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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Dec 27. 2024

하루 한 권 독서

[고독한 사람들의 도시]- 고희은

살아낸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다. 도시는 하나의 배경이 되고, 그곳을 살아냈던 작가, 감독 그리고 화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마치 어린 시절 추억을 찾아 다시 학교를 찾아간 느낌을 주는 책이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체코,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에 있는 17개의 도시 이야기다. 그곳에서 품어낸 예술가들의 삶은 대체로 화려한 색채가 아니라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 친 진한 회색빛이다. 그래서 고독이라는 제목이 어울린다. 


 한잔의 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듯이 유럽의 유명한 관광도시가 저자 덕분에 다른 각도로 볼 수 있게 된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그라나다, 세빌라, 리스본, 신트라,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토리노, 그리고 파리를 걸어 다닌 작가의 사색이 담긴 글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미술관 그림들과 화가들의 삶을 짧게 회상하는 몇 줄의 글들로 고난한 삶을 살아낸 예술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책을 통해 영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작가들이 살아냈던 삶이 도시 곳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듯하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만나는 조지 오웰. 신문기자로 스페인 내전을 목격한 조지 오웰은 의용군에 입대하고 목에 관통상을 입었다. 그가 쓴 <카탈로니아 찬가>에는 무정부주의자 대 공산 주의자, 노동자 대 브르주아가 서로 부딪치며 사회에 극심한 혼돈을 이야기 하고 있다. 카탈루나 지역에서 자행된 프랑코 독재 정치의 가혹한 폭력은 새들의 소리조차 다르게 들리게 한다. 저자의 말처럼, ‘카탈루나의 새들은 피스(peace), 피스(peace)하고 운다.’ 땅 위의 인간들을 보며, 하늘을 나는 새들조차 평화를 외칠 만큼, 그 시대 지상의 삶은 힘겨웠으리라. 


 ‘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이 되는 스페인의 건축가 가오스. 그의 생각이 바르셀로나 도시 곳곳에 내려앉아 있다. 오직 예술에 온 인생을 몰두했던 그의 삶의 종말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허름한 차림으로 교통사고가 났고, 길 거리 노숙자 중 한 명이라 치부 되어 너무 늦게 병원에 도착해 숨을 거우었다. 그는 완성되지 못한 자신의 작품이 못내 아쉬웠을 것 같다. 가오스의 후원자이자 평생의 친구 구엘은 가오스의 작품을 존경했다. 미완의 작품 또한 가오스의 운명이다. 가오스가 남긴 건축물들을 통해 완성되지 못한 나머지 부분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몫이 되었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악마의 형상이 고야에 의해 창조되었다.’ 

보들레르의 평처럼 고야의 그림은 인간이 가진 악마성을 경계하라는 뜻을 품은 건 아닐까. 체 게바라가 사랑한 네루다와 로르카 이야기도 진한 회색빛이다. 파시스트에 총살된 로르카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의 무게를 가한다. 


사회에 길들여지지 않고, 힘에 굴복하지 않으며, 세상의 모순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사람. 본능과 자유의 편인 그들이 바로 진정한 예술가들이고, 파시스트나 독재자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이토록 잔인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지구촌이 고독한 삶을 지향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렐루 서점이 있는 리스본을 향해 ‘지나고 나서야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은 쓸쓸하면서도 벅찬 일이다.’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지나온 삶 또한 이렇게 쓸쓸하면서도 벅찬 사랑은 아닐까. 


 독일 점령기와 전후 이탈리아 사회의 민낯을 그려낸 파졸리니 소설 <삶의 아이들>은 시대상을 더없이 사실적이고 냉정하게 풀어놓은 책이라고 한다. 만나지 못한 소설과 작가들에 대한 갈증을 불러내는 책이다. ‘개인은 타인의 삶과 역사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라고 이야기하는 파졸리니의 세계도 궁금해진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만난 홍수로 산마르코 대성당은 물 위에 뜬 신의 그림자 같은 느낌을 준다. 세기의 바람둥이라 불린 카사노바의 삶을 통해 ‘나 역시 미래를 알지 못하지만, 지금의 내 모든 감각이 존재를 보증해 주니, 길 위에서의 시간이 앞으로도 나를 살릴 것이다’라는 저자. 여행하는 삶이 아니라 혼자만의 세계에서 익숙한 곳을 사랑했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세계 곳곳에 발자취를 남기는 삶으로 바뀐 이유일 것 같다. 길 위에서의 시간은 집안에서의 시간만큼 소중하리라. 자신을 뒤로하는 배경이 집이든 길 위든 그곳에서 존재하는 한 사람이 세상을 보는 의식은 연결되어 있을 것 같다.


 토리노에서 머물던 니체가 광장에서 채찍질당하는 말을 끌어안고 결국, 정신을 놓았다. 니체가 만약 그 광경을 목도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고흐가 머물렀던 시골 마을 오베르의 목가적 분위기가 그의 그림 속에 살아 있다. 평생 형을 지원한 동생 테오 또한 고흐가 죽고 나서 6개월 뒤 세상을 떠났다 한다. 나란히 누워있는 형제의 묘비가 아름답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라고 했던 르느와르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힘겹게 아름다운 삶을 그려나갔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아이들, 아름다운 여인들이 가득하다. 삶도 힘이던데 그림이라도 아름답고 행복해야 한다는 르느와르의 생각들이 그림들 속에서 흘러나오는 듯하다. 


 ‘하이델 베르그 자체가 화려한 낭만주의이다.’ 하이델 베르그 시가의 사진은 독일 작가, 아이헨도르프말이 제대로 묘사한 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독일에서 반나치 유인물을 뿌린 저항 단체 활동으로 한스와 조피솔 남매는 단두대에서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히틀러를 추종하던 독일인의 양심을 깨우기 위해 반정부 활동을 했던 그들의 삶은 민주 항쟁을 했던 우리나라의 열사들을 떠 올리게 한다. 


거대한 힘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것은 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행동한 후 자신에게 가해질 수 모를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의 희생으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 악마성을 담은 인간의 욕망이 엉겅퀴처럼 기어올라오지 못하는 사회를 꿈꾼다. 개개인의 삶 자체가 버겁고 힘든 과정을 지나가야 할 때가 있다. 지상위 찰나의 삶이 꽃처럼 아름답게 만개를 필수 있는 세상은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과한 욕망으로 사회가 요란한 소음을 일으킬 때, 고독이라는 작은 숨구멍이 되는 것이 시대를 살아낸 사람을 만나는 여행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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