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 직원의 여행이야기 - 001
괌 여행상품을 예약하는 예약자들을 살펴보면 70% 이상이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 대부분이며 거기에 부모까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소위 3대 여행인 경우가 많았다. 20대, 30대 초반의 괌 여행자들은 본인이 알아서 어떤 형식으로든 저렴한 항공권을 예매하고 마음에 드는 숙소를 입맛대로 골라 다니기에 여행사 예약으로는 잘 이어지지 않는 편이었고 돌발상황이 많은 해외여행인 만큼 수수료를 주고 예약하더라도 가족여행 (특히 부모님을 모시는 경우)은 여행사를 통해 예약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여행상품을 예약받다 보면 주 예약자 (대표자)와 통화를 하는 경우가 잦은데 적게는 3회, 많게는 수십 번의 통화를 하기도 한다. 최초 예약 시 유의사항 안내는 물론이거니와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기대하는 만큼 궁금한 것도 많아서 여행사 직원은 그런 궁금증 해소해주기엔 척척박사이기 때문이다.
괌 지역 여행상품 예약 업무를 3년가량 진행했을 때 어느 순간부터 눈에 띄는 낯익은 성함이나 전화번호 끝자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회사 시스템과 직통전화는 연결되어 있어서 손님이 전화를 걸어오면 화면에 누구이며, 어떤 예약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아직까지 성함과 끝자리를 기억하고 있는 이 손님께서는 나를 통해 괌 여행을 4번 정도 다녀오셨다.
처음 예약받을 때에는 동반 자녀가 24개월 미만인 유아여서 좌석을 점유하지 않고 안고 탈 수 있는 나이였고 육아에 지쳐있던 일상에 힐링이 되는 여행을 원하셨다. 그래서 조용하게 쉴 수 있는 리조트에 정원이 보이지만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객실을 추천해드렸고 매우 만족해하셨다.
그다음 예약을 하실 때 에는 좌석을 점유해야 하는 소아가 되어 물놀이를 맘껏 할 수 있는 리조트를 선택하셨다. 하루 종일 밥 걱정 없이 3끼 모두 해결해 주는 리조트에서 아이와 정신없이 물놀이하며 시간을 보내셨다고 하셨다.
그 다음번 예약에는 둘째가 등장했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예약을 요청해주셔서 총 6명이 된 가족여행이었다. 부모님을 좋은 객실에 모시고 싶다고 하셔 공부해두었던 수첩을 펼쳐서 마땅한 호텔을 찾았다. 1개의 객실은 거실과 침실이 나누어져 있는 스위트룸 형태의 객실이지만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은 리조트였고 이 객실과 일반 객실 한 칸이 거실에서 연결이 가능해 호텔 복도를 통하지 않고도 왕래를 할 수 있는 구조였다. 어렵게 예약을 끝내고 특이한 구조의 객실 예약이어서 현지에 몇 번이고 전화와 이메일을 보내 요청을 했다.
매끄럽게 예약이 진행이 완료되고 손님이 출발하시는 날만 남은 상태였는데 출발 일주일 전쯤 점심식사를 하고 오니 회신을 바란다는 메모가 남겨져 있어서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께서 암 판정을 받으셔서 여행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항공권도 발권을 마친 상태이며 호텔비용도 지불을 끝낸 상태에서 수수료가 나오는 건 피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우선 전화를 끊고 현지 호텔에도 사정을 이야기하고, 항공사에도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런 경우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하는데 사건이 터지면 자초지종을 호텔 측과 항공사 측에 설명을 하고 적당한 서류 (이 손님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아프시니 진단서나 여행이 불가하다는 의사소견서, 그리고 같이 여행을 가는 일행들의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첨부하면 내부적으로 논의를 거치고 여행사로 답변을 주기도 한다.
부모님께서 암 판정을 받으셨는데 얼마나 정신없으셨을까. 거기에 전화를 해서 수수료가 얼마 나올 것 같고, 면제하려면 서류가 필요한데 준비해주실 수 있으시냐 여쭤보니 필요한 서류를 다 준비해주셨고 최대한 정중하게 요청해서 수수료 없이 항공권과 호텔 예약을 취소할 수 있었다. 보통 불가항력적인 사유라고 하더라도
여행사는 예약을 대행해주는 수수료를 받고 있지만 이손님의 경우에는 나에게도 굉장히 젠틀하게 해 주셔서 내부 협의를 통해서 취소수수료 없이 전액 환불을 해드렸다.
1년 정도 후에 다시 전화가 왔고 건강해지신 손님 어머니의 재발급하신 여권도 받을 수 있었다. 이전에 예약했던 호텔보다 훨씬 좋은 호텔로 예약 진행을 하셨고 무사히 다녀오셨다.
그해 가을 무렵 회사 내 자리로 손님 성함으로 보내신 택배가 왔다. 한의원에서 직접 만든 쌍화탕 한 첩이었다. 내게 보내신 게 맞나 하고 어리둥절할 때 손님께 전화가 왔다. 남편이 한의원을 하는데 환절기라 갑자기 내가 생각났다며 감기 조심하시라며 보낸 거라고 큰 거 아니니 잘 드셔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하셨다. 손님들께 커피나 빵 정도는 받아봤지, 직접 처방한 쌍화탕이라니. 슬쩍 눈물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감동스러웠다. 슬쩍 검색해보니 지역에서 꽤 유명한 한의원이었다.
다시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전화드렸는데 손님께서는 항상 저희 여행 신경 써주셔서 고맙다고 앞으로 계속 여행 예약 의뢰를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남편의 휴가에 맞춰 다녀온 여행이 내 덕에 다 좋았고 만족스러웠다고 오히려 더 칭찬을 해주셨다. 나도 모르게 마음 한 편이 뭉클해졌다. 신경 썼던 부분들이 이렇게 인정을 해주시는 분이 있으셔서 너무나도 기뻤다.
여행사일을 그만둔 지 2년이 다되어가는 시점 가끔 사진첩에서 알려주는 몇 년 전의 여행사진들을 보면서 내가 여행을 진행해드렸던 손님들께서는 잘 계시려나, 이 팬더믹이 끝나고 여행을 생각하셨을 때 나를 기억해주실까? 이런 생각을 가끔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