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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드시선 Mar 29. 2022

유디트-조르조네

잔혹한 암살자를 비너스로 그린 이유!

조르조네(1478-1510)는 조반니 벨리니(1430~1516) 공방 출신입니다. 같은 공방에서 그림을 배운 화가가 티치아노(1490~1576)입니다.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관계는 애매합니다. 혹자는 두 화가가 선후배 사이라 하고, 혹자는 티치아노가 조르조네의 제자라 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티치아노가 조르조네와 협업을 많이 하였으며, 화풍도 비슷한 것은 사실입니다. 안타깝게도 조르조네가 요절하는 바람에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하였으나 티치아노가 조르조네의 뒤를 이어 뛰어난 명성을 얻게 되었으니 청출어람이라 하겠습니다.

다비드로서의 조르조네, 티치아노


두 사람은 베네치아에서 활동하면서, 베네치아 화파라는 고유의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피렌체 화파와 비교되는 베네치아 화파의 특징은 빛으로 충만한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입니다. 서양미술사학자 고종희의 해설을 보겠습니다.


"조르조네는 빛과 색채를 통해 대기와 자연의 부드러우면서도 감성적이며 지적이기까지 한 표현을 가능케 했고..."

르네상스 미술가평전, p.1459 고종희 해설


조르조네의 화풍을 한 문장으로 잘 압축하였는데요, 여기서 조르조네 화풍에 대한 몇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빛과 색채의 표현에 능했다.

둘째, 대기와 자연을 그렸다.

셋째, 감성적이며 지적인 표현을 가능케 했다.


미술사에서는 선이냐 색채냐 라는 오래된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그 논쟁은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르네상스 때부터 그 대립이 명확해 집니다. 빛과 색채는 감성의 영역이며, 선과 형태는 지성의 영역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동시대의 두 화가 작품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티치아노와 안드레아의 회개하는 마리아입니다. 티치아노의 그림에서는 인물과 배경의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대신 풍부한 색채가 화폭을 지배하며, 명암의 대비를 통해 막달라 마리아의 통회하는 심정을 감성적으로 전달합니다. 안드레아의 그림에서는 인물과 사물의 묘사가 매우 선명합니다. 금잔에 향유를 넣는 행동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는 이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어서 발을 씻었다고 나옵니다. 성경의 내용을 알면 금잔이 등장한 이유와 향유를 붓는 이유를 알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회화에서 감성과 지성은 서로 대립되는 사조의 특성들인데, 조르조네의 그림은 이 두가지를 겸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빛과 색채의 화가인 조르조네의 그림에서 지적인 표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안다면 조르조네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죠.

막달레니안 들소 BC17,000~BC12,000 알타미라 동굴


조르조네는 장식가로 일했기 때문에 보통 가구나 방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작품들은 오래 갈 수 없겠죠? 또한 성당의 프레스코화 작업도 하였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퇴색되어 온전히 남아 있는 작품이 거의 없습니다. 현재 확실한 조르조네의 작품은 전세계에 5~6점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조르조네의 것으로 여겨지는 그 외의 작품들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조르조네는 단지 몇 작품만으로도 르네상스 거장들 못지 않은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제일 혁신적인 베네치아 화가였을 것입니다.


조르조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템페스트(1506~1508)와 잠자는 비너스(1510) 입니다. 조르주 바사리는 르네상스 미술가평전에서 조르조네가 그린 베네치아의 독일 포목상가 프레스코화를 보고 이런 평을 했습니다.


"나는 그 그림들이 옛날 또는 현대의 어느 시대를 표시하는 것인지 뜻하는 바를 알 수 없으며, 또 누구도 나에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다."

르네상스 미술가평전, 조르조네편, p.1471


모호성! 이것이 조르조네의 위대함이라면 좀 당황스럽죠? 르네상스 시대에는 역사화(역사, 성경, 신화)가 인기였기에 그림에 어떤 인물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이것이 역사, 성경, 신화 속 한 장면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템페스트에서 조르조네는 그렇게 볼만한 근거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목동도 아기에게 젖을 주는 여인도 누구인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등장인물이 모호하다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며, 이는 이 인물들의 배경을 형성하는 풍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림에 서정적이고 낭만적 느낌을 부여하는 것, 즉 캔버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자연에 드리워진 색채를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히 지성의 영역(역사화)을 탈피한 것입니다. 그래서 조르조네를 서양미술사 최초의 풍경화가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템페스트 1503~1509 조르조네  아카데미아 미술관


또한 비길데 없이 아름다운 그림, 잠자는 비너스(1510) 또한 전무후무한 조르조네의 작품입니다. 이후 티치아노의 우르비노 비너스, 고야의 옷 벗은 마야, 마네의 올랭피아 등에서 이 주제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부드럽고 따뜻한 색조 속 이상적인 비너스의 자태에 있지만, 그것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실제 자연 같은 풍경입니다. 이에 대해 조르조 바사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데생 연구에 너무 몰두했으므로 대자연도 그를 최대한으로 도와주었다. 즉, 아름다운 자연에 도취하여 오직 실물만 묘사하고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르네상스 미술가평전, 조르조네편, p.1461

잠자는 비너스 1508 조르조네 알테 마이스터 미술관


즉 조르조네 작품이 위대한 것은 인물과 자연을 따뜻한 빛과 색조 속에 융합시켰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렇게 풍부한 색채와 풍경 속에 이상화된 여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방식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유디트에서 반복됩니다. 두 작품 속 주인공의 얼굴을 비교해 보십시오. 순진해 보이는 표정의 유디트는 미의 여신과 매우 흡사합니다.


에르미타주의 유디트를 보겠습니다. 이 그림도 옷장에 그렸던 것을 19세기에 캔버스로 옮긴 것입니다. 유디트는 성경 외경에 나오는 인물로서 앗시리아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한 젊은 과부입니다. 적군들이 예루살렘 성을 둘러싸고 다음 날 아침에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 유디트가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장막으로 와서 아름다운 몸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유혹했습니다. 술도 많이 먹였습니다. 장군이 자는 사이 유디트가 장군의 검을 가지고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우두머리가 죽은 적군들은 지리멸렬해서 도망갔습니다.

유디트 1504 조르조네 에르미타주


용사도 아니고, 젊은 과부가 적장을 암살한다는 줄거리 자체가 매우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수많은 화가들이 이 주제를 그렸습니다. 하지만, 조르조네 작품의 색다른 점은 이러한 사건이 적장의 장막 안에서 일어났음이 분명한데도, 자연을 배경으로 일어난 것처럼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고종희 선생이 대기와 자연을 그렸다는 평가가 여기서 그대로 적용됩니다. 원근법에 따른 풍경 묘사는 분명 르네상스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렌체 그림들과 달리 이 그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좌우 대칭이나 조화와 균형 같은 규칙이 아닙니다. 선과 색을 건축에 종속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즉 원근법을 나타내기 좋은 수단인 건축을 주요 묘사 대상으로 쓰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명암법 같은 예술적 효과를 발휘하여 애상적 분위기를 억지로 유발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화처럼 그림 속에 알레고리적 속성을 배치하여 교훈을 전달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빛 속에서 인물이 있는 풍경을 화사하게 그렸을 뿐입니다.


이 그림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림 전체에 충만한 빛입니다. 풍경도 인물도 모두 부드러운 빛 속에 있습니다. 풍부한 빛이 그림의 통일성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조르조네는 유디트와 적장의 머리 등 주제만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먼 산과 성읍, 커다란 나무와 풀숲 뿐 아니라, 발 밑의 잔디, 토기풀 그리고 인물 뒤의 담벼락까지 섬세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다 그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매우 다양한 소재들이어서 그것들을 조화롭게 그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런데 마치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가 모여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듯, 다양한 사물들이 부드러운 빛이 스며든 공간 안에서 하나의 조화로운 풍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빛과 색채가 만들어 주는 따스한 공간감을 우리는 느끼는 것이죠.


한편, 유디트의 자세를 유심히 살펴 보세요. 조르조네는 매력적인 한 여인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쪽 허벅지를 살포시 드러낸 매혹적인 자태입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손을 보세요. 칼을 한번도 잡아 본 적 없는 서투른 자세입니다. 적장을 죽인 칼이라면 용맹스럽게 칼을 치켜 들고 있는 모습이어야 할 텐데, 칼은 뒷편으로 수줍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잘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에서는 피가 튀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유디트의 인상은 적장을 죽일만한 강인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는 화가들이 유디트에 대해 갖고 있던 지식 또는 편견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즉, 유디트를 전사로서가 아니라, 유혹을 통해서 적장을 죽인 매혹적인 여인으로 그린 것이죠. 참고 그림들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어떻게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는 유디트를 무표정하게 그릴 수 있으며, 그런 상황에서 왜 여성성만을 부각시킨 것일까요? 이에 비하여 17세기 여류 화가 젠틸레스키는 남성 못지 않은 용맹성을 가진 여인으로서 유디트와 그녀를 적극적으로 돕는 몸종을 그려냈습니다. 


순진한 미소로 사색에 잠긴 듯 잘려나간 적장의 머리통을 바라보는 표정은 뭔가 부자연스럽지만, 조르조네는 사건의 내용보다는 이상화된 아름다움의 표현에 집중하였습니다. 즉 고대의 낭만적인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여, 풍부하고 따뜻한 색채가 만들어 내는 풍경 속 인물을 그린 것입니다. 피투성이의 잔혹한 분위기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죽음조차 삶의 일부인 양 담담히 받아들이는 유디트! 살풍경 속에서 유디트의 아름다움은 평화롭게 잠자는 비너스의 아름다움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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