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말의 병증
|길을 물으려다 해방이 있는 쪽을 물었다|
늑골이 으스러지도록 힘껏
스스로를 껴안고 싶어 지리만치
외로워질지도 모른댔어
껴안고 보니 등에 손가락이 닿길래
나도 모르게 지분대다가
걷잡을 수없이 간지러워져서
피가 나도록 긁어댈지도 모른댔어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식목일마다 집 뒷산에
묘목 한 그루씩 심는 사람처럼
그 말마디를ㅡ
세로로 짧게 네 줄,
그 위를 거치도록 가로로 길게 한 줄.
모르는 일이라는 말,
그거 혹시 가능성이야?
병적으로 희망찬 소리만
늘어놓고 싶던 무렵이었다
선들이 마구 그어진 담벼락 위
일렬로 앉아있던 앵무새들이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고
일제히 꽉꽉거렸다
언제든 함께 떠나 줄 것처럼
채비를 하던 이들은
언제나 신 바깥에 있잖아
내 신발 속으로 들어와 줄 수 있겠냐고?*
헛소리, 헛소리
아는 척이 싫어
말을 아끼다가는, 차츰
말을 잃어갈 것 같았다
몽톡해진 여름이 곁에 드리누워
나도 지난달까지는
내일이 없는 줄 알고
흰 거품을 입에 걸게 문 채
밤낮없이 맹렬히 내달렸었어
육지로 말이야,
나를 받아주지도 못할 육지로
바보 같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바람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말이 비어있는 곳에
뒤숭숭 침범하는
서느런 바람
그러네, 우린 다
어쩜 이렇게들 바보 같아
*put oneself in somebody's shoes
: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 생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