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한 세계사]- 우이룽
인류가 지나온 길을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시기마다 나라마다 각양각색 삶의 역사는 여전히 펼쳐지고 있고, 삶의 유한성이라는 제한성 때문이다. 소음 같은 요란함이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느낌이 들 때는, 나만의 역사적 시각이 더 필요하다. ‘왜’라는 질문과 ‘어떻게’라는 해결책은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등장했던 이야기일 확률이 높다. 비슷한 인간 욕망이 어처구니없는 역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세계사를 다양한 각도로 일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관련 책들과 인연이 맺어진다. 대만 역사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세계사를 다른 맛으로 볼 수 있는 힘을 준다. 교사가 재미있는 스토리 텔러가 될 때, 받아들이는 학생의 뇌는 섬광처럼 번뜩이며, 지식의 세계로 쉽게 빠져 든다. 간식을 입에 오물거리며, 소파에 앉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유럽의 마녀 재판은 익히 들어온 일화다. 미혼 여성이나, 미망인, 재산이 너무 많거나, 너무 가난하거나 혹은 너무 마른 사람은 마녀라는 이름으로 희생되어 왔다. 왜 마녀라는 낙인이 필요했을까.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루터파나 칼뱅파 같은 종교 시장 경쟁이 생기기 시작했고, 로마 가톨릭은 악마와 싸우고 구원해 줄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했다고 한다. 특히, 독일, 스위스와 프랑스 동북부에서 마녀라는 이름으로 수만 명이 죽음으로 내몰렸고, 로마 가톨릭은 자신들의 위력을 그렇게 과시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이슬람, 그리스도교, 유대교라는 세 종교가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하기 위한 지난한 전투에 대한 이야기도 익히 알려져 있다. 하느님이라는 아버지 신 아래, 세 자식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그 신을 섬기는 방법을 각기 다르게 주장하다 보니, 우애는 없고, 다툼만 남는 형국을 만들어 냈다. 베네치나 공화국의 지원을 받아 약탈을 일삼은 십자군 원정대들은 삶이라는 그 고통스러운 길을 잠시 잊기 위해서 였을 수 있다고 한다. .
신항로 개척 시대로 인해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빼앗아 가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에 자행한 역사적 사실들은 인류 역사에 아픈 생채기다.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는 자신이 직접 항해하지는 않았지만, 항해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게 했고, 관련 학교를 만들었으며, 천문대를 통해 계절풍, 해류에 대한 지식들로 신항로 개척시대의 서문을 만들어 낸 사람이다. 한 사람이 꾸는 꿈이 실현 과정을 구체화해주었고, 꿈의 선량성이 없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보여 주는 것 같다. 개척시대의 인물 콜럼버스는 신세계 정복자라는 이름과 신세계 파괴자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콜럼버스 항해날을 국경일로 정해 그를 추모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그로 인해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나라들은 비극이 시작되는 날로 인식할 것이다.
‘계몽은 나 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한 것’이라는 소재목이 인상 깊다. ‘무지한 백성은 사기꾼의 놀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사기꾼은 백성을 구슬리기도 하고, 착취하기도 하는데, 본인의 이익 추구를 위해 백성을 도구로 삼아 희생하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아메리카로 죄인들을 보내는 방법은 영국 정부가 고안해 냈다. 감옥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개척되지 않은 땅에 죄수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겠다는 발상에서 아메리카로 이주가 시작된 것이다. 그 후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로 13개 주라는 나라의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다. 영국은 미국으로 죄수를 더 이상 보내지 않는 대신 또 다른 척박한 땅이었던 호주를 유배지로 정한다. 죄수들은 하루 15시간 중노동으로 호주를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화시켰고, 7년이 지나면 ‘자유 증명서’를 받아 살 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호주에서 남아서 살기로 한 사람들의 후손들이 20% 정도가 된다. 호주 국민의 20%인 후손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자랑스러워한다고 한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낼 수 있는 강인한 정신을 자신들도 물려 받았기 때문이다.
남극 탐험을 최초로 한 노르웨이 아문센과 영국의 스콧 일행의 경합은 아문센의 승리로 끝났지만, 우리가 간과 한 사실이 있다. 역사는 승자인 아문센의 이름만을 알리지만, 실제 스콧은 남극을 향해 가는 동안 길에서 일기를 쓰고, 화석, 과학자료가 될 만한 귀한 자료를 남겨 주었다. 그로 인해 남극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영광스러운 고립을 선택하는 영국은 ‘나는 언제나 너와 작별할 수도 있고, 언제든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라는 문구로 설명이 되는 나라다. 역사적인 전투를 보아도,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게 행동한 그들은 유럽연합에서 가장 늦게 입당하고, 가장 빠르게 탈당한 나라다.
전쟁 책임에 대한 독일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4 구역으로 분할해서 관리했다고 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에 대한 견제로 소련은 동독을 공산화했고, 어느 순간 동독과 서독을 가르는 벽이 생긴 일화는 독특하다. 하루아침에 생긴 물리적 분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서독으로 탈출했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픈 우리 역사도 보게 된다. 강대국들로 한 나라가 분열의 길을 걸었지만, 동서독은 우연하게 통일되었다. 그 과정은 믿기 힘든 이야기다. 동독 정부 대변인이 국경 출입 절차를 간단하게 하려는 의도로 생중계 기자 회견을 했다. 공문서를 제대로 읽지 않은 상태로 기자가 묻는 시기에 대해 ‘지체 없이 즉시’라는 답변을 했다. 들뜬 시민들이 장벽으로 뛰어가 담을 무너 뜨리게 되고, 결국 동서독이 통일되는 길을 쉽고 빠르게 해냈다.
바다를 누리고 다녔던 바이킹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약탈을 일삼은 그들의 기본 개념이 전해져 오는 신화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한다. 장열 하게 싸우다 죽은 후 가는 곳이 천국의 의미와 비슷한 발할라는 세계다. 반면, 연로해서 죽거나 병으로 죽은 후에 가는 곳이 지옥과 같은 의미인 헬헤임이라는 세계다. 장열 하게 싸우다 죽는 것을 신성시 했기에 물자 부족도 이유였지만, 저변에 깔린 전투에 대한 동경심 때문에 약탈을 위한 전쟁을 했던 것이다.
15시간 중노동을 했던 미국의 카우보이 삶에 대한 이야기, 세계 2차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처칠이 전쟁 이후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해 수상 제임에 실패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오스트리아 출생이며, 화가를 꿈꾸던 히틀러가 미대에 합격했더라면, 인류 역사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도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을 끌어들일 것 같다.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 수 없었던 천재 화가 고흐와는 달리, 그림 영업에 달인인 피카소와의 인생 비교도 인상 깊다.
영국 여성 운동가인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선거권 획득을 위한 투쟁 그림은 독특하다. 등치가 큰 남성 경찰관이 그녀를 번쩍 들어 걸어가는 사진속에서는 당혹스러워하는 남자들의 얼굴과, 고래고래 소리치며 들려가는 여성 운동가의 표정이 대조를 이룬다. 기본적 권리들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개개인의 집요한 노력들로 역사의 뒤를 따라 후손들은 덕을 보고 살아간다. 주는 사랑이 그 가치를 더한다. 역사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 주는 마중물로 더 없이 좋은 책이다.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과거를 배워야 현재를 제대로 볼 수 있고, 미래를 향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