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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연 기자 Feb 10. 2021

영어를 잘하면 쓸 수 있는 기사가 많아진다.

(4) 기자에게 영어는 필수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영어 공부에 대한 넋두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런 말 스스로 하기 좀 부끄럽지만 (ㅋㅋㅋ) 이유가 있어서 꺼내는 것이니 이해해 주시고, 저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학생이었을 때는 늘 공부 잘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땐 '윤선생 영어교실'을 했는데, 4학년 때 시 대표로 뽑혀서 윤선생 영어교실 전국 대회 참석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던 적도 있지요. 시에서 나간 학생 중 제가 제일 어렸고요. 근데 그게 저의 짧고 굵은 리즈 시절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주말마다 영어 학원에 다녔고, 윤선생 영어교실 외에 다른 사교육을 받지 않고 그렇다고 독학으로 뭔가를 할 열정도 없던 저는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문법이랑 독해는 잘했는데 말하기랑 듣기에 약했거든요. 그렇다고 독해를 소름 끼치게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시험을 잘 봤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했던 해, 영어 공부를 위한 <해리포터> 원서 읽기가 대유행이었어요. 저도 얼떨결에 휩쓸려서 같이 샀는데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해리포터> 시리즈가 재미있다는 걸 한창 나중에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개봉할 때 처음 알았습니다. 시리즈의 매력을 너무 늦게 알았네요.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해 첫 모의고사를 봤는데! 두둥! 당시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제가 아직도 쪼잔하게 성적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다른 건 다 1등급이고 점수도 잘 나왔는데 외국어만 4등급이 나온 거예요. 특히 듣기를 너무 못해서, 친구들이 "집중하면 다 맞을 수 있는데 왜 그래" 라며 의아해했습니다. (얘들아, 나 집중해서 들은 거야.^^;;;) 첫 모의고사만 그런 게 아니라 고등학교 내내 그랬어요. 리스닝 시험을 뒤에서 2등 한 적도 있습니다. 실화입니다. 담임 선생님과 상담할 때 "임수연이~ 너는 수학은 완벽하네~ 근데 영어가 좀... 너는 이제 남들이 수학 공부하는 만큼 영어 공부하면 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독한 마음먹고 담임 선생님의 조언을 행동에 옮겼고, 야자 시간에 영어 공부만 2시간씩 한 결과, 수능 때 수리영역보다 외국어영역을 잘 봤습니다. 아직도 신기하네요.


그렇게 영어와의 전쟁이 끝난 줄 알고 방심했는데, 대학교에서 현타를 제대로 받았어요. 대학에서 '고급 영어' '대학 영어' '기초 영어' 중 무엇을 듣게 될지 결정되는 시험을 치렀을 때 그냥 평범하게 '대학 영어'를 수강할 점수가 나왔을 때는 "아 뭐, 이럴 줄 알았어. 기초영어 아니어서 다행이네 ㅎ" 정도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수록, 세상에나 한국에서 영어 잘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전부 내 친구들이었던 겁니다. 처음 보는 외국인과 영어로 거침없이 대화를 나누고,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서 미드 자막 만들고, 대학 리포트를 영어로 쓰는 게 가능하고, 동아리방에서 놀면서 하는 일이 <반지의 제왕> 원서로 읽기. 하루는 제가 영어를 못하는 게 까발려진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던 적이 있어요. 친구들과 카페에서 한참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적이 흐르는 겁니다. 그리고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외국인들이 자리를 뜨자 그때부터 애들이 재잘재잘 시끄러워지더라고요. "와, 완전 19금 대화!" "대박, 저분들 무슨 얘기 하는지 집중하느라 갑자기 조용해졌어." "그래서 저분들 지금 어디로 뭘 하러 가는 걸까?" 다들 꺄르르르 웃는데, 저는 옆 테이블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전혀 못 알아들었거든요. 제 자신이 너무 작아지는 것 같고, 웃지 못하는 제가 너무 한심하고. 흑흑흑. 나 그동안 뭐했지? 라는 현타가 제대로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학기 중에는 힘들고 방학 때마다 스피킹과 리스닝 위주로 했죠. 교내 언어교육원, 파고다, YBM 같은 곳도 다녀보고 별의별 짓 다 해봤는데 결국 가장 도움이 된 건 미국 드라마였어요. <프렌즈> <내가 네 엄마를 만났을 때> <프리즌 브레이크> 등을 영어/한국어 동시 자막 켜놓고 본 다음에, 자막 없이 한 번 더 보며 복습하는 걸 반복하니까 조금씩 영어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대본을 통째로 외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표현이 입에 익고요. 쉐도잉이라고 하죠? 드라마 보면서 중엉중얼 대사 따라 하기. 옆에서 보면 좀 미친 사람 같지만ㅋㅋㅋ 스피킹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의외로 도움을 많이 받은 건! 유튜브 영상이었습니다. 유튜브에는 영어 자막을 지원하는 콘텐츠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관심 가는 주제의 영상을 골라서 보다 보면 다양한 억양의 영어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아직도 친구들만큼 영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쪽팔려서 시작한 영어 공부는 지금 영화 기자 일을 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앞에 저의 넋두리를 굉장히 길게 쓴 이유는, 제가 했으니 다른 분들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영화기자는 영어와 친숙해야 합니다. 먼저 해외 영화 소식을 팔로업하기 위해 외신 기사를 매일 읽어야 합니다. 저는 <버라이어티> <할리우드 리포터> 같은 사이트는 거의 매일 들어가고, <필름 코멘트> <사이트 앤 사운드> 등의 주요 기사도 꼭 체크합니다. 기사에 인용할 때도 물론 많죠. <씨네21>의 해외 영화 기획 기사를 보시면 외신 인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파파고의 번역 능력이 우수하고 저도 급할 때 리딩 속도를 아끼기 위해 도움을 받지만 번역기만 믿다가 실수를 할 수 있죠. 그리고 자꾸 번역기에 기대면 어느새 영어 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영어는 감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2439

제가 2년 전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썼던 <더 와이프>의 글렌 클로스에 대한 기사입니다. <데드라인> <뉴욕 타임스> <버라이어티>의 기사, <버라이어티>의 팟캐스트 방송 <스테이지크래프트>가 인용돼 있습니다. 중간에  ‘bunny boiler’(토끼를 끓이는 사람, 한번 섹스한 남자에게 끈질기게 집착하는 여자를 일컫는 속어)라는 신조어 얘기가 언급돼 있는데, 아마 웹서핑 하다가 '어반 딕셔너리' 같은 곳에서 찾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최근에 산 해외 블루레이. 프레스턴 스터지스의 <레이디 이브>.


그다음은 스크리너. 해외 영화 스크리너는 영문 자막만 깔려 있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영화제 스크리너는 거의 100%라고 보시면 됩니다. 영어권 국가 영화는 아예 자막도 안 깔려 있죠. 뿐만 아니라 영어를 잘하면 평소에 볼 수 있는 작품의 폭이 아주 넓어집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해외 아마존에서 구입하는 블루레이/DVD로 영화를 볼 때가 많은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글 자막이 없거든요. 영어 자막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시네필로서 시야로 더 넓어집니다. 한글 자막으로 정식 개봉, 정식 출시되는 작품은 정말 일부 중의 일부일 뿐이에요.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면 볼 수 있는 작품이 굉장히 많아져요. 저는 콜렉터로서 '크라이테리언' 시리즈를 사랑하는데요. (한국의 '크라이테리언'이 '플레인 아카이브'라고 설명하면 될까요^^;) 영화 본편은 물론 그 많은 부가 영상을 제대로 즐기려면 영어를 잘해야 합니다. 평소 한글 자막으로 해외 영화를 볼 때도 번역가의 오역을 캐치한다든지 대사의 뉘앙스를 훨씬 잘 이해하는 일도 가능하겠죠.


해외 인터뷰를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외국 감독 및 배우와 대면/전화/화상/서면 인터뷰 등을 진행할 때가 있는데요.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넉넉하진 않습니다. 20~30분 정도 주어지고, 그마저도 타매체와 함께 들어갈 때가 있어요. 이럴 땐 통역이 붙더라도 "인터뷰이의 답은 통역 안 해주셔도 됩니다." 라고 따로 요청을 하게 됩니다. 통역 시간을 아끼고 최대한 인터뷰를 더 많이 하기 위해서죠. 통역이 붙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그럴 땐 그냥 기자가 알아서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당연히 스피킹 능력이 어느 정도 따라와 줘야겠죠?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4889

이번 주에 <내사모남 3>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것을 기념해 이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내사모남 3> 서울 촬영을 위해 한국에 왔던 라나 콘도르와 인터뷰를 했는데, 당시 주어진 시간은 딱 30분이었어요. 인터뷰이의 말은 통역을 안 해주셔도 된다고 요청했고, 지면 기준 2P를 채울 수 있는 분량이 여유 있게 나왔습니다. 통역을 거쳤다면 절대 이 분량이 나오지 않았겠죠? 내가 라라 진과 언제 또 보겠냐 싶어서 배우와 기념 사진도 찍었...ㅎㅎㅎ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6547

인터뷰를 왓츠업으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던 기사랄까. 왓츠업 앱을 처음 깔아봤는데요. 화상과 음성, 채팅이 모두 가능하더라고요. 중간에 연결 상태가 악화되는 바람에 세 가지 방식을 모두 동원해 완성한 인터뷰 기사입니다. 감개무량.



그 외 해외 영화제를 비롯해 해외 출장을 갈 때가 있습니다. 김영란 법 이후엔 정킷 출장에 제한이 생기고, 요즘엔 코로나 때문에 못 가고 있긴 하지만요. 친절한 통역이 붙는 출장도 있지만 영화 기자에게 중요한 영화제 출장은 그런 거... 없습니다. 외딴 곳에서 영어 자막에 의존해 전 세계 프리미어로 상영되는 영화를 보고, 프리미어이기 때문에 참고할 다른 리뷰도 없고, 영어로 게스트와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영어를 못하면 취재를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영어는 정말이지... 미리미리 해놔야 합니다.


꼭 영화 기자가 아니라도 기자 일을 하다 보면 영어 실력이 필요한 일이 많습니다. 제가 어느 일간지에서 잠깐 일을 한 적이 있어요. 경찰서에서 외국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바로 알아듣고 특종을 잡는다든지, 사건 관계자 중 외국인이 있어서 이를 취재할 때 등등 평소 다져놓은 영어 실력이 빛을 보는 사례들을 여러 번 목격했지요. 외신 및 해외 사이트를 둘러 보며 기사로 쓸 만한 아이템 거리를 찾아낸다거나, 국제부로 발령 받는다면 더더욱 영어 실력이 필수적이겠죠?


지금까지, 영화 기자가 영어를 잘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제가 영어를 어떻게 공부했는지 나름 짧게 쓰긴 했는데 너무 평범해서 별로 영양가는 없을 것 같네요.^^; 위와 같은 이유로 <씨네21> 같은 영화 전문 매체는 신입/경력 기자를 뽑을 때 영어를 잘하는지 체크한다고 하네요. 이 직무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그럼 다들 설 연휴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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