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나의 첫 그림책, <마음 빨래>를 출간 한지, 3개월이 지나고 있다. 출간하자마자 가족뿐 아니라 지인들은 입 맞춘 듯, 하나 같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두 번째 책은 언제 나와요?
그림책의 ‘그’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을 한다. 그림책 1권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뼈를 갈아 넣어야 하는지. 이를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두 번째 책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예요?
이 정도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그림책 생태를 잘 아는 사람들이다. 아, 책 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두 번째 책을 묻는단 말이야?라고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그만큼 나에게 관심이 많은 걸로 이해하겠다.
사실 첫 그림책 <마음 빨래>를 처음 쓸 때, 같이 썼던 원고가 하나 있다. 사실 그 원고의 메시지는 <마음 빨래>처럼 사람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마음 빨래>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기도 하다. 당시 선생님은 나의 원고의 콘셉트는 좋다고 칭찬해 주셨던 원고이긴 하다. <마음 빨래>를 출간하고 나서 그 원고를 남몰래 계속 생각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
작은 손바닥만 한 수첩을 매일 같이 들고 다녔다. 지하철을 타면서, 또는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늘 어김없이 그 공책을 펼치며 생각 나는 아이디어를 이어나갔다. 이것저것 하는 일이 잡다하다 보니 한 자리에 앉아서 엉덩이를 무겁고 진득하게 앉아 있기 어렵다. 그래서 늘 짬 날 때마다 수첩을 열어 생각을 쥐어짰다. 그러다가 그림책 글쓰기 합평 수업(원데이 클래스)에도 몇 번을 참여하여, 내 글에 대한 평가를 듣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수업 또한 2프로 부족했다. 심지어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이, 그 원고는 놔두고 다른 원고를 써 보는 것이 어떻냐는 피드백을 받았다.
정말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인데, 여기서 잠시 포기해야 하나? 살짝 우울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는 꼭 이 문제를 풀어 보리라. 이렇게 금방 포기해 버리면, 다른 원고에서도 막혀 버리면 또 포기할 테니까. <마음 빨래>를 해 봐서 안다. 몇 개월 동안 막혀 있던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해내지 않았던가? 가끔은 이런 나의 이상주의 적인 사고, 초긍정적인 사고가 융통성이 없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왠지 아직은 포기하기 이른 것 같았다.
그렇게 혼자 끙끙 앓던 사이, 얼마 전에 편집장님께 연락이 왔다.
작가님~ 혹시 다음 작품 있으시면 한번 보여주실 수 있어요?
헉. 내가 다음 작품 고민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나중에 알았지만, 편집장님이랑 그림책 선생님이 도서전에서 만나셔서 “남개미 작가, 원고 더 있을 텐데?”라고 스포를 흘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뭐 어찌 되었든 그 덕분에 나는 편집장님께 한번 찾아뵙겠다고 하고 약속 시간을 정했다. 사람들은 내가 매우 계획적인 J라고 생각하지만 매우 P인 인간이다. 만날 날짜가 다가와서야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완성되지 않고 그림책의 기획 의도와 줄거리, 그리고 반 정도 채운 스토리를 가지고 출판사로 향했다.
몇 달 만에 다시 찾은 출판사인가. 이상하게 올 때마다 떨린다. 그리고 첫 그림책을 내고 나면 끝인 줄 알았다. 그 끝이라는 말이, 두 번째 그림책은 뚝딱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 왜냐? 한번 해 봤으니까. 그러나 전혀 아니었다. 어째 나는 다시 첫 그림책을 내기 전의 나로 돌아가있었다. 원고는 전혀 나아가지 못하고, 그림도 잘 그리지 못한 상태. 어쩌면 그때보다 더 위축된 것만 같았다. <마음 빨래>를 투고했을 때에도 완벽한 상태가 아닌 데도 투고를 했다고 선생님한테 혼이 났었는데, 또 이렇게 불완전한 상태의 원고를 가져간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작가님~ 잘 지내셨죠~?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마음 빨래>의 초등학교 활동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달에 있을 오프라인 북토크에 대한 일정도 조율했다. 그 후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나는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나의 원고를 꺼내서 건넸다. 약 1분 정도 침묵의 시간.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다 읽으신 것 같아서 일단 내가 쓰고 싶은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한참을 들으신 편집장님.
작가님, 콘셉트 정말 좋아요.
라고 미소를 지어주셨다. 물론 늘 당근 뒤에는 채찍이 오기 마련이다. 왜 이 부분에서 원고가 막혀있는지, 편집장님의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나는 그 순간, 몇 달 동안 막혀있던 변기(죄송합니다)가 한 번에 뻥! 하고 뚫리는 경험을 했다. 이래서 혼자 고민하면 안 되는 것이고, 한 사람한테만 물어봐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작업을 1년 넘게 하신 편집장님은 아무래도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나의 작업 형태나 뇌 구조에 대해서도 잘 아시기에 가능한 피드백이었다.
혼자 글을 쓰다 보면 어떤 하나에 꽂혀서 다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나는 그렇게 몇 달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냥 한 발짝만 옆으로 서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을, 그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보일 때까지 꼿꼿하게 서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막혀 있던 부분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왜 막혀있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막혔던 부분을 뚫었으니까, 시원하게 물을 내려주면 될 것 같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 때문인지 나는 용기를 한 번 더 내 보았다.
사실… 몇 년 전에 제가 혼자 만든 그림책이 하나 있는데요…
하면서 아주 아주 허접한 더미북을 하나 건넸다. 이 더미북은 내가 이모티콘을 그리기 시작할 때, 그림책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만들어 본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은 하나의 재미난 이미지를 시작으로 그려낸 그림책이다. 그림이 얼마나 허접했는지, 내놓기도 부끄러웠지만 왠지 편집장님의 의견이 궁금했다. 왜냐하면 이 책도 언젠가 디벨롭시켜서 세상에 내놓고 싶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은 원고도 없었고 글도 없는 그림책이라 조금 더 설명을 덧붙였다. 나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더니, 편집장님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흥미로워하셨다. 분명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인트가 있다고 하시면서, 몇 군데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과 좀 더 고민해야 할 부분 등을 일러 주셨다. 그러면서 나보고 그림을 더 배울 것이 아니라 서사적인 글쓰기를 아동 문학이 아닌 소설 등으로 한번 수업을 들어보라는 조언을 주셨다. 내가 이야기를 떠올릴 때 원고부터 쫙 쓰는 것이 아니라 한 장 한 장의 이미지부터 떠오르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미지로는 이야기를 쓰는 것은 비교적 쉬운데 그 이미지에 원고를 입혀서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 자꾸 그림으로 표현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뭉텅이 뭉텅이로 이야기가 나열되어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조금 더 서사적인 글쓰기를 하면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는 이야기에 매우 공감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두 원고 모두 콘셉트가 좋고 재미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언제든 막히면 수다 떤다 생각하고 오라고 하시는데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나 같은 초자 작가는 늘 외롭다. 누구랑 내 원고를 고민할 사람이 없다. 그나마 나의 가장 큰 조력자는 나의 딸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의 이 부끄러운 글을 보여줄 친구도 없고, 곁에 선생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다가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감사하게도 나를 좋게 봐주시는 편집장님이 계셔서, 마음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같다. 물론 자주 연락 드릴 수는 없겠지만, 혹시나 또 막히거나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싶을 때 편집장님을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 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열심히 글공부를 하고 만족할 만한 원고를 가지고 다시 오겠다고 그 자리에서 공표를 하고 출판사를 나왔다. 금요일 오후, 길 막히는 올림픽 대로 한복판에서 차 안에서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그림책을 내고 싶은 걸까. 쉽게 하지도 못하는 일을 왜 자꾸 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는 그림도 수려하고 기발하면서도 깊이 있는 그림책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들어설 자리가 있나 싶기도 하다. 나의 첫 그림책 <마음 빨래>도 꾸역꾸역 힘들게 1년 넘게 걸려서 만들었는데, 두 번째 책도 왠지 그럴 것 같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나는 계속 생각했다. 두 번째 그림책을 내고 싶은 이유가 무엇일까. 아직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 그 메시지를 글과 그림으로 전하고 싶다. 다시 시작이다. 나는 원래 오래 걸리는 사람이니까. 뚝딱 그림책을 내는 작가도 있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니까. 나만의 속도로 사골국 끓이듯, 천천히 푹 끓여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