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며칠 후면 우리 가족은 로마로 떠난다. 7박 8일 동안 로마에서 지낼 곳은 콜로세오 근처의 에어비앤비로 결정했었다. 예전에 후쿠오카 여행 시, 에어비앤비를 처음 사용했을 때 좋았던 기억 때문에 일단 숙소를 알아볼 때 에어비앤비로 찾아보았다. 특히 유럽의 경우 2인실이 많다 보니, 4인 가족이 호텔을 예약하려면 방 2개를 해야 한다는 후기를 많이 보았다. 어차피 우리는 요리도 조금 해 먹을 생각으로 호텔보다는 에어비앤비를 선호했다. 가격대로 먼저 필터링을 설정 후 꼼꼼하게 후기를 찾아보았다. 사람마다 숙소를 정하는 기준은 다르겠지만, 일단 나는 후기를 우선한다. 너무 역과도 멀지 않아야 하고 안전한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중 후기가 많은 한 호스트의 에어비앤비가 눈에 들어왔다. 역과 가깝고 콜로세오와 5분 거리이고 주변에 마트가 있다. 무엇보다 호스트가 친절하다. 그리고 4인 가족의 후기가 많아서 나는 마음이 기울었다. 무엇보다 ‘다리오’라는 호스트가 후기에 남겨 놓은 글들도 진정성이 느껴졌기에 좋았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한국인 후기가 많지 않다는 점. 가끔 외국인들이 쓴 후기를 믿으면 안 된다, 그들은 우리와 사고, 가치관이 다르다는 글을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기준에서). 그래서 결국 나는 친절한 ‘다리오’가 운영하는 에어비앤비로 예약을 했다.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다리오’와 한국어를 사용하는 나는 에어비앤비 어플 내에서도 자동 번역 기능을 통해 어려움 없이 소통하고 지냈다. 체크인 시 유의사항부터 시작하여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방법, 체크아웃 후 일정 등에 대해 그는 친절하게 (조금은 번역 기능으로 인해 어색하게) 답변해 주었다. 만나기도 전인데 이미 몇 달 전부터 문의를 주고받아서 그런지, 왠지 만나면 그 누구보다도 반가울 것만 같다. 그렇게 숙소가 정해진 후 가서 해 먹을 음식부터 시작해서 옷가지 등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20대 때 유럽 갔을 때, 내 기억에 라면과 햇반 등으로 간단히 한식을 먹은 기억이 1번밖에 없다. 그때는 삼시세끼 빵과 파스타 등 밀가루를 먹어도 괜찮았나 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20대가 아니라 그런지, 쌀밥 없이는 이틀 정도는 견뎌고 그 이상은 힘들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다시 폭풍 검색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햇반을 가져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미니 밥솥을 가져가더라. 처음에는 나도 햇반을 가져갈 생각이었는데, 4인 가족이 몇 끼만 같이 먹어도 햇반의 개수가 어마어마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또 폭풍 검색을 했다. 그러다 신박한 것을 찾았다!
바로 전자레인지로 밥을 한다는 즉석밥 제조기였다. 나는 일단 전자레인지가 있는지 다시 ‘다리오’에게 확인했다. 다행히 전자레인지가 있다고 한다. 나는 바로 이 제품을 구매했다. 생각보다 가볍고 작았다. 가기 전에 한 번 밥은 해 먹어 봐야지, 가서 안되면 난감하니까 곧바로 밥을 만들어 보았다. 생각보다 쉬웠다. 쌀을 20분 정도 미리 불린 후, 내통에 쌀을 넣고 물도 밥솥에서 하는 양만큼 넣는다. 그리고 뚜껑을 닫은 후 전자레인지로 12분 정도 돌린다. 처음에는 12분 돌려 보니 살짝 덜 익은 느낌이 나서 15분 정도 돌려 보았다. 아마 전자레인지 출력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그렇게 전자레인지로 만들어진 밥을 몇 번 먹어본 결과 맛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쌀밥 없이 못 사는 나에게 이것만큼 감사한 제품이 없었다. 한 끼 정도의 쌀만 챙기고 나머지는 마트 가서 비슷한 쌀을 구매하면 된다고 한다. 물론 한국쌀과 똑같은 쌀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씹히기만 하면 된다. (ㅎㅎㅎ) 그렇게 나의 주식을 해결한 후 이제 가서 해 먹을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선 제일 만만한 김부터 시작해서 스팸, 그리고 마른미역, 다시다, 주먹밥 재료, 건조식 국, 그리고 라면 등. 마치 전투식량 수준이다. 처음에는 여행 가서 요리를 한다는 것이 싫었다. 주부라면 당연한 일이다. 왜 주부들이 호캉스를 좋아하는가. 밥 하기 싫어서이다. 누군가 해주는 아침밥을 먹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나도 여행 갈 때 요리를 최대한 안 하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로마에 가서까지 요리를 할 생각을 하니 싫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그 나라의 마트에 가서 매일 요리를 해 먹는 경험. 그 나라의 식재료를 보고 맛볼 수 있는 경험.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물론 나의 요리 실력은 바닥이지만) 가서 해 먹어 보려고 한다.
짐을 줄이려고 생각하면서 짐을 쌌지만, 4명의 각 캐리어에 반이 요리와 관련된 짐이다. 그래도 이것들은 올 때 다 배 속에 들어가 있을 테니 텅텅 비어 있을 것이다. 다행히 로마가 아직은 낮에 덥다 하여 옷은 그리 두껍지 않을 것 같다. 에어비앤비에 세탁기와 건조기 둘 다 있다고 하니 옷도 조금 가져가서 돌려 입으려 한다. 그렇게 우리 4명의 캐리어는 차곡차곡 짐이 들어가고 있다.
여행 관련 카페에 매일 들어가서 정보를 수집하면서 여전히 불안하다. 이탈리아는 파업이 많은지, ‘오늘 또 기차 파업했다’는 소식이 종종 들린다. 하루는 피렌체로 넘어가야 하는 우리는 무사히 피렌체로 넘어갔다가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을까. 소매치기가 많다 하여 걱정을 하는 글에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니까, 아이만 잘 챙기세요’라는 글에 웃게 되기도 한다. 그래, 뭘 잃어버리든 우리 가족의 안위만 잘 챙기자. 만약 잃어버리는 것이 생기더라도 남은 여행을 망치지는 말자. 스스로 정신교육 중이다.
이제는 저 무거운 캐리어 4개를 끌고 무사히 로마에 도착하는 일만 남았다. 친정아버지는 나의 짐을 보더니, “그렇게 해 먹을 거면 왜 로마를 가냐. 그냥 한국에서 그 돈으로 신나게 먹으면 되겠구먼.”이라고 하셨다.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원래 맛집을 찾아다닐 정도의 미식가가 아니다. 그리고 먹는 것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이탈리아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생각이 그다지 없다. 뭐, 로마의 피자나 파스타, 한 번 정도 먹어보면 충분하지 않나? 다만 밀가루만 먹고살 수 없는 나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를 가고 싶은 것이다.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보러 가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이 생각하고 오고 싶다. 무사히 우리 가족 첫 유럽여행, 로마에 다녀오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