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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Dec 11. 2023

산타는 이제 오지 않는다

동심 파괴한 미운 남편

땡 땡 땡 땡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크리스마스날 새벽에 눈을 떴는데 분명 산타할아버지가 탄 썰매를 끄는 종소리를. 그때부터 였을까? 나는 산타가 있다고 믿었다. 그게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일이다. (그냥 환청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정말 어디선가 종을 치고 있었던 것일까?)

크리스마스날 아침 눈을 뜨면 항상 선물이 있었다. 항상 동생과 같이 잤기 때문에 눈을 뜨면 각자의 머리 맡에 선물이 놓여 있었다. 먼저 일어난 사람이 다른 한사람을 깨우고 우리는 조잘거리며, 이쁜 포장지를 뜯으며 어떤 선물일까, 산타 할아버지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고 갔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매년 선물을 뜯었다. 그렇게 내가 기억하는 한,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는 산타가 있다고 믿었고, 산타가 나에게 매년 선물을 줬다고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 동안 부모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성인이 된 후 나처럼 자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어릴 적 기억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일까?

나는 아이들에게 매년 내가 산타가 되어 선물을 줬다. 그게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큰 즐거움이고 기쁨인지 알기 때문이다. 비록 외국 영화에 나온 것 처럼 수 많은 선물 꾸러미를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평소 아이들이 갖고 싶어하는 선물을 미리 사서 포장을 하고 아이들이 잠들면 트리 밑에 놓았다. 매년 크리스마스 날 만큼은 아이들이 일찍 일어났고 선물을 뜯으며 설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했다. 그리고 얼마전부터인가는 아이들이 산타에게 카드를 썼고, 남편이 대신 산타가 되어 영어로(ㅎㅎㅎ) 답장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그것 또한 즐거운 이벤트 중 하나였다. 어쩌면 산타가 빙의된 내가더 즐거워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엄마, 친구들이 그러는데 산타는 없대! 엄마 아빠가 산타래!


나때보다 (라떼는 말이야~) 요즘 아이들은 무엇이든 빠르긴하다. 유치원생끼리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있는가 하면, 우리 때보다 성교육도 훨씬 빠르게 이루어진다. 그래서인지 산타에 대한 동심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지금까지 아이들이 그렇게 말해도, “무슨 소리야~ 걔네들은 산타한테 진짜 선물을 못받아 봐서 그래!”라고 말했으며, 감사하게도(?) 그 말을 믿어 주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즉 큰아이 5학년, 작은 아이 3학년까지 잘 버텨왔다.


그래서 올해도 그렇게 무난하게 잘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심지어 작은 아이가 산타할아버지에게 이번에는 자기가 선물을 준다며, 큰 캔버스에 산타할아버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줄 생각을 한 작은 아이가 기특했던건 잠시. 나는 저 큰 캔버스를 어디에 갖다 둬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차에 갖다 둘까? 아니야, 트렁크가 훤히 보이는데? 그럼 저 창고 구석에 넣어둘까? 아니야, 그러다가 찾으면 어떡해. 그런데 여기서 더 웃긴 것은 큰 아이의 말이다.

야, 산타가 짐이 얼마나 많은데 니 그림 못가져갈걸?

이라고 말하며 나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솔직히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산타를 믿기는 어려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맙게도 동생의 동심을 파괴하지 않고 배려해주는 모습이 고마웠다.

안돼~~ 꼬옥 산타할아버지한테 내 선물 가져가라고 크으으으게 적어둘거야!

허걱…그렇게 풀리지 않은 숙제를 가지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 진짜 아빠는 산타 아니지? 아빠가 산타야? 맞아? 아니야?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작은 아이가 아빠 옆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묻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 이야기를 나는 일을 하느라 듣지 못했는데… 조금 이따 우는 목소리가 들린다.


으아아앙 으아아아앙


무슨 일인가 싶어 밖에 나가보니 작은 아이가 일기를 쓰며 울고 있는 것이다. 왜 우냐고 물어봤다. 그 때만해도 산타 때문에 울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빠가 산타래…엉엉 어떻게 그럴 수 있어…엉엉 매년 나한테 편지를 쓴 사람이 산타가 아니래…엉엉


아… 이렇게 동심 파괴자, 남편이 미울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그냥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산타가 없다는 말을 직접 부모가 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데 말이다. 산타로부터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남편은 아이들에게 산타라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랐던 것이다. 그렇게 동심을 파괴하다니…! 내가 얼마나 어렵게 지켜낸 동심인데! 일단은 우는 작은 아이를 토닥여주었다.


산타는 있어~ 있지만~ 너무 바쁘셔서 엄마 아빠가 대신 줬어. 산타는 정말 있었던 사람이야~


그러나 그 말이 들릴 리가 없다. 나는 아이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산타에게 매년 선물을 받으며, 너무나 감사해했고 작년에는 산타할아버지 배가 고플거라고며 쿠키도 손수 포장해서 두었던 아이다. 그리고 열심히 산타할아버지께 카드를 적었고 올해는 심지어 며칠에 걸쳐 캔버스에 산타할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렸던 아이이다. 그런 아이의 동심을 내 허락없이(!) 어떻게 파괴할 수 있지… 여전히 화가 난다. 일단 아이를 진정시킨 후, 다시 차근 차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아이는 진정된 후, 그동안 선물을 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해주었다. 아이를 안아주면서 문득 풀지 않아도 될 숙제가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 안도하였다.

그렇게 2023년 12월, 큰 아이 5학년 작은 아이 3학년때. 슬프게도 산타는 우리 집에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이제 아이들은 현실을 받아 들였는지, 선물을 받지 못하는 것에 아쉬워한다. 그러나 제일 아쉬운 것은 그동안 산타를 자청했던 나 자신이다. 그래서 비록 우리 집에 산타는 오지 않지만, 내가 내 사비(?)로 아이들, 그리고 올해는 남편에게도 감짝 선물을 줄까 계획 중이다. 어쩌면 선물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말처럼, 산타였던 내가 그동안 그 누구보다 더 행복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맘편히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비해서 줄 수 있게 되어, 또 새로운 하나의 이벤트가 생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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