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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드시선 Feb 06. 2023

전당포 노파의 집

선한 것은 아름답다

소냐가 어디선가 구한 19세기 귀족들의 복장을 한 채 길거리에서 호객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달된다. 소냐는 그 복장 그대로 집으로 달려 간다. 그녀의 복장은 위문 온 사람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차마 아버지 침대 옆으로 가지 못하고 문간에서 흐느껴 운다. 겨우 실눈을 뜨고 문간의 소냐를 발견한 아버지는 마지막 호흡을 몰아 쉬며 내뱉는다.

아버지 상 치르는 자리에 창녀의 복장을 하고 있는 소냐


"소냐 내 딸아, 용서해 다오"


그리고 눈을 감는다. 소냐는 그제서야 아버지에게 달려가 죽은 아버지의 몸을 붙잡고 통곡을 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여기서 소냐를 처음 보게 된다. 마르멜라도프와 소냐의 슬픈 인생사를 자신과 두냐의 삶과 비교해 보며, 라스콜리니코프는 이 세상의 가난과 불행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건가? 다시 한번 고뇌에 휩싸인다. 그래서 소냐의 집에서 라스콜리니코프와 소냐의 만남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세상의 불행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둘 다 선을 넘은 존재이지만, 그 영혼의 상태는 달랐다. 그 가슴 아픈 두 주인공의 만남을 뒤로 하고, 이제 우리는 노파의 집을 향해 간다.


소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목적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그는 자기 집 문 앞에서 거기까지 몇 발자국이나 되는지도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7백 30 발자국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고 있기에 좋은 점은 소설의 내용을 현장에 직접 가서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뭔가 꽂히면 쏟아붓는 성격이라, 7백 30 발자국이 정말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우선 라스콜리니코프의 집에서 노파의 집까지 가는 경로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K다리를 건너서 사도바야 거리를 타고 가다가, 림스키 코르사코프 대로로 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냐의 집을 거쳐서 보즈네센스키 대로를 따라 가다가, 림스키 코르사코프 대로로 가는 것이다. 구글 지도로 측정해 보면, 첫번째 경로의 총 길이는 970m이고, 두번째 경로의 총 길이는 730m 이다. 730m 경로를 따라 걸어 보았더니, 900보 정도가 나왔다. '어라, 도스토옙스키가 사기 쳤네?' 첫번째 경로는 걸어볼 필요도 없었다. 더 빠른 길로 가도 900보가 나왔으니 말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K다리를 통해서 갔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내 걸음으로 환산하면 그길은 1,195 걸음이 나오므로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진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 연구자들은 730이라는 숫자는 실측이 아니며, 단순히 걸음 걸이 숫자까지 정확히 알 정도로 치밀한 범죄 계획을 세웠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도스토옙스키가 실제 걸어 보지도 않고 730보라고 말했을 리 없다고 봤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소설에 답이 나와 있다. 소설에 보면 라스콜리니코프는 키가 크고 마른 미남형이라고 나온다. 만약 라스콜리니코프의 보폭이 1m 정도라면 두번째 경로는 정확히 730 보가 나온다. 연구자들의 추정과 달리 소설에는 노파를 살해하러 갈 때 라스콜리니코프가 이동한 경로가 정확히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여러 경로를 조사해 놓고 선, 살해 당일 가장 빠른 경로를 선택하였다 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동 경로로 추정되는 사자 다리


그리보예도바 운하를 따라 걷다 보면 보즈네센스키 대로를 만난다. 이 대로도 도스토옙스키와 친숙한 길이다. 우리는 도스토옙스키가 안나와 이룬 신혼집을 지나게 될 것이다. 또한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훔쳐온 장물들을 V 대로의 어떤 집에 숨겼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보즈네센스키 대로이다. 보즈네센스키 대로를 따라 가다가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와 만나는 사거리에서 우리는 아주 재밌는 조각상을 볼 수 있다. 벽을 한번 올려다 보기 바란다. 커다란 비뚤어진 코 조각 상이 벽에 걸려 있다. 거기에는 '마요르 코발료프의 코'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렇다. 고골의 작품 '코'의 무대가 되는 곳이 바로 보즈네센스키 대로인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고골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고골 소설의 무대를 죄와 벌에도 도입한 것이다. 어쨌든 '코'라는 작품은 코발료프의 코에 발이 달려서 코발료프 행세하며 돌아다닌다는 판타지 소설이다. 코에 발이 달렸다. 그래서 코발료프구나! 이렇게 하면 주인공 이름이 쉽게 외워진다.

고골의 코의 무대가 되는 보즈네센스키 대로의 코 부조, '마요르 코발료프의 코'라고 써 있다.


자 이젠 긴장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라스콜리니코프로 빙의하여 노파의 집까지 간다고 상상해 보자. 품속에 도끼를 숨긴 채 말이다. 이 날 라스콜리니코프는 늦잠을 잤다. 전당포는 7시에 문을 닫는데, 아뿔싸! 7시에 일어나고 말았다. 물건을 챙겨서 노파의 집까지 서둘러 간다. 거의 다 왔을 때,  7시 반을 알리는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도 이렇게 도중에 만나는 모든 것에 집착을 하겠지.' 이런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는 곧 그런 생각을 지워 버렸다.... 하지만 그는 벌써 집 근처에 다가가고 있었다. 바로 저기, 집이 그리고 문이 보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시계의 종이 한 번 울렸다. '뭐야, 벌써 7시 반이란 말인가? 그럴 리가 없어. 아마도 시계가 빨리 가는 걸 거야!'"


노파의 집 위치로 볼 때, 성니콜라이 성당의 종소리로 추정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성니콜라이 성당 주변 산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 근처에 살고 있는 나도, 시도 때도 없이 이 곳을 산책하며 사철 사진을 남기고 있다. 그 만큼 풍경도 좋고, 마음도 고요해 지는 도심 속 성지라 할만 한 곳이다. 가끔 종소리가 울릴 때, 평화롭게 운하 울타리와 잔디 밭에 앉아 있던 비둘기들이 퍼드득 하늘로 날아 올라 군무를 추는 모습도 볼 만 하다. 하지만, 평화를 선사해 주는 이 종소리가 소설에서는 불안감을 조장하는 매체로 등장하고 있다. 천국과 지옥은 정말 생각하기 달린 것 같다. 여기서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의 심리를 잘 표현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는 페트라솁스키 사회주의 서적 클럽 활동을 하다가 반란 혐의로 체포되어 실제 사형장에 서 봤던 것이다. 

성니콜라이 성당, 라스콜리니코프는 이 성당의 종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노파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예순 살쯤 되어 보이는 작달막하고 말라빠진 노파의 눈은 날카롭고 사악해 보였으며, 코는 작고 뾰족했고,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고 있지 않았다. 숱이 적고 하얗게 센 머리털에는 기름이 잔뜩 발라져 있었다."


이런 묘사를 통해 작가는 교묘하게 독자를 라스콜리니코프의 감정에 이입되게 만든다. 스크루지 영감처럼, 지독한 수전노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은연 중에 죽어도 싼 인물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노파는 이미 전당포 문을 닫았다. 그러나 오늘 거사를 계획했기에 라스콜리니코프는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가 전당포 초인종을 눌렀으나, 노파는 다음에 오라고 하며 문을 열어 주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 노파의 약점은 탐욕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꽤 괜찮은 전당물을 갖고 왔는데, 지금 안받아 주면 다른 전당포에 맡기겠다'고 하자 노파는 망설였던 것이다. 문이 조금 열렸을 때  라스콜리니코프는 억지로 문을 열고 들어 간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노파에게 건데 준 것은 가짜 은담배갑. 미심쩍은 노파가 은답배갑을 감식하려고 뒤를 돌아보고 있을 때, 라스콜리니코프는 노파의 정수리를 도끼로 가격한다. 소설에 보면 정확히 정수리를 가격하여 이마까지 갈라졌다고 묘사되어 있다.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어떻게 이렇게 도끼질을 잘 할 수 있을까? 그 만큼 노파가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것임을 말해 주며, 라스콜리니코프가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음을 강조해 준다. 이 장면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욕실씬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둘다 사이코 패스들의 감정없는 무자비한 살인이었던 것이다. 이 때, 집으로 돌아온 리자베타를 마주하게 되고 라스콜리니코프는 망연자실한 그녀도 죽인다. 여기서 앞에 얘기한 것처럼 모순이 발생한다. 전당포 노파는 그렇다 쳐도, 리자베타를 죽인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지점 때문에 나중에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아 분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당포 노파의 집으로 추정되는 아파트


노파의 집이 있는 안뜰에서는 지금도 죄와 벌 매니아들이 모여 가이드들의 설명을 듣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관광객들로 인해 시끄러울 수 있음에도, 전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대가의 작품 속 집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제 문학투어의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정신병 진단과 자수를 참작받아 이례적으로 시베리아 형무소 8년형을 받는다. 이 8년형은 도스토옙스키가 실제 받았던 시베리아 유형생활 8년과 일치한다. 라주미힌과 두냐는 결혼하며, 재산을 처분해 라스콜리니코프가 있는 시베리아 도시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를 따라 시베리아로 가서 감옥생활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수발을 든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수했지만,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아직 인정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 곳에는 자유가 있었고, 이곳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마음의 자유가 없는데, 자신과 같이 감금된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라스콜리니코프가 아침 작업을 나갔을 때 어찌된 일인지 그 자리에 소냐가 와 있었다. 형무소장의 특별 허락으로 외부인에게 굳게 닫힌 형무소 문이 열렸던 것이다. 이는 마치 예수가 묻힌 무덤의 돌문이 굴려져 부활의 예수를 만날 수 있었던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 같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거기서 또 다시 엎드려 소냐의 무릎을 감싸 안는다. 이로써 둘은 부활에 이르렀음을 예감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이야기,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점차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서서히 옮겨 가는 이야기, 이제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이는 새로운 얘기의 주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의 얘기는 이것으로 종결되었다.”


새로운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는 문장에서 이런 재밌는 상상을 해 보았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유형을 마치고 소냐와 결혼을 했다고 치자. 이르쿠츠크이든 상트페테르부르크이든 거기에 머물며 가정을 꾸리고 애를 낳았다고 치자. 그러면 가정의 삶이라는게 결국 애 키우며 부부간, 부모 자식간, 지지고 볶는 삶이 될 것이고, 그러면 세상의 불행에 대해서는 고민할 여유도 없게 되지 않을까? 이는 죄와 벌을 폄훼하는 수준의 비평일 수도 있지만, 좀 현실 감각을 발휘해 본다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다루는 것이 죄와 벌 제 2부가 될 수 있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어쨌든, 라스콜리니코프도 소냐도 행복감으로 유형생활 8년을 마치고, 함께 살 것을 꿈꾸며 이야기가 종료된다. 이것은 명백히 도스토옙스키가 기독교적인 결론을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어떤 이는 '새로 태어나는 이야기'라는 부분에서 니체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유명한 '낙타와 사자와 어린아이의 비유'가 나온다. 어린아이는 초인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데, '새로 태어나는 이야기'가 바로 어린아이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플라톤과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빌어 문학투어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모든 선한 것은 아름답다" - 플라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 -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에 대한 개인적인 결론이다. 가난과 불행 속에 살던 인물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이야기. 나와 독자들의 이야기일 수 있는 이 소설은 도스토옙스키의 세상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보여준 것이다. 소설의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소설을 읽어 보면 나와 다른 시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의 해석이 일반적인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 글이 소설 죄와 벌에 친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면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지금 문학투어의 얘기는 이것으로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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