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브리즘의 진수를 보다! 그러나 완전한 어둠은 없다!
신에르미타주에 있는 3개의 천창관 중 마지막관인 스페인천창관은 스페인 화가들에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호세 데 리베라 , 프란시스코 수르바란 그리고 알론소 카노 등의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천창관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전시되어 있는 화가들과 작품들은 그야 말로 넘사벽입니다.
스페인 천창관에서 우리는 테네브리즘의 진수를 봅니다. 테네브리즘! 생소한 회화 용어가 또 나와 버렸네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이드의 시선으로 쉽게 설명해 드릴테니까요. 일단 바로크 회화 감상시 우리는 '명암법'이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다녀야 합니다. 거의 모든 바로크 그림이 명암법으로 그려지거든요. 명암법과 관련되어 있는 용어가 '테네브리즘'과 '키아로스쿠로'입니다. 테네브리즘은 어둡다라는 뜻을 갖고 있고, 키아로스쿠로는 어둡다와 밝다를 조합한 단어입니다. 단어의 뜻을 통해서 금방 알 수 있죠? 테네브리즘은 '어두운 것'이 지배적인 것이고, 키아로스쿠로는 '어두운 것과 밝은 것'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깜깜한 무대에 누군가 서 있는데 우리는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빛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딱 비추면 어떻게 됩니까? 주인공이 확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와' 하며 놀라게 되죠? 이렇게 극단적인 명암대비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 테네브리즘입니다. 그러면 다른 장면을 연상해 볼까요? 컴컴한 방이 아닌, 조금 어두운 방에 고대 흉상이 놓여 있습니다. 거기에 창문으로부터 빛이 살짝 들어와 조각에 비친다고 합시다. 그러면 조각에 명암 대비가 생겨서 입체감 있게 보이게 되며, 완전히 밝은 곳에 있는 조각보다는 뭔가 애상적인 느낌을 갖게 만들죠. 이러한 장면이 키아로스쿠로에 가깝다고 보면 됩니다. 즉 테네브리즘은 강렬한 명암 대조를 통해 극적인 효과를 전달하고, 키아로스쿠로는 덜 극단적인 명암 대비를 사용하여 애상적인 느낌을 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키아로스쿠로는 테네브리즘 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의 명암법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카라바조와 렘브란트의 작품을 통해서 테네브리즘과 키아로스쿠로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카라바조의 작품 중에서 '마태를 부르심'을 보세요. 어두운 곳을 극단적으로 검게 칠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죠? 그로 인해 어둠 속의 인체가 과감히 생략되어 버렸고 빛을 쏘인 부분만 부각됩니다. 이렇게 인체를 칼로 잘라낸 듯한 묘사는 르네상스 시기에는 상상도 못할 수법입니다. 반면에 렘브란트의 '다나에(1636)'를 보면, 명암의 대비가 있지만 극단적인 검은 배경은 아닙니다. 어두운 부분도 다양한 명암 단계를 갖고 있어서, 어둠 속 인물들의 형태와 색상이 어느 정도 드러납니다. 이쯤 되면 누구의 작품이 테네브리즘에 가까운지 아시겠죠? 네 카라바조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카라바조 스타일을 극한으로 발전시킨 이들이 스페인 화가들이 아닐까요? 12세기 초반부터 스페인에서는 수도원, 수녀원, 성당 및 고위 성직자들의 의뢰로 대형 제단화가 폭넓게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종교개혁 이후, 이른바 반종교개혁 시대에 기도생활에 도움을 주고 신앙심을 고취시키며 , 가톨릭 성당으로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성당 내부를 화려한 성화로 장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성모, 그리스도의 수난 그리고 사도들 및 성인들을 주제로 한 제단화가 폭발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가장 많이 그려진 테마 중 하나였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내용에 따라 충실하게 그려진 '십자가 처형'은 특히 그리스도의 수난과 관련하여 신자들의 신앙심을 자극하였습니다. 수 많은 바로크 화가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그렸는데, 에르미타주에는 보는 순간 비극적 자태로써 우리를 압도하는 알론소 카노의 작품이 있습니다.
알론소 카노(1601~1667)는 그라나다 출신으로, 13살 때인 1614년에 세비야로 옮겨 프란시스코 파체코(1564~1644) 밑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알론소 카노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는 파체코 밑에서 동문 수학한 사이입니다. 이 후 벨라스케스를 발탁한 바 있는 올리바레스 백작이 1638년에 알론소 카노를 마드리드로 불러들여 궁정 화가로 일하게 합니다. 카노는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의 그림 교사로 일했습니다. 이렇게 궁정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에 카노는 16세기 베네치아 회화 및 벨라스케스의 최근 작품을 포함한 풍부한 왕실 컬렉션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화가는 카라바조에서 시작된 테네브리즘 묘사에서부터 점차 반 다이크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우아하고 다채로운 필체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화가, 조각가, 그리고 건축가로서 다재다능했던 카노는 카라바조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성격이 못되어 친구들과 자주 다투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내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1651년에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입회하여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1660년에는 그라나다로 돌아와 그라나다 대성당을 위한 작업에 몰두합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생애 시리즈를 완성하였으며, 그라나다 대성당 입면을 새로 디자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그라나다 대성당의 파사드는 알론소 카노의 디자인을 따른 것입니다. 험악한 인생을 살았던 카노는 그라나다에서 사망한 후 그라나다 대성당에 묻힌 것으로 전해지지만 현재 그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알론소 카노의 스승 파체코는 동시대 예술 작품을 자세히 설명한 논문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의 바사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파체코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묘사하는 기준을 정립하였습니다. 첫째 검정색 배경일 것, 둘째 3개가 아닌 4개의 못일 것, 셋째 발을 받치는 지지대가 있을 것, 넷째 십자가 상단 죄목으로 쓰이는 INRI는 3개 국어로 쓸 것입니다. 파체코의 기준을 충실히 따라 그린 제자가 있습니다. 벨라스케스입니다. 벨라스케스가 1632년에 그린 작품을 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파체코의 기준에서 한치의 벗어남도 없죠? 벨라스케스의 파체코에 대한 존경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벨라스케스가 파체코의 사위여서 그랬다는 것은 안비밀입니다. 그런데 이런 야사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십자가 주제에서는 대체적으로 두 개의 발을 포갠 채 못 박는다는 설이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벨라스케스가 각각의 발에 못박은 모습으로 그린 바람에 교황청과 스페인 왕실이 발칵 뒤집혔다는 것입니다. 그 때 벨라스케스는 '우리를 위해 죄를 대신 지신 것도 죄송한데, 힘들지 않도록 두 발로 버티시게 하면 안 될까요' 라고 했다나요?(그림없는 미술관, 서영석) 물론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생각해 보면, 발을 포개서 못질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고, 또한 받침이 없었다면 그 발이 찢어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자 그럼 같은 파체코의 제자인 카노는 어떻게 묘사했을까요? 카노도 벨라스케스처럼 스승의 기준을 잘 받아들였나요? 카노는 세 개의 못으로만 그리스도의 몸을 지탱하도록 했네요. 받침도 없애 버렸습니다. 3개 국어로 죄목을 쓰지도 않고, 오직 라틴어 INRI(IESVS NAZARENVS REX IVDÆORVM)만 썼는데요, 이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카노는 검정색 배경에 대해서만 스승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스승의 방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테네브리즘 묘사라고 봐야 하겠죠. 혹시, 스승의 사위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을까요? 이런 카노의 묘사 방식은 대체적으로 이탈리아 바로크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 주제에서 카노는 이탈리아적인 경쾌함이 아닌, 엄숙한 묘사를 고수했습니다. 귀도 레니(1575~1642)의 동명 작품과 비교해 보면 그 유사성과 차이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귀도 레니는 예수가 하늘로 시선을 향하도록 그리는 독특한 묘사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요, 이는 마치 죽음 자체가 아름답게 보이는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검은색 배경이 아니기 때문에 회화적인 긴장감은 카노의 작품보다 떨어집니다. 카노의 그림에서 예수는 고개를 떨구고 있습니다. 그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배경에서 홀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습니다. 너무나 고독하고, 처절해 보입니다. 빛과 어둠의 격정적 대비로 인해 우리의 감정도 깊은 슬픔에 빠져듭니다. 벨라스케스도 동명 작품에서 테네브리즘을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평면적으로 보이고, 카노의 작품은 좀 더 깊어 보입니다. 카노의 그림에서는 스포트라이트 효과에 의하여 예수 몸의 명암 대비가 훨씬 더 선명하고 배경의 깊이를 알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카노의 그림에서 십자가 아래 부분을 보십시오. 붉은 줄무늬가 묘사되어 있는데요, 다가오는 새벽을 알리는 노을입니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 먼 동이 트는 듯한 이 묘사로 인해 원근감이 부여되었습니다. 즉 극적인 명암 대비와 새벽 노을로 인해 우리는 카노의 그림에서 더 깊은 감정의 터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붉은 빛에는 또 다른 역할이 있습니다. 새벽 놀은 죽음에 대한 부활의 승리를 암시합니다. 카노는 이 비장한 장면에서 죽음의 슬픔만을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밤이 깊으면 낮이 가깝다는 성경 말씀(로마서 13:12) 처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작은 빛조차 오히려 희망입니다. 이렇게 알론소 카노는 테네브리즘 수법을 통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 죽음의 의미를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하는 한편,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