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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Mar 06. 2024

도서관은 사랑을 싣고

나의 취미 모음집 - 도서관

내가 일곱살이 되던 해 일찌감치 내 집마련에 성공하신 부모님 덕분에 결혼 전까지 20년 넘게 한 집에서 살았다. 서울 변두리에 있는 빌라였지만 주택가에 처음으로 생긴 4층짜리 건물이라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주변이 모두 낮은 건물인데 나 홀로 높은 곳에 산다는 것은 나의 사생활은 철저히 보장되지만 상대의 사생활은 너무 쉽게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3층 집 창문에서 아래를 쳐다보면 마당에 나와 놀고 있는 같은 반 친구가 보였고, 엄마한테 두들겨 맞고 발가벗을 채 쫓겨나는 옆 반 친구도 보였고, 한밤 중 싸우는 친구 부모님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구경할 수 있었다. 가장 자랑할 만한 점은 우리 집만 우뚝 솟아있으니 날씨가 좋은 날에는 여의도까지 어렴풋이 보이곤 했는데 덕분에 집에서 아주 작게나마 불꽃놀이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자랑 중 하나였다.


불꽃놀이 뷰는 3년 만에 끝이 났는데 우리 집 보다 더 높은 아파트가 새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도 아파트가 돈이 될 것이라는 선견지명이 있는 어른들이 하나, 둘 아파트에 입주하기 시작했고 나의 불꽃놀이 조망을 빼앗긴 것은 물론이거니와 높은 곳에서 친구들을 내려다 보던 나의 취미도 더 이상 나만 가능해진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새로 지어진 고층아파트 보다 우리 집에 대한 자부심을 더 느꼈던 이유는 딱 하나.


도서관이 가깝다는 거였다.


pixabay


지금처럼 스터디카페가 있던 것도 아니고, 동네에 하나뿐이던 독서실 앞에는 무서운 고등학생들이 터를 잡고 있다는 괴상한 소문이 돌았던 덕분에 공부 하겠다는 아이들은 모두 도서관 열람실로 모였다. 시험기간이 되면 열람실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는데 그 행렬이 마치 오늘날 명품 매장 오픈런을 기다리는 사람들 표정만큼이나 비장했다.


줄은 선 친구들이 하나같이 공부를 위해서 모였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만약 그 모든 친구들이 공부에 열중했다면 아마 우리 지역 고등학교의 서울대 입학률은 상위권에 들어야했겠지만 불행히도 언제나 하위권이었다. 그것도 최하위권. 그러니 거기 모인 모든 이들이 공부를 위해 모였다기 보다는 서로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일단 집밖으로 나온 경우, 도서관에서 공부하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과 놀기 위해 나온 경우, 실제로 공부를 하려고 했으나 뜻밖의 숙면을 취한 경우, 도서관에 있던 최신식 라면 자판기의 맛을 보기 위해 온 경우 등등.


그 중 가장 로맨틱한 이유는 바로 초등시절 헤어진 친구를 그곳에서 만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우리 지역 중학교는 남녀공학은 하나뿐이고 모두 여학교, 남학교로 나누어져 있었다. 때문에 남녀공학 중학교를 가지 못하면 초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남학생과는 영원히 이별하는 구조였다. 지금은 누구나 휴대폰을 가지고 있고, SNS가 활발하니 학교가 떨어져도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겠지만 그 시절은 달랐다. 연락을 할 방법이라고는 집으로 전화를 거는 수 밖에 없었는데 이성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 어디 쉬웠겠는가. 부모님이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그러니 학교가 멀어진다는 것은 생이별을 의미했다.


다행히 공공도서관이 동네에 하나뿐이라 시험기간이 되면 그 지역 대부분의 학생이 도서관에 모인다는 것이 기회라면 기회였다. 즉, 운이 좋으면 그 시절 좋아하던 남학생이나 여학생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 만나고 싶은 이성친구가 없더라도 일단 도서관에 가면 상급학교의 멋진 오빠를 만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 게다가 도서관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넓고 근사한 근린공원 안에 있어 도서관에서 눈이 맞아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공원에서 걷는 일은 더 할 나위 없는 데이트 코스였다. 그 시절 도서관에 갈 때도 츄리닝 대신 청바지를 입었던 이유다. 단, 한가지 위험한 점이 있다면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실제로 통하던 시절이라 누가 어느 딸인지 알았기 때문에 잘못 걸리면 금방 소문이 수도 있다는 거였는데 시절 좋아하는 오빠와 한마디 나눠보려다 사촌 오빠에게 걸려 첫사랑을 이루지 못했다는 슬픈 스토리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시험기간에 공부하러 도서관 가는 사람이 어디있느냐.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다 학원에 가있다.' 하는 소리도 있었는데 나조차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중3 때부터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길을 끊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낭만과 청춘은 기억 속에 남아 지금도 예전에 살던 집 근처를 지날 때면 도서관에 들러보곤한다. 이제는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자료실로 향하지만 내 마음은 열람실에서 잘생긴 오빠를 찾던 혹은 좋아하던 남자친구를 찾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지금은 행여나 마주치더라도 '배 나온 아저씨가 다 되었네'하고 실망해버리겠지만 말이다. (상대도 피차일반이듯. '주름진 아줌마 다 됐네!' 하고 돌아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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