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겸손하고 당당한 태도로
아주머니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환한 미소를 지었다.
큰 아들과 등산을 갔다 오는 길에 들리는 카페가 2곳이 있다. 뒷산을 갔을 때는 추모공원 내에 있는 카페를, 앞산을 갔을 때는 동네 사거리에 있는 oo카페를 들리곤 한다. 비슷한 시기에 두 곳의 카페를 처음 가게 되었고, 비슷한 기간 동안 다녔지만 주인의 태도는 아주 달랐다. 추모공원 카페의 언니는 첫날부터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며 엄청 친절하게 대해주셨던 데 비해 동네 사거리 oo카페의 사장님은 일주일에 3번 이상씩 6개월 가까이 다녔어도 한 번도 아는 척을 하거나 하지 않으셨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인사를 나누고 주문하고 인사하고 다시 나오는 손님과 주인으로서의 대화만이 전부였다.
사실 이 분은 장애인들을 가까이에서 본 경험이 거의 없으신 거 같았다.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우리 아들이 가끔 데스크에 있는 것들을 만지면 굉장히 방어적으로 "그건 안돼요, 이것도 안돼요" 하곤 하셨다. 그러다 어느 날은 아이가 소스 병(위에서 누르면 액체가 나오는 병)들을 만지려고 하자 또 화들짝 놀라며 아이를 제지했다. 그날 나는 아이에게는 만지면 안 된다고 교육시키며 사장님께는 이렇게 보충설명을 드렸다.
"저희 아이는 누르려고 하는 건 아니고요. 정리하는 걸 좋아해서 누름 마개를 같은 방향으로 맞추려고 하는 거예요."
내 설명을 듣고 사장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하고 대답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학교에 등교시키고 나는 학교 회의시간(학부모회장을 맡고 있던 시기였다)
까지 어중간하게 시간이 남아 아침 일찍 카페에 들린 적이 있었다. 그날 사장님께서 마침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출근하는 길이세요?"
평소 내가 등산복만 입고 다니는 걸 보다가 그날따라 원피스를 입었더니 직장에 가는 줄 아셨던 모양이었다.
"아니고요. 저하고 맨날 같이 오는 남자애가요. 저희 아들인데요. 저~~~기 특수학교 있잖아요. 거기 다녀요. 걔는 지금 학교에 갔고, 저는 이따가 학교에 회의하러 가야 해서 오늘 좀 차려입었어요~"
그리고 그날 이 분과 몇 마디 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안 있어 여름방학 중 어느 날, 등산을 간다고 집에서 나왔는데 갑자기 아들이 길에서 난동을 부렸다. 등산을 안 가고 무조건 카페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아이와 씨름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한참 굴렸다. 그러다가 나는 '등산을 안 갔으니 엄마 돈으로는 사 줄 수가 없고, 네 용돈으로 음료수를 사 먹으라'라고 했는데 아이가 이에 동의했다. 그래서 우리는 집으로 다시 돌아왔고 나는 짧은 시간 또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등산도 안 간 아들 음료수를 사주기 위해 한여름에 언덕길을 내려갔다 오는 건 너무 싫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카페에 혼자 갔다 오라고 처음으로 시켰다. 그날 아이는 음료수를 사 가지고 혼자 잘 다녀오긴 했는데 카페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음날 나는 카페에 들러 사장님께 아이가 혼자 와서 별일 없었는지를 여쭈어 보았다. 사장님은 별일 없었다고, 괜찮았다고 하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내친김에 나는
"그럼 다음에도 종종 혼자 보내도 괜찮겠죠?"
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사장님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사장님은 몇 초간 침묵하며 침을 꼴깍 삼키고 난 후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요. 괜찮아요"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되었다. 이래저래 내가 분주해서 주말에도 등산을 한 번도 못 갔고 몇 개월 동안 카페에 아이를 혼자 보내기는커녕 함께 가지도 못했다. 그러다 11월쯤에 자조모임 사람들하고 그 카페에서 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오는 길에 인사를 하는 나를 사장님께서 급히 붙잡더니 이렇게 물어보시는 거였다.
"근데~~ 그 '잘생긴' 아드님은 요즘에 왜 안 와요?"
나는 무척 놀랐다. 6개월 넘게 매주 들러도 아는 척 한 번도 안 하시더니 갑자기 '잘생긴' 아드님이라는 표현을 쓰며 안부를 묻다니...
"작년에는 코로나로 학교를 안 가니 자주 왔는데 요즘엔 매일 등교를 하니까 등산을 안 가게 되네요. 조만간 아이 데리고 올게요!"
그러나 그 이후로도 쭉 가지를 못하다가 겨울방학 첫날 드디어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가게 문을 들어서는데 아주머니는 여태껏 보지 못했던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못 본 사이 울 아들 키가 큰 거 같다고도 하셨다. 음료를 다 마시고 나오면서 아이와 인사를 하는데 사장님은 다시 환하게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생긴 총각~ 잘 가요! 또 와요!!"
카페를 나오며 나도 모르게 "앗싸!!" 하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울 동네에 우리 아들이, 그리고 비슷한 장애아이들이 편하게 갈 수 있을만한 가게가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에 나는 신이 났다. 아이를 데리고 성실하게 꾸준히 얼굴을 익히며 장애아이들이 위험하지도 무섭지도 않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려드린 덕분인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상대방의 첫 반응만 보고 너무 쉽게 모든 걸 포기하고 마는지도 모른다. 이 사장님의 처음 반응만 보고 다시는 안 가야겠다 생각했더라면, 내가 원하는 반응을 안 보여주니 나도 마찬가지로 대놓고 기분 나쁨을 표현했더라면 이 분의 환한 미소는 끝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장애아이를 키우며 사회의 편견이나 불평등을 많이 만나게 되지만 사실 누구나 살다 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더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우는 건, 그렇게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을 피해 가고 싸우고 하는 것보다는 겸손하지만 당당한 태도로 계속해서 그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잘 몰라서 가질 수 있는 생각들을 한 순간에 바꿀 수는 없지만, 또 반드시 바뀐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때, 생각지 못한 변화들을 볼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아이와 언덕길을 올라 집으로 오는 길, 내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다.