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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기 Oct 16. 2023

토지: 갈등, 모순, 관계를 담는 용기(容器)

모든 일상과 해프닝들은 땅(공간)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인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을 일종의 용기(容器)로 표현하며, 관념(ideology), 이미지(imaginary), 실천(practice)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간이 생산됨을 이론화하였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는 르페브르의 공간생산 이론을 이야기로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그 무대가 경남 하동의 평사리로 옮겨왔을 뿐이다. 땅을 빌려 농사로 먹고사는 민중들의 고난과 갈등, 땅을 빌려주고 부를 축적하며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들, 남의 땅을 넘보며 제국주의 이념을 앞세우는 이웃국가들이 뒤섞이고 부딪치면서 현재의 대한민국이란 공간을 만들어냈다.

현 윤석열 대통령은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산전체주의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반면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갈등과 이념갈등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음을 강조하며 화해와 공존의 노력에 앞장섰다. 그래서 진보정권은 세종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같은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펼쳤고, 이명박이나 박근혜 대통령 같은 보수정권은 각종 규제를 완화하여 민간시장에 의한 개발과 경제성장을 중시했다.

이렇듯이 이 땅에서 여러 세력, 이념, 욕망, 폭력이 뒤엉켜 역사라는 맥락과 정책이라는 수단을 만들었고, 이것은 현재의 공간생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광화문광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쳐져 왔고, 돌아온 오세훈 서울시장은 차기 대권을 위해서인지 다시 한강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흥미롭게도 박경리의 토지는 완결되었지만, 현실판 토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땅을 통해 대한민국을 정확히 꿰뚫어 본 박경리 선생님의 통찰에 매번 감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생전 그녀의 집은 "토지공사"에 의해 밀려서 사라졌으나, 또한 박경리에게 새로운 집과 작업공간을 마련해 준 곳은 "토지공사"였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주장했듯 공간은 모순적 상호작용의 연속에서 생산되고 변화한다.

역사적으로 돌이켜보면, 땅을 영원히 소유했던 권력자는 없었으며, 땅에 대한 탐욕은 전쟁이라는 비극을 만들어왔다. 지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땅에 대한 갈등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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