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축하해, 장례를 치르는 마음으로

|길을 물으려다 해방이 있는 쪽을 물었다|

by 이닻


부고를 전달받은 날에도

커피를 넉 잔 마셨다

상실에는 내성이 없어서

단순 졸음처럼 배출이 되지 않았고

과속해 버린 심장에는 딱지가 붙었다


5만 원


안부 정도 알고 사는 지인끼리는

5만 원이면 적당하다고 합의를 봤었지

3만 원은 자존심이 안 서고

10만 원은 아까우니까

본래 그 정도의 관계들을 여럿 두어야

서로 돕고 살만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해하지도, 미안해하지도 말라고

말자고

했잖아


그러나 너의 친절한 청첩장에

부고를 당한 나는 어떻게 해야 해

5만 원을 내고 지인권을 산다

그래 나는 억울하고 미안할지언정

슬피 울며 도망갈 자격은 없지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너는

당연하게도 생생히 살아있고


죽은 이도 우는 이도 없는 기이한 장례식

엄선하여 고른 최상의 음식들이

관계성을 조종하는 연회장

그래봤자 죽은 횟감들인데

미어터지도록 초밥을 욱여넣는 마음으로

배덕함을 깊이 파묻는 하객이 되어


곡하지 않기 위해 시를 눌러쓴다

우리는 아직 다 살아있으니
이 슬픔의 생명을 빼앗기로 하자
무덤 위를 넓적하게 깔고 앉아서
종일토록 으스러지는 박수
너는 이제 나에게
맞닿는 무엇이든 파괴하지 않으면
축하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기웃거리던 웨이터가

미처 다 비워내지 못한 접시를 거두어간다

운명론에 뛰어들기로 한 친구는 오늘

떨어지는 부케만을 좇을 것이다


저마다 한 곳을 향해서만 유독 곧아지는 시선이 있다

그 누구의 애석한 사연과는 무관하게도


사이렌 소리처럼 멀어지는 축사

신랑 신부, 마주 보세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남은 인생을 모조리 서로에게 걸어 잠그는
세상 가장 어리석은 연인의 미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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