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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Oct 07. 2024

꿈에 그리던 로마에서 그림 그리기

4탄. 반드시 곧, 다시 그림 그리러 올게!

나, 잠깐만
앞에 카페에
1시간만 있다가
와도 될까?


 로마 여행의 둘째 날. 우리는 아침부터 힘든 투어 일정을 끝내고 점심을 배 불리 먹고 숙소에 들어와서 모두가 누워서 쉬고 있을 때, 용기 내어 말을 꺼냈다. 물론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지만, 단체 여행 중 단독 행동은 허락을 받아야 마음이 편하다. 다행히 가족 모두가 오전에 2만보를 걷고 온 탓에 쓰러져 누워 있었고 그 누구도 나를 따라온다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준비해 간 모든 미술 도구와 재료를 들고 숙소를 나섰다. 마치 또 다른 나만의 작은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설레었다.


 첫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동네를 한 바퀴 돌 때, 나는 근처 카페를 남몰래 탐색했다.


‘그림 그리기에 좋은 카페, 어디 없을까?’


 다행히 숙소 근처에는 몇 군데의 노천카페가 있어서 그중에 그나마 그림을 이쁘게 그릴 수 있는 한 카페를 마음속으로 찜콩 해두었다. 그래서 나만의 시간이 생기자마자 1초의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뛰쳐나갈 수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마치 1시간 내에 미션을 클리어해야만 하는 것처럼 나의 마음은 급했다.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이탈리아인이 절대 마시지 않는다는 아이스 카페라테를 시켰다.

 여기서 잠깐! 이탈리아인들은 절대 커피를 아이스로 마시지 않는다. 심지어 대부분 에스프레소 샷으로 먹거나 오전에는 카푸치노를 먹는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얼죽아로 사는 나로서는 아이스커피가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절실했다.

One ice latte,
please.


  이탈리아는 그래도 식당이나 가게에서는 영어가 대체적으로 잘 통했다. 20년 전에 유럽에 갔을 때, 특히 프랑스에서는 영어조차 통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어떤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만 아이스커피를 잘 먹지 않는 이탈리아라서 그런지, 아이스 카페라테의 맛은… 사실 조금 밍밍했다. 아마 아이스커피를 잘 마시지 않아서일 것이라고 추측해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에서 마시는 첫 아이스 카페라테는 나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다만 이때 마신 아이스 카페라테가 로마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스커피였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마자 나는 가방에서 주섬 주섬 공책과 연필을 먼저 꺼냈다. 그림 그리기 딱 좋은 시각이었던 것이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조금씩 하늘색이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천카페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조금 마음이 급했다. 그림을 다 그리기 전에 가족에게서 연락이 오면 어쩌지? 나는 그림을 다 완성하고 가고 싶은데? 빨리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라는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늘 그렇듯, 연필을 들고 흰 도화지에 곧은 선을 긋기 시작하자 내 마음속의 불안은 싸악 내려앉고 마음에는 평온이 찾아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내가 나로서 살 수 있는 시간.

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시간.


 그렇게 간단히 스케치를 마친 후, 나는 이번 여행을 위해 새로 산 팔레트를 꺼내며 심호흡을 했다. 로마에 맞는 색만 딱 들어있는 팔레트. 이 팔레트를 쓰는 순간이 왔다는 것에 혼자 감동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누가 보면 뭐 대단한 팔레트도 아닌데 왜 호들갑이냐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휴대폰을 확인했다. 다행히 가족으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었음을 확인하고 이내 그림 그리기에 집중해 보았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노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지나갔다. 사실 그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며칠 로마에 있어보니 로마는 정말 예술가의 거리였다. 워낙 유명한 예술가들이 탄생한 이탈리아이기도 하고 르네상스도 이곳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런지 길거리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 노래 부르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람들과 그냥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매우 그러한 문화를 즐기는 듯 보였다. 길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과 서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림도 잘 사주는 분위기였고 길거리에서 노래를 하는, 일명 버스킹 문화도 매우 우호적이었다. 노래가 좋으면 지나가는 사람들도 막 함께 춤을 추며 즐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Wow!
Good!!

 지나가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엄지척을 하며 웃으며 지나갔다. 나는 그에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인들이 생각보다 매우 친절하다는 것을 1주일 로마에 있으면서 느꼈다. 레스토랑에서 만난 분들도 대부분 외국인인 우리들에게 매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고, 아이들이랑 다니다 보니 아이들에게도 가볍게 말을 걸어 주기도 했다. 사실 이탈리아에 오기 전에 동양인을 차별하는 경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내심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다행히 차별을 느끼지 못할 만큼 모두가 Nice했다.

 내가 자리를 잡은 곳은 사실 6차선 정도의 대로변이었다. 5시가 넘어가자 점점 차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내가 그리려고 한 뷰는 대로변 너머의 대성당이었다. 하지만 차가 점점 많아지면서 나의 시야를 조금씩 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에 더 집중해야만 했다. 이탈리아는 워낙 관광인구도 많고 길 자체도 개발을 하지 않아서인지 다 좁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은 우리나라처럼 교통 체증이 엄청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대로변에 쌩쌩 달리던 차가 늘어나더니, 5시가 넘자 도로가 꽉 막히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그 누구에도 연락이 안 와 있음을 확인하고 그림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아이스커피 말고 따뜻한 커피를 시킬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9월 중순의 로마는 낮에는 햇살이 엄청 뜨겁고 더워서 사람들이 나시티를 입고 다니는 반면, 아침저녁은 가을바람이 불어서 조금 쌀쌀했다. 물론 겉옷을 챙겨서 나왔지만 아이스커피를 마시다 보니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마무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5시 반경, 나는 그림 마무리를 하고 주섬 주섬 다시 짐을 쌌다. 로마 둘째 날, 처음으로 카페에 혼자 간 것이었는데 이것이 혼자 카페를 간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이었다. 나중에는 이렇게 자유시간이 생겨도 밖에 나갈 힘조차 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은 아직 나에게 체력과 여유가 있었나 보다. 사진만 찍어두고 나중에 한국에 가서 천천히 그려야지,라고 점점 나태해졌다.


 다 마신 커피잔을 다시 카운터에 가져갔더니, 아까 나에게 커피를 내준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말을 걸었다.

Finish?

 사실 그녀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잠시 내 뒤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한참 피우고 있었다. 로마에 가서 가장 놀랐던 것이 바로 ‘담배 문화’이다. 우리나라는 어느 순간부터 길거리에서도 흡연할 수 있는 장소가 따로 마련되었고 실내에서는 거의 담배를 피울 수 없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매우 안 좋게 보는 문화가 생긴 것 같다. 그렇게 살다가 갑자기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고, 걸으면서도 피고, 심지어 어린아이들과 밥을 먹는데 아기 엄마가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적잖게 놀랐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3년 동안 경험하는 간접흡연을, 로마에서의 1주일에 다 하고 온 것 같았다. 여하튼 내가 그림을 그릴 때도 그녀는 잠시 쉬면서 내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마 그때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있었나 보다. 나는 그녀에게 끝났다고 말하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말하고 카페를 나섰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말이다.)

 1주일 동안의 로마여행 중,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1시간이었다. 다행히 숙소로 돌아가니 가족은 모두 아직도 다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사실 나도 아직 시차적응도 하지 못했고 다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했지만, 1시간 반 나만의 시간을 갖고 온 후 피로가 싹 씻겨진 것 같았다. 사실 이 카페를 나올 때만 해도 매일 이렇게 가족들이 쉬는 시간에 나와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참 아쉬운 것 중 하나이다. 그래도 로마에 가서 그림 하나는 그렸다!라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길에서 자유롭게 자신 만의 그림을 그리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작가들을 보며 나는 또다시 작은 꿈이 생겼다. 50대에 반드시 다시 이탈리아에 와서 이탈리아 작가분들과 함께, 그들의 옆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꿈. 한 장의 그림을 팔지 못할지라도 좋다. 그들과 함께 같은 공기를 마시며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내가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에게 ‘다시 올게’라고 말했던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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