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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Dec 18. 2023

초짜 작가의 일러스트 페어 준비기

소비자에서 생산자 마인드로 바뀌기

 올해 3월의 일이다. 이모티콘을 만드는 온라인 모임에서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가, 일러스트 페어에 같이 나가자는 제안을 해 주었다. 그 친구 말고도 귀여운 그림을 그리는 동생과 함께 3명이서 함께 참가해 보자는 것이었다.

 늘 페어에 구경을 가서 돈만 쓰다 와봤지, 단 한 번도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을 거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 가끔 페어에 나가는 지인이 있는데, 매번 응원하러 갔고 이쁜 굿즈를 사기 바빴다. 하지만 궁금했다.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의 입장에 서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2명의 친구들과 함께 급히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평소에 갈망하던 일도 아닌데, 사람은 간사한지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고 간절히 기도랬다. 꼭 일러스트 페어에 나가게 해 주세요...!


 그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진 후 기쁨을 만끽한 것도 잠시, 부스 크기를 결정하고 3명이 함께할 이름을 정하고 대표 그림을 그리고... 각자 모두 지역도 다르고 본업도 다른 3명이 이것저것 통일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셋은 토닥토닥할 일없이 각자 잘하는 분야를 즐겁게 잘 쳐냈고(?)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이제는 페어 준비에 돌입했다.


 나는 지금껏 내가 그린 그림들로 만들어 본 것이 고작 스티커, 그리고 내가 사용하려고 만든 에코백, 달력 정도였다. 아무리 한 부스를 3명이 채운다 해도 어느 정도 볼륨이 있어야 하는데, 일단 그걸 채워야 한다는 고민이 생겼다. 이제는 지인에게 나눠주기 용도가 아닌, 제 값을 받고 팔아야 하는데 퀄리티가 나쁘면 안 된다! 먼저 여기저기 샘플용으로 주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나마 손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나는 그림 전공자도 아니고 컴퓨터 활용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어서 내가 주문하기 쉬운 사이트들을 찾기 시작했다. 사실 그런 경우 단가가 조금 비싸긴 하다. 아마 전문가들은 절대로 그 가격에 주문하지 않을 것이다. 단가를 조금이라도 낮춰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일단 그 기술을 배울 시간도 돈도 없기 때문에 내가 하기 편한 것, 그리고 퀄리티가 나쁘지 않은 곳을 먼저 찾아 주문을 하나 둘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이모티콘을 만든다고 그려 놓았던 아이들이 참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2022년 미친 듯이 한 달에 1,2개의 이모티콘을 만들어냈던 적이 있다. 물론 카카오는 늘 낙방을 했지만 네이버 오지큐에서는 넓은 아량으로 늘 승인을 내주어서, 현재 20여 개의 네이버 오지큐를 판매하고 있다. 그 아이들 중 내가 좋아하는 낭만소녀 시리즈로 이것저것 굿즈를 만드니 너무 찰떡인 것이 아닌가! (너무 자아도취 중...ㅎㅎㅎ)


 가능하면 콘셉트에 맞게 이것저것 만들어 보았다. 남녀노소 누구나 다 좋아하는 토끼를 위주로 만들어 보았고 색감도 가능하면 낭만소녀의 메인 컬러 위주로 구성해 보았다. 가장 난이도가 있는 스티커(왜냐하면 칼선을 따야 금액이 낮아지는데, 칼선 따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나에게...)를 제외하고는 만들기 어렵지 않고, 또한 요즘은 아이들도 키링을 좋아해서 그런지 딸 친구들이나 지인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여러 그림 중 키링으로 만들어보고 딸 친구들에게 선심 쓰듯 나누어 주면서 어떤 디자인이 인기인지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크기도 '이건 좀 작네?' '이건 좀 너무 크다'라는 것을 느끼면서 하나 둘 맞춰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물론 남는 것 없이 내 돈을 그냥 기약 없이 쓰고 있다는 단점도 있지만, 먼 미래를 보고 투자를 한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링만 해서는 구색을 맞추기 어려우니 더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내 그림 중 엽서로 하면 이쁠 것 같은 아이들을 골라 주문해 보았다. 그리고 페어에 같이 나가는 친구가 마침 사는 지역에서 마켓을 연다고 해서, 나의 엽서를 그쪽에서 먼저 팔아볼 수 있었다.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았고 지금까지 몇 장 팔리고 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일기 메이트님이 소개해준 사이트에서 볼펜도 만들어 보았다. 생각보다 볼펜에 소량제작이라 그런지 단가가 너무너무 비쌌다. 내가 가지고 온 가격으로도 팔릴까, 싶을 정도의 가격이라. 볼펜을 어떻게 판매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지나가던 남편이 내 볼펜을 보고 막 써보았다.


"이거 얼마에 팔 거야?"

"음... 이게 내가 사 오는 가격이 이 정도인데... 혹시 이거 얼마면 살 것 같아?"

"음... 2000원?"

"(허걱)... 그럼 나 마이너스인데 ㅎㅎㅎ"

"근데 볼펜을 누가 그렇게 비싸게 주고 사~ 물론 써보니 너무 부드럽고 퀄리티는 좋은데... 나 같은 사람들은 그냥 볼펜은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라 받은 거 쓰는 거."


 그렇지... 정말 카카오프렌즈 같은 캐릭터 아니면 비싼 돈 주고 볼펜은 잘 사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그러나 고민하던 나에게 남편이 명쾌한 대답을 해 주었다.


너는 지금 유명한 작가도 아닌데, 뭘 남기려고 해.
너의 캐릭터를 사람들에게 더 각인시키고 기억하게 하고 더 사용하게 하는 게 지금 중요한데. 그냥 나눠줘도 부족한데, 뭘 남기려고 해.
너의 캐릭터가 여기저기 보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쓰이는 게 중요하지 지금은.


 맞다. 내가 지금 페어에 돈 벌려고 가는 것이 아닌데 왜 자꾸 욕심을 냈지. 하다 보니 자꾸 원가를 따지게 되고 판매가를 생각하느라 머리를 쥐어짰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모든 물건을 다 적자를 내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볼펜처럼 단가 맞추기 힘든 아이들은 그냥 마음을 조금 비우고 팔면 어때?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볼펜에 이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책갈피를 만들어 보았다. 이것도 종류가 많은데, 단가는 낮으니 최소 소량이 좀 커서 주문할 때 고민이 되었던 바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오래 두고도 사용할 수 있고 남으면 지인 선물로 나눠주면 된다는 생각에 바로 주문에 들어갔다. 하나 만들어보니 너무 좋아서 다른 스타일의 책갈피도 만들어 보았다. 자석으로 붙이는 책갈피, 얇은 재질의 책갈피, 그리고 리본을 단 살짝 두꺼운 책갈피. 이렇게 조금 구성이 다양하면 본인들의 취향에 맞게 구매하면 되니 선택의 폭이 넓어서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 외에도 냉장고나 요즘은 사무실 파티션 등에 붙이는 자석도 이것저것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 보았다. 이제 뭘 더 만들어야 할까 고민이다. 제일 어렵다는 스티커는 뒤로 미루고 있고 포스트잇이나 떡메를 해야 하나 고민인데, 사실 내가 잘 쓰지 않아서 그런지 자꾸 뒤로 미루게 된다. (혹시나 갖고 싶은 굿즈가 있으면 댓글 남겨주시면 도전해 보겠습니다.ㅎㅎㅎ)

 이렇게 하나 둘 나의 굿즈를 만들다 보니 낭만소녀가 더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부랴부랴 저작권 등록까지 마쳤다. 물론 뭐 나 같은 작가의 것이 그렇게까지 필요하겠냐만은. 뭔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이 생겨서 개인적으로는 더 애착이 생겼다.

 그렇게 이모티콘 만든다고 그려 놓았던 낭만소녀와 토끼 등의 캐릭터들이 이렇게 저작권 등록을 해서 출생신고를 하였고 또한 이제는 상품이 되어 또 많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다고 생각하니 괜히 떨린다. 올해 3월에 준비를 하면서 내년 2월 페어는 너무나 먼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제 정말 2달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는 그만 뿌리고(ㅎ) 상품가치가 있는 아이들을 주문해서 이쁘게 포장해서 새 주인을 만날 준비를 해 나가야겠다. 그리고 나 또한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의 입장에서 고객님들을 만날 생각에 떨리기도 하고 뿌듯하다. 내년의 나의 목표, 인스타 팔로워 4천을 위해! 너무 큰 욕심 내지 말고 팔로워 늘리는데 더 집중해서 페어 또한 잘 마무리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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