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영화기자가 되기 전에 어떤 준비를 했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포스팅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일하는 <씨네21>은 1300호 창간기념호를 기점으로 지면 개편에 들어갔고, 영화인들을 만나 해당 직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커리어' 코너를 신설했습니다. 영화일을 하고 싶지는 어떻게 준비할지 막막한 분들을 위해 신설됐지요. 첫 번째 타자는 류성희 미술감독. 제가 진행했습니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7497
앞으로 이 코너에서 어떤 분들을 만나면 좋을까, 이런저런 분들에게 의견을 듣고 있는데요.
의외로 "저는 기자님이 하고 있는 일이 가장 궁금한데요? 어떻게 하면 영화기자가 될 수 있나요?"
라는 의견도 많더라고요? ^^;;
다른 여러 자리에서 직접 받았던 질문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최대한 솔직하게, 제가 아는 선 안에서, 많이 받았던 질문 위주로 답을 드리겠습니다.
1. 영화를 전공해야 하나요?
우선 저는 영화 전공자가 아닙니다. 심지어 이공계인걸요^^; 영화기자 중에는 영화과를 졸업한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많이 좋아하고 잘 알아야 하는 건 맞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10대 시절은 그냥 평범한 영화 애호가(일주일에 1~2편씩 비디오/DVD 등으로 영화를 빌려보던)로 보냈고 대학교 때부터 이른바 '예술영화'라고 하는 카테고리까지 흥미를 느낀 케이스인데요. 대학교 내 영화 동아리와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참고로 동아리 창립 멤버 중 하나가 <남한산성> <수상한 그녀>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입니다.)
영화과 출신도 아닌 제가 영화를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자기소개서 등에 꼭 썼던 이야기는
(1) 제1회 CGV 영화 퀴즈대회 지원자 3만 명 중 1등을 해서 황금 10돈과 영화 관람권 240매, LA 왕복 항공권을 받은 적이 있다.
(2)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합격한 적이 있다. (개인 사정상 등록은 안 함)
정도였습니다. 영화과 전공은 아닐지라도 그걸 커버칠 수 있는 특이사항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는데, 영화과 전공이 아니시라면 이런 스펙(?) 몇 개는 갖고 계시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자기소개서를 보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제를 많이 다니고 등등 이런 얘기 쓰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지원자들 자소서의 90%에 적혀 있을 이야기 말고 조금 더 자신을 어필하고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세요!
지원자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저는 면접 때 아주 어려운 질문을 받지는 않았어요. 어떤 감독을 좋아하느냐,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 정도의 예상 가능한 질문에 최대한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요즘 영화도 잘 챙겨보지만 사실 가장 좋아하는 건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라며, 오랜 클래식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던 기억이 납니다.^^;
2. 학벌이 중요한가요?
음, 제가 체감하기에 영화계는 한국에서 학벌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입니다. 영화기자는... 어디 소속이냐에 따라 다를 텐데, 일간지 문화부 기자 루트를 노리시는 거라면 몇몇 매체는 학벌을 중요시하는 게 사실입니다만 (제가 모 매체에 있을 당시 제 동기들이 거의 대부분 SKY, 해외대학 출신이었습니다.) 영화계 특성상 '영화 글'을 업으로 삼는 분들에게는... 다른 분야에 비해 학벌이 매우 크리티컬 하지는 않아요. 개인의 실력이 확실하다면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건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판단이기에 이렇다 저렇다 확언하기 좀 조심스럽지만, 제가 n년 간 업계에 있으면서 느낀 바는 그렇습니다.
3. 영화 기자 시험은 어떻게 준비하나요?
저는 경력직으로 <씨네21>에 입사했기 때문에 제가 전 직장에서 썼던 기사들을 포트폴리오로 제출한 것 외에 거창한 준비를 하진 않았는데요. 포트폴리오를 낼 수 있을 만큼 역량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저는 언론고시를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 기자라고 하면 '영화'에만 방점을 찍고 '기자'에는 상대적으로 덜 무게를 두시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취재를 하고 저널리즘 성격의 글을 쓰는 직업이라는 걸 크게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영화 리뷰나 평론을 잘 쓰면 영화기자가 될 수 있다! 라고만 접근하시면 아마 큰 구멍이 있을 거예요. 영화 산업도 잘 알아야 하고, 자기만의 인사이트도 있어야 하고, 예술영화만 보지 마시고 요즘 유행하는 대중 상업영화도 보셔야 합니다. 저는 마블 영화를 안 좋아해서 별로 본 적이 없는데요? 저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이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ㅠㅠ (제발~!)
공교롭게도 지금 <씨네21> 취재팀에는 저를 포함해 언론고시 준비 경력이 있는 기자들이 있습니다. 저처럼 언론고시 대비를 한 경험이 입사에 큰 도움이 됐으리라 봅니다. 보통 기자, 아나운서, PD 직군 등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스터디를 하고, 혼자서도 준비를 많이 해야 하지요. 시사상식 책 달달 외우고, 논술 작문 쓰고 스터디에서 서로 코멘트해주고, 뉴스나 TV 프로그램 모니터링하고, 화제의 책이나 영화 등등 보고 함께 토론하고... 그 과정에서 '기자' '언론사' '기사' '취재'가 무엇인지 고민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예전에는 '아랑'이라는 다음 카페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도 있으니 한번 방문해보세요!)
4. 그럼... 꼭 언론고시를 준비해야 하나요?
일간지를 비롯한 매체 소속 문화부/연예부 기자 분들은 언론고시를 거칠 수밖에 없지만, 매거진의 경우 언론고시를 준비한 적이 없는 기자들도 많습니다. 여기엔 정말 다양한 케이스가 있어서/사람이 특정될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소개해드리진 않겠지만... 결국엔 다양한 루트를 통해 '글쓰기' 능력을 쌓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씨네21>의 경우 신입 기자 채용 시 2000자 이상의 영화 리뷰를 보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글을 아주 잘 써야 눈에 띌 수 있겠지요.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고, 필사도 좋은 방법이고, 우선 용기를 내서 계속 쓰세요. 하나 더, 저널리즘 글쓰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뇌피셜'입니다. 적어도 기자로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면 근거 없이 글을 구성하면 안 됩니다. 실제로 언론 스터디에서 논술을 쓸 때 많이 지적받고 열심히 고친 부분이었지요.
더불어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기자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최대한 증명해 보이세요. 섭외 잘하고, 설득 잘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인터뷰 잘하고, 취재 잘하고... 저 같은 경우는 언론고시를 준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간과하지 않고 충분히 어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됐던 책, 글쓰기에 도움을 받았던 책도 언제 한번 정리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