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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닻 Apr 07. 2024

03. 말의 병증

|길을 물으려다 해방이 있는 쪽을 물었다|


늑골이 으스러지도록 힘껏

스스로를 껴안고 싶어 지리만치

외로워질지도 모른댔어


껴안고 보니 등에 손가락이 닿길래

나도 모르게 지분대다가

걷잡을 수없이 간지러워져서

피가 나도록 긁어댈지도 모른댔어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식목일마다 집 뒷산에

묘목 한 그루심는 사람처럼 

그 말마디를ㅡ

세로로 짧게 네 줄,

그 위를 거치도록 가로로 길게 한 줄.


모르는 일이라는 말,

그거 혹시 가능성이야?


병적으로 희망찬 소리만

늘어놓고 싶던 무렵이었다


선들이 마구 그어진 담벼락 위

일렬로 앉아있던 앵무새들이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고

일제히 꽉꽉거렸다


언제든 함께 떠나 줄 것처럼

채비를 하던 이들은

언제나 신 바깥에 있잖아


내 신발 속으로 들어와 줄 수 있겠냐고?*

헛소리, 헛소리


아는 척이 싫어

말을 아끼다가는, 차츰

말을 잃어갈 것 같았다

몽톡해진 여름이 곁에 드리누워


나도 지난달까지는

내일이 없는 줄 알고

흰 거품을 입에 걸게 문 채

밤낮없이 맹렬히 내달렸었어

육지로 말이야,

나를 받아주지도 못할 육지로

바보 같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바람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말이 비어있는 곳에

뒤숭숭 침범하는

서느런 바람


그러네, 우린

어쩜 이렇게들 바보 같아




*put oneself in somebody's shoes

: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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