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퍼인 제가 아침 5시 반에 기상하여 집에서 6시에 나와, 2시간 이상을 운전하는 공식의 목적지는 보통 서핑을 타기 위해서예요. 그런데 오늘은, 어쩌면 서핑보다 더 중요한 일을 위해 아침 일찍 분주히 집 밖을 나섰습니다.
몇 주 전, 서핑 친구인 어진이에게 전화가 왔어요. 가영이 너도 비치클린에 관심이 있으니 본인이 크루로 속해있는 페셰(PESCE) 팀과 함께 무의도에 쓰레기를 주우러 가지 않겠냐는 거예요. 섬인데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많아 몇 번 다녀왔는데도 아직도 많다고 덧붙이면서요. 저는 그 물음에, 무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그래서 지도에 검색해보기도 전에 전화 너머에 있는 어진이에게 대뜸 대답했습니다. 어진아, 나 네가 말한 거기는 무조건 갈게.
그렇게 세상 기세 좋게 참가해 무의도에 있는 모든 쓰레기를 주워와야지 했던 저의 마음은, 쓰레기 줍기를 시작한 지 10분도 안되었을 무렵에 무의도의 한 작은 해변에서 캄캄하게 타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손으로 아무리 주워 올려도 줄어들지 않는 스티로폼 무더기가 있어 몇 포대나 가득 채웠는데요. 모래 위 하얀 이것들이 대체 조개껍질인지 스티로폼인지에 대해 점점 제 눈이 인식을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면 믿으실까요.
무성한 풀들이 자라난 대지 아래에 숨어있던 거대한 스티로폼 덩이를 뽑으니, 그 사이사이로 피어난 새싹들과 그 안으로 활개 치는 개미떼들을 보았을 때,
그리고 대체 왜, 어째서인지 땅 속 깊이 파묻힌 술병들을 제 손으로 파내야 하는지 묻고 싶을 때,
플라스틱 뚜껑에 손가락을 대자마자 눈앞에서 바로 바스라져 버렸을 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함께 온 동료들과 뙤약볕을 받아가며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도 불규칙적으로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쓰레기들이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이곳에 있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음을 마주하였을 때, 저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 참담한 기분을 표현하려면 어떠한 언어를 빌려와서 적어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무의도의 썰물로 수면이 잠시 뒤로 후퇴한 동안, 아직 바다의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해변에서도 쓰레기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서해 바다에 서핑을 하러 갈 때마다 간조 시간에 맨발로 밟고 지나다니던 그 길의 느낌인데, 오늘 간 무의도에는 한걸음 걸음마다 소주병, 맥주병 조각들이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제 보폭마다 있어 모내기하는 사람처럼 한 걸음마다 허리를 굽혀 유리병 조각을 주워나갔어요. 아니 근데, 이 것들은 바다에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우리나라에서 술은 만 19세 이상 성인들만 마시는 것 맞죠?
무의도에서 마주한 참담한 제 마음을 생사를 오가는 전투병의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비유를 해보자면 저의 마음은 마치 6.25 전쟁 때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바라보며 최전선에서 맞서 싸우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만큼 무수히 주워 담아도 부족하고, 주워 담을 수도 없이 조각 난 플라스틱 조각들을 보며 저는 마음을 다잡았어요. 다시 또 오겠다고. 수년간 그 자리에 있었던 플라스틱 뚜껑이 더 바스러지기 전에, 그리고 스티로폼 덩이가 더 작은 입자가 되기 전에, 사람들이 또다시 쓰레기를 버리고 갈지라도 저는 저의 양팔과 다리를 계속해서 최전선에 배치할 생각입니다. 이러한 나의 나라도 지켜야 어디서든지 파도도 행복하게 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2022년 5월 15일, 스승의 날.
큰 가르침을 준 페셰 크루분들과 함께 해준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