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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May 13. 2024

스승도 아닌데, 스승의 날 카드를 받았다.

주일학교 교사 2년 차의 고민

선생님, 이거 드릴게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수줍은 얼굴을 하며 나에게 카드를 내미는 아이.

"이게 뭐야?"


 카드를 자세히 보니 아이가 직접 만든 카네이션이 달려 있다. 몇 초정도 나는 이게 뭘까 머리를 굴렸다.

 아무 말 없이 카드만 쳐다보는 내가 이상했는지 아이는 웃으면서

스승의 날 선물이에요~

 내가 선생님이었던가 한참을 생각했다. 맞다, 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선생님이었지. 여전히 선생님이란 호칭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어느덧 나는 성당 주일학교 선생님이 된 지 2년 차였다.


 아이는 어머니가 보내신 선물과 함께 직접 쓴 카드를 나에게 건네고 갔다. 나는 카드를 열어 보았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연필로 꾹 꾹 마음을 담아 적어 놓은 아이의 편지. 주위에 다른 친구들이 왔다 갔다 시끄럽게 구는데도 나는 혼자 음소거된 세상에서 아이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아니 힘들다면서
왜 교사를 하는 거야, 도대체?


 종교가 다른 남편은 내가 성당 주일학교 교사로 매 주말마다 집을 비우느라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성당의 순리를 모르는 남편은 그저, 돈도 안 받는 교사 일을 기를 쓰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눈치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은 내가 성당에서 얼마나 열심히 활동하는지 이해를 해줘서 그런지, 남편이 저런 말을 할 때마다,


아빠,
엄마가 얼마나 멋진 봉사를 하는데요!


라고 맞받아쳐 준다. 가끔은 남편보다 아이들이 훨씬 어른스럽다.


 작년에 처음 주일학교 교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1년 동안 정신없이 첫 교사생활을 보내고 나니, 2년 차쯤 되니 이제는 조금 적응을 한 느낌이다. 1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었고, 아이들과도 친해져서 어려움은 없다. 다만 2년 차가 되고 나니 더 많은 것이 나에게 요구되는 느낌적인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사실 힘들 때마다 '언제 그만둘까?' 혼자 고민하기도 한다. 둘째가 초등학교 졸업 할 때는 정말 그만둬야 하는데, 그전에 그만 두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한다. 토요일마다 성당에 가야 해서 가족 모임을 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어딜 가더라도 토요일은 제외시킨다. 그런데 또 일요일은 빨래방을 가야 해서 마음이 무겁다. 이렇게 주말 이틀 모두 바쁘다 보니, 가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다른 집들은 여행도 가고 놀러도 가는데, 우리는 주말마다 봉사하랴, 일하랴 아이들을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할 뿐이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자꾸 고민된다. 우리 가정부터 행복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자꾸 나의 욕심부터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의 욕심이라 하면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싶은 나의 마음 말이다.


 그렇게 내 마음속의 천사와 악마가 또 한창 싸우던 요즘이었다. 왜냐하면 첫 영성체 교리가 시작되었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내가 첫 영성체 담당 교사라 평일에도 성당을 가고 토요일은 물론, 가끔 주일 또는 휴일에도 피정 등이 있으면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2달만 참으면 되는데 그 2달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그래서 또 내년에는 안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찰나였다.


 그 아이의 카드는 내 마음을 울렸다. 나는 프리랜서다 보니까 일정하게 출퇴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이 몰아칠 때도 있고 갑자기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늘 긴장상태이다. 약속을 미리 잡다가도 펑크를 내는 일이 많아서, 무언가를 미리 약속 잡는다는 것이 나에게 쉽지 않다. 그러한 긴장상태로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내다가 주일학교 교리 준비를 하려고 하면 사실 너무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실제로 아는 것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오랫동안 냉담 생활을 해서 그런지, 그리고 교리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나는 부끄럽게도 아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마음 하나로도 충분히 교사를 할 수 있다고 하셔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늘 교리 때마다 내 마음에는 무거운 바위 덩어리가 하나 앉아 있는 것 같다.


 그런 나에게 '늘 재미있는 교리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다.(물론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다.) 마치 내 고민을 알고 있는 듯한 그 아이의 카드는 나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고 또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반쪽짜리 선생님이지만 왠지 스승의 날이 왜 있는지 알 것 같다. 1년 내내 좋을 수만은 없는 선생님의 생활. 분명 그만두고 싶으실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스승의 날에 이렇게 아이가 마음을 다해 손수 만든 카드로 분명, 1년 치 속상했던 마음이 다 날아가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을 해 보았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스승의 날이라고 마음껏 마음을 표현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지만 말이다.


 내 직업 상 선생님이라고 아이들에게 불리는 일이 없는데, 유일하게 주말에 주일학교에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준다. 어렸을 적 모두가 한번쯤은 꿈꾸어 보았을 선생님이라는 직업. 결코 쉬운 직업이 아니고 마음의 사명 없이는 하기 힘든 직업이다. 나는 아직 반쪽짜리 선생님이고 진짜 선생님은 아니지만, 주말 동안 성당에서만큼은 나도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잘 지내봐야겠다. 이래서 힘들어도 교사를 그만 두지 못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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