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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드시선 Mar 28. 2022

라스콜리니코프 하숙집

자신의 13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스톨랴르니 골목 5번지 아파트는 도스토옙스키 연구자들이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하숙집이라고 의견을 모은 곳이다. 지금은 4층 건물이지만 이전에는 5층 건물이었다. 건물 외벽에는 두 점의 작은 대리석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182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홍수의 기록을 표시하였다. 하나는 노어로, 다른 하나는 독일어로 쓰여 있다. 소설에 따르면 4층에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세를 준 여주인의 집이 있었고, 라스콜리니코프는 5층 다락방에서 살고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여주인으로부터 식사와 방 청소하는 하녀를 제공받았다.


건물 모퉁이에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집'이라 쓰여진 석판과 도스토옙스키 동상이 배치되어 있다. 조각가 로타노프와 건축가 노보사듀크가 작업하였다. 165cm로 제작된 도스토옙스키 동상은 1999년 7월 7일에 설치되었다. 석판에 쓰인 문장은 리하초프와 그라닌이 쓴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집.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지역 주민들의 비극적 운명은 도스토옙스키로 하여금 전인류의 선을 향한 격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게 한 토대가 되었다."


여기서 격정적인으로 번역된 러시아어 스트라스찌 страсть는 영어의 passion 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열정이라는 뜻이지만, passion of Christ 에서 처럼 수난이란 뜻도 있다. 따라서 만약 열정적인이라고 번역하면 어떤 활발한 운동가의 메시지가 되어 버리지만, 수난으로 번역하면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의미가 들어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글쓴이들은 도스토옙스키의 고난당한 예언자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서 스트라스찌 страсть 라는 단어를 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어로 열정과 수난이라는 말을 한꺼번에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다가 '격정'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니면 차라리 '수난적인' 메시지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독자들 중에서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소설은 라스콜리니코프가 S골목에 위치한 자신의 방에서 나와 K다리를 걸어 이동하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것은 K다리에서 설명했다. 소설에서 라스콜리니코프의 방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6보 정도 길이의 작은 방으로, 사방이 누런 먼지 투성이 벽지로 도배된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천장이 어찌나 낮은지 조금 키가 큰 사람이라면 천장에 머리를 쿵 찧을 정도로 답답하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가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라스콜리니코프는 말죽거리의 어떤 쪽방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보니 '쪽방은 도시 빈민 주거형태의 하나로서, 대략 1960년대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숙인 보호사업을 계기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죄와 벌은 1861년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제 폐지 이후로 도시로 몰려든 농민들과 가난한 고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급조된 '상트페테르부르크 쪽방 문화'를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볼 수 있겠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계단을 내려갈 때 늘 4층 주인집을 지나야만 했다. 거기서 주인은 늘 부엌일을 하고 있었고, 지나가는 라스콜리니코프를 볼 때마다 집세를 독촉하곤 했다. 죄와 벌에는 계단 장면이 참 많이 나온다. 그것이 소설의 주요 모티브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이 동상에도 계단이 묘사되어 있고, 화강암 석판 아래에도 화강암 계단참이 조각되어 있다. 아마도 계단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심리를 가장 잘 나타낸 상징이 아닌가 생각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사이코라는 영화에서 그 유명한 욕실 살인장면을 찍은 것처럼, 도스토옙스키는 계단이라는 좁고 격리되고 진퇴할 수 없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공포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계단 스릴러 라고 해야할까?


죄와 벌에서는 주인공들의 심리가 매우 섬세하게 묘사되었다고들 한다. 주인공이 하숙집을 나설 때의 장면을 한 번 보자.


"그리고 청년은 지나칠 때마다 일종의 병적인 비겁함을 느꼈는데, 그것이 부끄러워 얼굴을 찡그리곤 했다. 그는 하숙비가 밀려 있었기 때문에 여주인을 만나는 게 겁났던 것이다."


이어지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큰 일을 감행하려고 하는 자가 이런 사소한 것에 겁을 내다니!"


그렇다. 인간은 영웅적 업적을 이룰 수도 있지만, 작은 일에 쩔쩔매기도 한다. 허세 부리는 인간의 현실을 얼마나 정확히 묘사했나! 필자도 가이드 할 때 손님들로부터 아는 게 많다는 칭찬을 가끔 들을 때가 있다. 그러면 속으로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제 설명 들으시면 더 놀라실 거에요 라며 의기양양한다! 하지만, 에르미타주 박물관 들어갈 때 표와 짐 검사를 까다롭게 하는 검표원 아줌마를 만날까봐 두려워 하곤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가이드들이 다 무서워 하는 그 금발의 아줌마 말이다. 그룹 행사는 늘 시간이 부족한데, 그 아줌마 한테 걸리면 이런 저런 트집을 잡혀서 대기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300만점이나 되는 위대한 예술작품을 해설하는 자가, 이런 사소한 것에  겁을 내다니!' 그 다음 계단실 장면을 보자.


“그는 문으로 달려가 문 밖을 엿들은 다음 모자를 움켜쥐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자신의 13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죄와 벌의 계단실 장면은 급격한 사태의 전환, 위기 상황, 중대한 결심을 상징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13이라는 숫자는 중요한 상징이다. 12 계단일 수도 있고, 14 계단 일 수도 있는데 왜 굳이 13 계단일까? 그것은 13은 서양인들이 금기시 하는 숫자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예수가 13일의 금요일에 처형을 당하였다고 전해 내려오기 때문에, 13은 죽음과 관련된 불길한 숫자이다. 즉 13계단을 내려감으로써 라스콜리니코프는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또 하나 '자신의' 13 계단이라고 되어 있다. 이 계단은 건물주의 것이지, 라스콜리니코프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신의'라는 말을 쓴 이유가 무엇일까? 13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라스콜리니코프는 노파 살해의 정당성에 대해서 고민했을 것이다. 즉 그는 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이미 마음 속에서 수 없는 살인을 저질렀으며, 또한 살해 계획을 면밀히 짰을 것이다. 그 날의 사건은 그것을 결행한 것일 뿐이다. 13계단은 라스콜리니코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자신의'란 단어는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은 결국 자기 정당화에 의해 이뤄진 계획범죄임을 강조하는 단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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