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연례행사, 바로 연말에 열리는 가족 워크숍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생소할 수 있지만, 하브루타를 하는 가족은 많이들 가족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가족 행사를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가족도 이렇게 가족 워크숍을 가진 지 벌써 몇 년 된 것 같다. 막내가 유치원생 때부터 했는데, 가끔 가족 워크숍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
아이가 어린데 언제부터 가능한가요?
그럼 나는 대답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나이라면 언제부터든 가능하다고. 어릴수록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오기 쉽다. 사실 유대인들도 하브루타식 교육을 갓난아기 때부터 한다. 갓난 어린아이에게 밥상머리에서 질문하고 대화하면서 어릴 때부터 그렇게 토론하는 문화가 몸에 장착되는 것이다. 사실 어려운 것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평생 가족끼리 이러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는 남편(또는 부인)을 가족 워크숍이라는 자리로 데리고 오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내가 그림책 하브루타로 함께 마음수영하는 메이트님들 이야기를 들어 보아도, 아이보다 남편을 동참시키기가 더 어렵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다행히 우리 집은 남편이 하브루타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아이들 또한 어릴 때부터 함께 해 왔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가족 워크숍이 이루어진다. 다만 아이들이 머리가 커갈수록 연말이 되니, 누구네 집은 해외여행을 가더라, 스키장에 가더라, 애버랜드에 가더라… 등등의 살짝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긴 한다. 워낙 사람 많은 곳을 가길 꺼려하는 엄마 아빠는 연말에 어디 가는 것을 더더욱 기피한다. 그래서 올해는 그러한 아이들의 귀여운 투정에 보답(?) 하기 위해, 우리 집 손 차장님이 큰 결심을 해서 킹크랩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킹크랩 먹고 어디 커피숍 가서 워크숍 하는 것은 어때? (카페 애호가 엄마의 마음의 소리)
그러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워크숍을 조용히 하고 싶다고 해서… 그래, 너네가 카페 맛을 아냐! 아쉽지만 여기서 타협을 보았다. 킹크랩을 먹어 본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 맛을 위해 킹크랩 가게로 향했다. 이렇게 비싼 킹크랩 가게 안은 손님으로 꽉 찼다.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우리처럼 1년에 1번 있을 거대한 가족 회식이 아닐까?라고 위로도 해 보았다.
자주 회식 등으로 늦게 오는 아빠가 부러웠던 아이들은 자기네들도 오늘 회식이라며 들뜬 마음으로 킹크랩을 기다렸다. 킹크랩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리고 아빠가 살을 발려서 각자 앞접시에 놔주자 약 1분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렇다. 킹크랩의 맛을 음미하려면 말을 하면 안 된다. 아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서울 촌년인 나도 말이 나오지 않고 조용히 킹크랩의 통통하고 부드러운 살을 입에 넣느라 바빴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아이들은 잊을 수 없는 맛이라며 극찬을 하며 나왔다. 마지막에 회식 자리에서 놓칠 수 없는 구호, 손 차장님의 선창 아래 우리는 외쳤다.
2024년, 파이팅!
우리 셋도 손 차장님 구호 아래 각자 사이다 잔을 들고 파이팅을 크게 외쳤다. 그렇게 생애 잊을 수 없는 식감을 입안에 머금고 카페에 갔으면 완벽했을 것을 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2차 워크숍을 열었다. 미리 만들어 놓은 각자의 드림보드를 펼쳐서 한 명씩 발표를 하고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다. 그전에 잠깐 자신의 2023년 드림보드를 보면서 셀프 칭찬과 반성을 하고 자신의 드림보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이게 뭐라고. 매일 만나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만큼은 나도 괜히 떨린다. 마치 회사에서 연말에 신년 계획을 세워 발표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은 고전 수업 시간에 만들어 놓은 드림보드를 조금 더 손봐서 발표를 했다. 정말 신기한 것이 매년 이렇게 하다 보면 아이들의 성장이 눈에 보인다. 작년과 또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깊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는 아이들. 그리고 내가 바라는 2024년의 나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 이렇게 1년 1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오롯이 보내면, 1년 후 아이들의 모습은 또 어떻게 변해있을지 기대가 된다.
어른인 남편이나 나에게도 참 의미 있는 시간이다. 아이들에게 나의 꿈을 이야기함으로써 응원을 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어른인 부모도 꿈을 위해 늘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실패를 하기도 하고 성공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분명 자신의 인생 또한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 것이라 믿는다. 요즘 아이들은 꿈도 없고 의지도 약하다고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환경을 이렇게 조금만 만들어준다면 아이들은 스펀지와 같은 존재라서 어른보다 훨씬 멋지게 무엇이든 해내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내일은 없어. 죽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는 사회만큼 위험한 사회는 없다고 한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밝은 미래를 꿈꾸며 나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미래를 꿈꿀 수 없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인생일 수가 없다.
매년 이렇게 드림보드를 적는다고 우리 가족 모두 아주 완벽한 한 해를 보내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가끔은 드림보드에 대한 존재를 잊고 그냥 막(?) 살다가 몇 개월 후 가족 하브루타 시간에 한번 펼쳐보면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그리고 연말이 다가오면서 드림보드를 펼쳐보고 갑자기 열심히 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이렇게 가족 워크숍을 여는 이유는 서로의 꿈을 인지한 후 응원하고 지지해 주고 위함이다. 그리고 남 앞에서 발표를 함으로써 더 책임감을 느끼며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인간으로서 성장을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가족 워크숍을 마치고 2024년 1월 1일 새해에 우리는 가까운 곳에 등산을 하러 갔다. 비록 아침해를 보고 싶다는 아들의 바람과는 달리, 새해가 다 뜨고야 등산에 임했지만 그래도 가족이 함께 새해에 산에 올랐다. 눈이 전날 많이 와서 산이 미끄럽다는 생각을 1도 하지 못한 우리 가족. 바로 등산 초보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아이젠 없이는 올라가기 위험해요.'라는 말을 우리에게 해주었다. 아이젠 하나로 아이들 발에 한 짝씩 껴주고 우리 부부는 지팡이를 하나씩 나눠 가지며 얼어있는 등산로는 조심조심 서로 챙겨주며 올라갔다. 남들이 보기에는 위험한 등산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서로 부족함을 채워주며 서로 의지하며 등산을 했다는 것에 뿌듯했다.
우리 가족은 1+1+1+1=4가 아니라 0.25+0.25+0.25+0.25=1, 넷이 함께 있어야 겨우 1인분을 하지!
늘 이런 말을 했었는데, 이번 등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정상까지는 못 가고 내려왔지만 내려와서도 우리는 등산객이라면 다 가는 파전집에 가서 녹두전과 곤드레밥, 도토리묵을 거하게 먹으며 어제에 이어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향했다. 주변에 보면 연말에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거나, 호캉스를 가곤 하던데 우리 가족은 남들처럼 여행은 가지 못했지만 비싼 킹크랩을 먹고 가족 워크숍을 하고 새해에 등산을 하며 누구보다 뜻깊은 2023년과 2024년의 경계를 보냈다. 남편은 조금 미안했는지, 내년에는 좋은 데 가자며 나에게 슬쩍 말했다. 하지만 사람 많은데 가면 기 빨리는 나는 이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등산을 하며 한발 한발 내딛으며 나는 나의 드림보드에 적은 것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왠지 올해는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왜냐하면 나의 꿈을 응원해 주는 가족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함께 성장해 가는 가족들이 있으니까. 우리 가족 2024년, 소망하는 일 모두 이룰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