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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닻 Apr 15. 2024

04. 영원히 술래에 갇히는 놀이

|길을 물으려다 해방이 있는 쪽을 물었다|


첫 일을 청소로 시작하면

다음 일도, 그다음 일도 청소를 하게 돼.

홀서빙으로 시작하면 계속 홀서빙을,

바리스타로 시작하면 계속 바리스타를.


어둡고 느짓하게

미신 같은 조언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느다랗게 솟아올라 서서히 비대해지는,

그리고 다시 아래로 굽어는 목소리


큰 원을 그리듯이 순환하는 말에는

품속의 작은 단검처럼 몰래 별러진

조급함 같은 것이 있었다


술래잡기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술래 하기가 그렇게 싫더라고요


누구의 목덜미든 낚아채지 않으면

영원히 술래에 갇히는 놀이

이상하더라고요

다 같이 전력을 다해 뛰고 있는데

도망치는 애들은 웃고 있고

쫓아가는 저만 숨이 가쁜 게요


내 삶인데도

내 역할이 구분되다니

이렇게 우스울 데가


객기를 부리다간

돌고 도는 대화에 갇힐 터였다


흰자를 부릅뜬 당신이

내 어깨를 붙들고 되풀이하겠지

그러니까, 내 말은ㅡ


걸려들 때까지 흔드는 낚시찌

듣다 듣다 혼미한 잠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


최면에 걸리고 마는 셈이다


나는 또 술래가 되어

웃을 새 없이 도망치는 나를

죽도록 쫓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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