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가영 Feb 03. 2022

서핑하면 막 동굴도 들어가고 그러겠네요?

순간의 미학 - 배럴(Barrel)


우리나라에서 서핑은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스포츠이다. 이런 서핑을 어느 모임에서 취미라 밝히면 저마다 놀라는 반응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그 반응 이후 서핑에 대해서 묻는 질문은 항상 한 방향으로 흘러왔다. “서핑하면 막 파도로 된 동굴도 들어가고 그러겠네요?”


서핑이라면 요즘 SNS에서 핫하기도 하고, 서핑을 한다고 하면 왠지 멋지고 쿨해 보이기도 하는데, 대체 이 서핑이 어떤 운동인가 하고 한번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자. 누군가에게는 비키니를 입고 있는 서양 언니가 파도를 타고 있을 테고 누군가에게는 식스팩을 장착한 외국 형이 파도를 타고 있을 텐데 상상 속의 그 파도가 결코 작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점은 우리가 서핑이란 스포츠를 떠올렸을 때, 서퍼들의 모습은 제각각 달라도 우리에게 상상되는 파도의 이미지는 하나라는 것이다. 바로 파도가 서퍼의 머리를 덮는, 동굴 파도라 부르는 배럴(barrel)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검색어로 서핑을 입력하면 결괏값으로 쉽게 도출되는 사진들 또한 대개 서퍼들이 배럴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그만큼 배럴은 서핑의 역사 동안 대중들에게 서핑이란 스포츠를 인식하는 데 있어 가장 상징적이고 교과서적인 이미지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래서 서핑을 한다고 하면, 서핑은 곧 배럴 파도를 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이제 저 질문에 답을 하자면, 아니 답을 하기 전에 예시를 들자면 바로 이런 느낌이다. 취미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 "노래부를 때 막 3단 고음도 맨날 하세요?"라고 물어보는 느낌이다. 노래마다 가지고 있는 감정과 흐름이 다른데 인상적인 3단 고음을 매 노래마다 계속해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3단 고음 자체가 또 얼마나 어려운 영역인가. 파도에게도 저마다 성질이 있고,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파도는 절대 없는 이 세상에서, 파도의 힘이 아래로 굽어져 완전한 물의 성질을 가진 동굴을 만들어 낼 때, 그 파도에 서프보드를 걸치고 있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큼, 생각보다 훨씬 더 쉽지 않다. 많은 프로 선수들이 배럴 타는 사진을 보면, 마치 본인의 집인 것 처럼 한없이 편해 보이고 심지어 안락해 보이기까지도 한다. 하지만 그 완벽한 타이밍, 배럴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는 서핑을 하면 할수록 더 느낄 수 있다. 또한 애초에 그 타이밍 자체에 들어가지 못하는 시간이 더 많고, 프로들 또한 배럴 속에서 많이 넘어지고 크게는 다치기도 한다. 순간의 타이밍을 읽고 배럴 안에 머문다면 온 세상이 물방울의 합으로 뒤덮인 풍경을 볼 수 있는데 나 또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아주 짧게 맛본 적이 있다.


2년 전, 발리에서 한참 서핑을 할 때 매일 파도가 좋았지만 그날은 특히 더 좋은 날이었다. 파도가 깨지기 시작하는 꼭짓점을 피크(peak)라고 하고, 이 피크에 따라서 타는 포인트가 달라지는데 나는 왼쪽 피크에서 타고 있을 때였다. 내 파도를 기다리며 좀 떨어진 곳에서 타고 있는 한 오빠를 보는데, 내가 타는 반대편 피크에서 정말 보기 좋게 배럴을 따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눈이 뒤집어져 그쪽 포인트로 빠르게 옮겨갔다. *라인업에서 다른 서퍼가 배럴 탄 모습을 보고 어느 누가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나도 무조건 따내고 싶었다. 그래서 길이 나는 좋은 파도를 타는 것도 뒤로 젖혀놓고 최대한 배럴처럼 파도의 각도가 휘어질 것 같은 파도만 계속 잡아서 시도했다. 말 그대로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날이 바짝 선 파도는 다 잡아서 일어났다. 그런데 파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순식간에 깨지는 파도에 일어나기도 전에 메다 꽂히기도 하고, 일어나면서 보드와 함께 말리기도 하면서 눈, 코, 입(얼굴에 열려 있는 모든 틈)으로 바닷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배럴이 정말 리스크가 큰 게, 파도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그 속으로 들어가기를 시도하다가 실패하면, 파도가 지나가고 깨진 하얀 거품 밑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시간이 정말 길다. 우리는 서핑에서 이 과정이 세탁되는 모습이랑 비슷해서 런더리 혹은 통돌이라고 부른다. 파도 거품 속에 몸이 말려 정신없이 통돌이를 당하다가도 파도가 오면, 마치 무조건 반사처럼 또 날이 선 파도를 잡으려고 내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제일 정신없을 무렵 잡았던 파도 하나. 그 딱 하나 파도에 *테이크 오프 하자마자 거짓말처럼 온 세상이 느려지고 물방울 하나하나가 또렷이 보이더니 내 머리 위를 감싸고는 파도 위로 보이던 구름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물이 만든 지붕 때문에 하늘이 살짝 어두워졌다고 해야 하나. 내쉬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럽고 온 신경이 나노 단위로 쪼개져 0.001초까지 몰입하며 내 눈앞에 펼쳐진 파도 동굴을 마주했을 때, 파도에 걸쳐진 서프보드에 온 발가락 신경을 곤두세웠던 그 순간, 아마 현실 시간상으로 5초도 안됐을 테지만 서핑이 왜 순간의 미학인지 절실하게 온 세포로 느낄 수 있었다. 타던 파도가 거품으로 닫히자 소리를 지르며 물에 빠졌는데, 자빠지는 순간까지 입이 귀에 걸린 것처럼 웃으면서 빠져서 평소보다 물을 두 배로 먹었지만 이게 여전히 생생한 내 첫 배럴의 기억이다.


배럴은 서퍼를 잠시 다른 차원으로 보내주는 아주 특별한 파도다. 서핑 경기에서도 배럴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고난도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냥 동굴을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좋은 점수를 얻어 낼 수 없다. 서핑은 예술미를 추구하면서, 경기를 펼치는 서퍼 개인보다는 절대적으로 '파도 중심'인 스포츠이기 때문에 파도의 배럴 타이밍을 읽고 입구와 출구를 정확히 읽어내는 서퍼에게만 높은 점수를 준다. 파도의 배럴이 계속되고 있는데 일찍 빠져나오거나, 서퍼가 배럴 안에 있는데 파도가 빠르게 닫혀 빠져나오지 못할 경우는 낮은 점수를 받게 된다. 배럴로 10점 만점에 10점을 받는 것은 모든 프로 선수들의 꿈이고, 한 히트에서 10포인트 배럴이 나오면 경기의 순위와 무관하게 그 서퍼는 한동안 전설로 언급이 된다. 간혹 배럴 안에서 찰나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려고 일부러 출구로 빠져나오지 않는 선수들도 있다. 경기 점수, 사람들의 환호, 안전한 출구를 선택하는 것을 초월하고 파도가 만들어 준 차원에 더 머물고 싶어 하는 못 말리는 사람이 바로 서퍼들이다. 그래서 서핑이, 서핑 경기가 재밌는 이유이기도 하다.


파도에 말리고, 먹히고, 넘어지더라도 어떠한 배럴 입구라도 눈앞에 펼쳐진다면 일단 들어가고 보자. 안전한 출구가 없으면 좀 어떤가. 그 잠깐의 달콤함과 강렬함을 맛보면 또 다른 배럴 입구를 찾게 할 것이고 그렇게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좀 더 머무를 수 있는 파도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계속 서핑을 하고, 계속 멋진 파도를 찾아다니고 있을지 모르겠다. 짧지만 확실한 순간의 강렬함, 순간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서핑은 참 매력적인 스포츠다. 아, 그래서 서핑을 하면 동굴에 막 들어가고 그러냐고요? 막 들어가는 게 정말 제 꿈입니다!      



*라인업 - 파도가 들어오는 곳이자 보통 서퍼들이 파도를 기다리는 곳

*테이크 오프 - 서프보드에서 일어나는 동작




           

표정에서 느낄 수 있는 배럴의 황홀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