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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Mar 24. 2023

모니터링이 뭔데!

오늘은 제 업무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저는 준공무원, 정식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무원에 준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준법이 이행되지 않았을 시에 경고를 줄 순 있지만, 과태료 부과나 처벌에 대한 권한은 없는 거예요. 때문에 '모니터링'은 할 수 있지만, '점검'은 할 수 없는 위치인 거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같이 축산물을 접할 거예요. '나 오늘 고기 안 먹었는데?'라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늘 먹은 국물이 뼈로 우린 육수라던지, 커피에 우유, 빵에 계란 등 나도 모르게 섭취하고 있는 게 많을 거예요. 가축으로부터 생산된 모든 가공품, 부산물 전부 '축산물'로 분류되거든요.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꿀, 프로폴리스, 번데기까지도요. 


그럼 이런 모든 축산물은 과연 깨끗하게 유통되고 있는 걸까요? 내 식탁까지 와서 매일같이 먹는 축산물이 과연 안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만들기 위해 제가 일하는 기관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유통과정을 농장부터 마트 등 판매하는 곳까지 전산으로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그걸 '축산물이력제'라고 합니다. (홍보글 같지만, 저는 곧 떠날 사람이라(?) 그간의 제가 했던 업무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소, 돼지, 닭, 오리, 계란은 생산되면서 각각의 생산품에 긴 번호가 붙어요. 이걸 '이력번호'라고 합니다. 인터넷에 축산물이력제 사이트에 들어가 이력번호를 검색해 보면, 암놈인지 수놈인지, 언제 태어났고 언제 예방접종을 했는지, 어디서 자랐고 어디서 도축되었는지, 몇 등급짜리 소인지 다 알 수가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거예요. 그만큼 믿고 먹을 수 있게.


그렇다면 마트에서 고기를 판매하는 분들은 얼마나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기겠어요. 그저 고기를 도매로 사 와서 소매로 쪼개고 팔기만 하고 싶은데, 본인이 어떤 고기를 매입하고 매매하는지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고기마다 어떤 고기인지 표시까지 해둬야 하는 거잖아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게 법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니까요. 작은 정육점 한 개를 혼자서 힘들게 운영하고 있는데, 이력번호나 유통과정까지 언제 기록하고 보관하고 있겠어요. 여력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처음 정착될 때는 싫어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고요. 더군다나 저희 기관은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없고 잘하고 계신지 모니터링만 합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거죠. 업체는 저희를 더더욱 귀찮아합니다. 대놓고 싫은 기색을 내비치고 화내고 욕하는 사람도 꽤나 많습니다. 슬프게도 그런 거절에 익숙해지진 않더라고요.


그런데, 어제는 조금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끔 방문했던 마트에서 이제는 제가 가면 반가워하더군요. 마스크를 쓰고 방문했지만, 눈매만 봐도 이제는 알아보십니다. 오셨냐고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모니터링 내용을 알아서 척척 말씀해 주십니다. 이력번호가 라벨지에 프린트되어 고기에 잘 붙어있어야 하는데, 먼저 자랑하듯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마트를 한 바퀴 쓱 돌아보는데 뒤에서 졸졸졸 쫓아다닙니다. 저는 모니터링 점검표에 100점을 쓰고는 가보겠다고 감사하다고 인사합니다. 자주 오다 보니까 서로 잘 지키고 깨끗한 업체가 된 거예요. 담당자는 문 앞까지 배웅을 나왔습니다. 저보다 스무 살은 족히 많아 보이는데,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요.


딱히 업체와 친해지려고 노력한 적도 없다만, 자주 방문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친근감이 듭니다. 협조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들고말이죠. 일은 이렇게 하는 건가 7년 차에 다시금 깨닫습니다.


나라에서 처음 시도하는 모든 일들을 처음엔 대부분 싫어합니다. 그 규칙이나 사업을 안전하게 착수시키는 일을 하는 저도 납득이 잘 되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사업이 엎어지는 일도 허다합니다. 그럼에도 살아남고 세상에 널리 퍼지며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이 안정화가 되면 기관이 멋져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시키는 일을 할 뿐이라 모니터링을 하는 업체가 싫어하면 우리 회사보다는 업체에 더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마주하고 부딪히다 보니 세상은 살만하다 싶어 집니다. 세상은 살만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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