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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닻 Oct 29. 2024

11. 이빨 주스

|길을 물으려다 해방이 있는 쪽을 물었다|


이빨이 시고 달아 견딜 수 없던 여름

앞니 두 개뿐이래도

쓴소리에 얼마간 담가놓아야 했다


이 여름이 가면 살이 빠질 거야, 따위의 말처럼

흐물흐물 되풀이하던

우린 반드시 행복해질 거야, 언젠가는 반드시

꼭 오래된 미신 같은 말들


그래서, 언제쯤 그 모든 걸 해낼 참이야.


쪽지의 말미가 그랬다

휴지 낱장 끄트머리가 젖어 있고

안부를 가장한 채 오가는 쪽지는

주고 받는다 하기엔 텀이 너무 느렸다


왜 돌아오지 않느냐고 물었지

지구를 반바퀴씩 돌다 보면

언제까지고 계절을 피할 수 있으리라 믿었으므로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장해야만 한다잖아.


공분하려다

헐거운 이빨을 모조리 퐁당 빠뜨린다

언제부터 우울이 이토록 큰 죄가 되었나

웅얼거리는 사람에게 이빨 빠진 주스를 내밀다

벌겋게 엎질러버린다


마모되고 삭아버린 마음이 두 조각

자그맣게 기포가 인다

간신히 숨을 넘기

뽀글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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