어보니 아침부터 회사메일이 와있었다. 쉬운 일, 내일 해도 되는 일이었지만, 이전 회사와 달리 회사와 나를 분리할 수 없는 업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의욕은 개뿔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렇게 다시 나는 침대 깊숙이 들어갔다. 대낮에 들어가 해가 지고 컴컴해질 때까지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거대한 우울감에 집어삼켜져 버렸다.
아 아무것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