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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Jan 15. 2024

나 좀 들여보내 주세요!

전지적 강아지 시점

생애 첫 외출이었다. 주인은 새벽부터 나를 깨우더니 큰 가방 하나와 나를 안고 집을 나섰다. 문을 열고 나를 의자에 앉히더니 갑자기 덜컹거리기 시작한다. 달달달… 의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나는 겁이 나서 주인 옆에 바짝 붙었다. 무슨 의자가 이렇게 덜컹덜컹거리는지… 창문이 있길래 고개를 내밀었다. 몇몇 사람들이 보이고 건물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풍경도 자주 바뀌며 막 움직였다. 세상이 왜 이렇게 빨리 움직이지? 무슨 일이 일어났나? 잠시 생각하던 찰나, 흔들림이 멈추었다. 바깥 풍경도 함께 멈추었다. 주인은 분주하게 짐을 챙기더니 나를 번쩍 안고는 문을 열고 걸어 나갔다.


미안, 내가 늦었지!

어디서 맡아본 냄새이다. 그리고 낯익은 목소리. 그렇다. 우리 집에 몇 번 놀러 온 그녀였다. 그녀는 우리 집에 놀러 와서는 주인이랑 같이 커피 마시고 수다 떨다가 나한테 간식도 주고 놀아줬던 사람이다. 주인은 그녀와 무슨 말을 심각하게 하고는 그녀에게 나를 넘기고는 저 멀리 떠나 버렸다. 그제야 알았다. 요 며칠 동안 나에게 잔소리를 했던 이유를.

호두야~ 가서 아무 데나 오줌 싸면 안 돼~
호두야~ 거기 애기들 물면 안 되는 거 알지~

그랬구나. 그녀의 집에 나를 두려고 요 며칠 그렇게 잔소리를 했던 거구나. 그래, 그렇게 주인이 원한다면야. 까짓것! 해볼게! 나의 첫 외출이니, 아주 멋지게 해내볼게!

처음 도착한 그녀의 집은 내가 살던 곳보다 넓어서 뛸만하다. 내가 제일 잘하는 달리기! 시속 100킬로로 도망쳐 다니기 아주 넓은 운동장이 있다. 주인집에는 여자 아이 한 명만 있었는데, 이 집은 딱 봐도 나를 귀찮게 하는 아이들이 있어 보인다. 난 낮잠 자는 것을 좋아하는데, 왠지 나의 낮잠을 방해할 것 같은 비주얼이다. 일단 두고 보겠음! 마음에 안 들면 내가 얼마나 무서운 이빨을 가졌는지, 보여줄 테다!

나는 먼저 나의 자리를 정해보았다. 그래, 바로 이 느낌이지. 난 시원하고 미끌한 이 느낌을 사랑해. 아주 높이도 적당하고 내 맘에 쏙 드네!

여기가 내 자리지?

라고 그녀에게 물었더니, “벌써 호두 자리 잡았구나~”라고 좋아해 줬다. 그래, 역시 여기가 나를 위한 자리였군. 새벽부터 정신없이 움직여서 그런지, 잠이 오기 시작했다. 잠깐 시끄러웠던 아이들이 하나 둘 나가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그녀도 옆에서 뭘 그렇게 하는지 모르지만 뭔가를 그리느라 여념이 없다. 나는 자리가 편해서인지, 이상~하게 눈이 감겼다. 에라, 모르겠다…

어랏? 내가 얼마나 잔 거지? 너무 많이 자서 이따가 밤에 잠을 못 자면 어쩌지? 뭐, 늦게 자면 되지 뭐. 그녀와 아이들이 저녁을 먹을 동안, 나도 하던 대로 사료를 먹고는 그녀의 발 밑에서 기다렸다. 가끔 길에서 만난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사람 먹는 것을 먹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다. 그 맛에 맛들리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데. 사실 나는 아직 사료 밖에 먹어보지 못했다. 어쩌면 이 집에 있는 동안, 나도 그 친구들이 자랑하던 ‘사람들이 먹는 것’을 먹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그녀의 딸 밑에가 좋겠다. 매우 기대 중이다.

저녁을 다 먹고 치우더니 갑자기 내 목줄을 그녀가 가지고 왔다! 오예! 나의 첫 산책이다. 그녀의 집 근처는 어떤 냄새가 날지, 매우 궁금하다. 오늘 내 목줄을 잡을 사람은 그녀의 아들인가 보다. 다행이다. 오늘 하루 지내보니, 아들은 나를 아주 부드럽게 대해주는데, 딸은 아주 나를 주물러 터트린다. 내가 무슨 슬라임인 줄 아나? 자꾸 주물러대서… 내 헤어스타일이 망가지잖아! 그리고 자꾸 내 이름을 불러대서 귀찮았다. 그만 좀 내 이름을 부르라고!


킁킁킁


오, 이 동네는 풀 냄새가 많이 나는군. 왠지 물 냄새도 난다. 근처에 물가가 있나 보다. 내가 살던 곳보다 더 다양한 냄새가 난다. 음~ 새롭게 맡아보는 냄새! 매일 이렇게 새로운 냄새를 맡을 수 있다니! 매일 산책 나가자고 졸라 봐야겠다.


며칠 지내보니 다 좋은데 딱 하나 불만이 있다. 그녀의 방에 들어가 볼 수 없게 이렇게 성벽을 쌓아두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성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냄새로 봤을 때는 뭐 특별한 느낌은 없는데, 이상하게 나를 못 들어가게 막는다. 어쩌면 내 주인이 나에 대한 얘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실… 침대에서 쉬 싸는 걸, 좋아하거든 ㅎㅎㅎ 배변 패드보다 침대에 하는 맛이 더 좋은데, 주인은 내가 침대에 쉬를 할 때마다 뭐가 그렇게 싫은지 짜증을 낸다. 어쩌면 저 멀리 보이는 침대 때문인가 싶기는 하지만, 언젠가 성벽이 열리는 틈을 타서 꼭! 들어가 보리라 다짐해 본다.

처음 온 날 다음날에는 그녀와 그녀의 딸은 하루 종일 나가고, 아들이랑 그녀의 남편이랑 함께 했다. 그녀의 남편은 아주 나를 애기 취급한다. 난 벌써 10대인데 말이다. 나를 보자마자 그녀의 남편은 말했다.

너도 아저씨가 좋구나~
알지~
네 친구들이 다 나를 좋아하거든~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단정 짓는지 참… 난 개인적으로 남자보다 여자를 좋아한단 말이야! 지조 있는 암컷이라고! 그녀의 남편의 손길은 약간 그녀의 딸의 손길과 비슷하다. 너무 과하다. 그래도 제일 나랑 주먹으로 놀아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내 이빨이 무서워서, 주먹으로 잘 놀아주지 않는다.) 보답하는 마음에서, 그녀의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반가운 척 깡충깡충 점핑해 준다. 또 그러면 자기 좋아하는 줄 알고 좋아라 한다.

우리 호두~ 아저씨 기다렸어~
아이고 그랬어요~

그냥 귀찮으니까 그렇다고 낑낑 대어준다. 그럼 또 좋다고 나를 만진다. 요 며칠 지내보니 이 집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아저씨는 나를 몇 번 봤다고 아주 나를 다 아는 것처럼 대한다. 아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나를 부드럽게 만지며 이뻐해 준다. 딸은 손이 좀 거칠고 내내 나에게 말을 걸어서 시끄럽지만, 그래도 나랑 놀아주려고 해서 기특하다. 그녀는 나에게 말은 잘 걸진 않지만 가끔 나의 목덜미를 만져주는데 그 기분은 잊을 수 없다. 아침마다 내 눈물도 닦아주고, 내 사료도 챙겨주고, 산책도 시켜주고 산책 후 씻겨주기도 한다. 그녀의 옆에서 한번 잠을 자 보는 것이 소원인데. 저 성벽을 어떻게 넘을지, 고민 중이다.

물론 이 소파도 나쁘지 않다. 가끔 딸이 나에게 베고 자라고 자기 인형을 갖다 준다. 어디서 많이 본 인형이다. 우리 집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유명한 인형인가 보다. 나는 이 소파 위에서라면 몇 날 며칠 내려오지 말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또 부드러운 이불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나를 거실에 혼자 두고 다 자기 방에 가서 문 닫고 자서 내가 몇 시간을 짖어 대줬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짖는데도 아무도 깨지 않고 그녀만이 나를 혼내러 들락날락했다. 이 정도 짖으면 보통 같이 자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녀도 보통이 아님에 틀림없다. 결국 방문을 열어 주고 성벽을 쳤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준다. 내일부터는 나 무서우니까 누가 내 옆에서 자줄 때까지 울어줄 것이다! 아니 이렇게 넓은 거실에 나만 두고 가기, 있기 없기? 난 사람 몸이랑 붙어서 자야 잠이 온단 말이지~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냐고! 일단 내일은 누구라도 하나 붙잡아서 같이 잘 테다. 그러지 않으면, 오늘처럼 밤새 시끄럽게 짖어 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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