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주말, 아이들과 나들이를 갔다. 참고로 4살 된 우리 딸은 사교성이 좋아, 자기 나이 또래의 여자 친구들만 보면 그렇게 말을 시키고 싶어 한다. 보통은 “몇 살이야?”로 시작되는데, 그 말이 나오면 친구가 하고 싶다는 뜻이다.
이 날도 나들이 간 곳에는, 비슷한 몸집의, 딸아이처럼 핑크색으로 치장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나도 근처에 있는 그 아이를 보았는데, 보자마자 나는 그 아이가 조금 특별한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운증후군”아이였다.
딸은 그 아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거침없이 다가가 나이를 묻는다. “몇 살이야?” 그 아이는 대답이 없다. 아이가 대답이 없자 한번 더 묻더니, 그래도 대답이 없자 옆에 있던 아이의 엄마에게 묻는다. 그 아이의 엄마는 나의 아이를 한 번 쳐다보더니, 아무 대답도 남기지 않고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쳐 간다.
딸아이가 조금은 실망한 듯 나에게 돌아온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저 친구가 궁금했구나. 근데 친구가 바쁜 일이 있나 봐.”하고 둘러댔다.
알고 있다. 우리는 감히 헤아리지 못할 아이와 엄마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들에게 장애란, 어른들이 느끼는 것처럼 그리 심각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4살 딸아이에게 다운증후군의 그 아이는,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생기듯, 그저 다른 친구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비슷한 또래의, 저처럼 핑크를 좋아하는, 그래서 친해지고 싶은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다.
나는 대학교에서 특수교육을 세부전공했다. 물론 교직 생활 중에는 학급에서 장애아를 가르쳤던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결국 이 작은 아이들의 마음을 따라가기에 더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이 아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편견 없이 활짝 열려있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장애 아이가 있던 저학년 학급의 담임을 맡은 적이 있었다. 혹여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소외되면 어쩌나, 개학도 전부터 한 걱정을 했었다. 그런 내 걱정이 무색하게, 저학년 아이들은 그 아이와 정말 허물없이 지냈던 것 같다. 물론 장애의 정도가 약해서이기도 했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그 아이는 그냥 조금 “다른” 친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쉬는 시간에는 다 같이 어울려 놀았고, 수업 시간엔 그냥 느린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듯 알려주고 도와주면 그만이었다.
물론 저학년이라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생기기 전인 어린 시절에, 티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장애가 있는 친구를 만나본 경험은 앞으로 아이들의 평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확신한다.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좀 더 편안하고 열린 마음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어울려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어른들이 아직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도화지 같은 어린아이들에게,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많이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자란 그런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 그런 어른들이 모여, 너그러운 사회, 열린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