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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닻 Sep 10. 2024

10. 파편적 사랑

|길을 물으려다 해방이 있는 쪽을 물었다|


곧 죽어도 피아노를 치겠다던 소녀는

피아노를 매달고 투신해 죽었다


피아노는 꼭꼭 접어지지도 않고

가벼이 둘러메고 다닐 수도 없는 게

유일한 흠이라고 했었는데


어떻게 그 무거운 걸, 혈혈단신

다리 난간 위까지 끌어올려

제 목을 끌어내리게 두었는지 모른


얼마나 빠른 속도로 추락했을까

후회할 시간도 없었겠다

우울과 외로움은 예술가에게 재능이라던

고약한 믿음 따위에 대하여


네가 두고 간 재능을 훔쳐 입고

퉁퉁 불은 소녀의 손가락을 바라보는

나는 너의 마스터 피스,

절실하게 빚어져 처절하게 남겨진.


곧 죽어도 사랑하겠다던 내가

네 있는 자리로 떨어져 버리면

그곳에는 사랑이 매달려 있을까


예술가에게 그런 사랑은

필요 없었던 거야, 사랑은

품속에 고이 접어 넣을 수도,

언제든 다시 펼쳐서 연주할 수도,

네 있는 곳 어디든 따라갈 수도 있었던


사랑은, 정녕 필요하지 않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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