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커피, 둘 다 좋아요
소비생활 The Joy of Buying 시리즈는 누군가의 소비에 담긴 의미를 기록하고 당시의 취향을 포착합니다.
아니, 맥시멀리스트로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보내는 경고이며 물건을 허투루 사 모으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 이거 산거야? 정말 필요했던 거야? 돌이켜보니 필요 없었던 거지?
개완 Gaiwan 은 중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차 도구입니다. 차를 우려낼 때, 그리고 우려낸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데 뚜껑, 잔 그리고 받침으로 구성됩니다. 차를 우려내는 도구는 개완 말고도 많은데 “자사”라는 흙으로 만든 자사호, 도기 혹은 유리 재질의 차호, 차 우리는 도구와 컵이 일체형으로 구성된 표일배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도구 중에서 개완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함에 있습니다. 바닥에서 뚜껑 방향으로 점점 입구가 넓어지는 개완은 찻잎을 쉽게 버리고 닦아낼 수 있습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 때문에 휴대성도 크고 요령만 잘 익히면 다른 다구만큼 찻잎을 잘 걸러내 깔끔한 차를 마실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개완에서 엿볼 수 있는 소박함입니다. 자사호나 차호들은 “나 이제 차 마실 거야”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일상과 유리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개완은 그냥 평소 물을 마시듯 차 마시는 행위를 특별히 여기지 않고 가볍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손이 자주 가며 차 마시는 여유를 일상으로 가져옵니다.
중국차를 마시고 싶을 때 개완을 사용한다면, 커피를 마실 땐 데미타스 Demitasse 를 사용합니다. 보통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 사용하는 작은 잔인데 데미타스는 불어로 Half cup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정말 보통 컵의 반 정도 되는 용량으로 60-90ml 정도의 액체를 담을 수 있습니다. 공유 오피스에 회사 사무실이 있던 시절, 커피머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에스프레소를 종종 내려 마셨습니다. 블랙커피는 때때로 배부르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에스프레소를 마셨고 그 농축된 향과 맛이 더 큰 만족감을 줍니다. 일반 종이컵에 내려 마시다가 이왕이면 제대로 마시고 싶어 데미타스를 하나 샀습니다. 제가 가진 안캅 라바짜 데미타스는 약 4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저렴한 잔입니다. 여러분도 에스프레소 추출이 가능한 커피머신이 곁에 있다면 꼭 데미타스에 내려 마셔보시길 바랍니다. 종이컵과는 전혀 다른 맛과 분위기를 가져옵니다. 차도 그렇고 커피도 그렇지만 즐기는 방법에 정답은 없습니다. 저는 우롱차를 개완에 간단히 우려 마시는 걸 좋아하지만 제 아내는 차판 위에 다구들을 정갈하게 배치한 다음 마치 의식을 행하듯 차 우리는 순서에 따라 마시는 걸 좋아합니다. 회사 커피 소모임을 하는 동료분들은 저울을 동원하여 최적의 커피 드립으로 마시는 걸 즐기는 반면 저는 그냥 커피머신이 내려주는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게 간단하고 좋습니다. 에스프레소를 그냥 마시기보단 설탕을 한 스푼 넣어 마시는데 그 편이 쓴맛에 얼굴 찡그리지 않고 에스프레소의 풍미를 즐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코코넛 슈가를 한 티스푼 떠내어 데미타스에 넣고 에스프레소를 하나 내려 잔받침에 티스푼 올려 책상 위에 올려두면 그 주변으로 여유가 피어오릅니다. 일하다 잠깐 일어나 이렇게 에스프레소를 준비하면 이것이 바로 망중한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