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파편적 사랑
|길을 물으려다 해방이 있는 쪽을 물었다|
곧 죽어도 피아노를 치겠다던 소녀는
피아노를 매달고 투신해 죽었다
피아노는 꼭꼭 접어지지도 않고
가벼이 둘러메고 다닐 수도 없는 게
유일한 흠이라고 했었는데
어떻게 그 무거운 걸, 혈혈단신
다리 난간 위까지 끌어올려
제 목을 끌어내리게 두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추락했을까
후회할 시간도 없었겠다
우울과 외로움은 예술가에게 재능이라던
고약한 믿음 따위에 대하여
네가 두고 간 재능을 훔쳐 입고
퉁퉁 불은 소녀의 손가락을 바라보는
나는 너의 마스터 피스,
절실하게 빚어져 처절하게 남겨진.
곧 죽어도 사랑하겠다던 내가
네 있는 자리로 떨어져 버리면
그곳에는 사랑이 매달려 있을까
예술가에게 그런 사랑은
필요 없었던 거야, 사랑은
품속에 고이 접어 넣을 수도,
언제든 다시 펼쳐서 연주할 수도,
네 있는 곳 어디든 따라갈 수도 있었던
사랑은, 정녕 필요하지 않았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